대선이 열리는 해에는 정치권뿐 아니라 자본시장에도 어김없이 거대한 욕망의 장이 들어선다. 대선 후보들의 지지율과 맞물린 주가 변화에 유독 관심을 보이는 투자자들이 급증하는 시즌이 돌아온 것이다. 대선 테마주는 유력 대선 후보와 혈연·학연·지연 따위로 얽힌 업체나 주요 공약으로 인해 혜택을 입을 수 있는 기업 주식을 가리킨다. 대선 테마주로 묶인 종목은 실제 대선 후보와의 연관성과는 별개로 대선 기간에 주가가 롤러코스터를 탄다. 실질적인 기업 가치에는 아무런 변동이 없는데도 말이다.
대선 테마주에 대한 관심이 가장 커졌던 때는 2002년 16대 대선이었다. 당시 노무현 새천년민주당 후보가 행정수도 이전 공약을 발표한 후 충청권 일부 기업의 주가가 출렁였다. 5년 뒤 치러진 17대 대선에선 이명박 한나라당 후보의 한반도 대운하 사업 공약에 한 건설사 주가가 대선을 앞둔 94거래일간 24배나 폭등했었다. ‘4대강 테마주’뿐 아니라 ‘녹색성장 테마주’까지 주목을 받았다. 당시 정동영 대통합민주신당 후보의 대륙철도 공약에 힘입어 레일이나 철도 시스템 관련 업체들의 주가도 들썩였다. 18대 대선에선 박근혜 새누리당 후보의 동생 회사뿐 아니라 동생 아내의 회사에다 조카사위 회사까지 테마주로 분류됐다. 박 후보와 경쟁했던 문재인 민주통합당 후보의 경우엔 변호사 시절 고객 회사, 노무현 전 대통령 허리 수술을 했던 의사의 아내가 회장으로 있던 회사 등이 주목을 받았다.
현재 금융 당국의 감시 체계는 과거에 비해 한층 강화된 편이지만, 여전히 이번 대선에서도 이상 거래 현상을 보이는 종목들이 적지 않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후보는 지난해 12월 유튜브 한 채널에서 ‘이재명 테마주’에 대해 “절대 사지 마라”며 “그 인연들도 진짜 기가 차더라”고까지 했는데, 그의 공약을 고리로 한 일부 종목은 상승세를 탔다. 이 후보가 ‘탈모 치료제에 건강보험을 적용하는 공약을 검토한다’는 보도가 나온 직후 탈모약뿐 아니라 탈모 방지 샴푸를 만드는 업체 주가까지 급등했다. 윤석열 국민의힘 후보가 ‘탈원전 백지화, 원전 최강국 건설’이라는 짧은 공약을 내세운 뒤로는 원자력발전 관련 업체의 주가가 힘을 받기 시작했다. 윤 후보와 같은 ‘파평 윤씨’가 임원으로 있는 회사들의 주가도 반짝 치솟았다. 이 가운데 한 업체 회장은 나중에 해남 윤씨로 알려지면서 ‘윤석열 테마주’에서 제외됐다.
대선 테마주는 후보 지지율 변화에 따라 주가가 요동친다. 지지율 추이를 미끼로 차익을 챙기려는 작전 세력의 수법은 ‘가짜 뉴스’를 퍼뜨려 개미 투자자를 꾀어내거나 시세를 조종하는 방식이다. 대량의 매수 주문을 통해 종가를 상한가로 만들고 다음 날 개미들의 추가 매입에 맞춰 매도하는 식이다. 이런 테마주는 자산 규모나 영업 실적이 비교적 작은 기업 종목이 대부분이다. 평소에 잘 알려지지 않은 기업일수록 ‘알고 보니 대선 후엔 대박’이라는 풍문이 잘 먹힐 수 있기 때문이다. 소리 소문 없이 투자가 몰리는 견실한 기업을 굳이 작전용 풍문에 태울 필요도 없는 법이다.
대선 테마주는 선거일 전후에 급락하는 경우가 많다. 결국 풍문만 좇던 개미들은 큰 피해를 볼 수밖에 없다. 역대급 비호감 레이스라고 불리는 이번 대선은 한탕주의가 횡행하는 자본시장의 나쁜 속성을 여러모로 닮았다. 차별점을 갖추지 못했거나 실현 가능성도 없는 정치 선언식 공약이 쏟아지고, 대선 후에나 사실 여부를 제대로 판단할 수 있는 네거티브 싸움만 떠오르는 이번 대선에선 특히 부실한 상품이 많이 팔릴 가능성이 커 보인다. 물론 투자 책임은 모두 유권자들에게 돌아간다.
김경택 경제부 차장 ptyx@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