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마당] 생체정보

입력 2022-02-14 04:10

지난 주말 외신들은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4m나 되는 긴 테이블을 사이에 두고 정상회담을 했던 내막을 전하는 기사를 쏟아냈다. 마크롱이 러시아의 코로나19 유전자증폭(PCR) 검사를 거부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대통령의 DNA를 다른 나라에 줄 수 없다는 프랑스와 정상회담을 하려면 누구든 검사를 받으라는 러시아의 감정 싸움이 조율되지 못한 채 노출된 이례적 사건이었다.

세계 각국이 생체정보 확보에 사활을 건다는 건 오래된 이야기다. 정부·기업의 비밀문서 폭로 사이트 ‘위키리크스’는 2010년 미국 국무부가 전 세계 미국 대사관에 주재국 지도자의 DNA를 수집하라고 지시한 외교전문을 공개했다. 타액, 지문, 홍채 정보는 물론이고 배설물까지 확보하라는 내용이어서 당시에는 충격적이었다. 이후에도 물밑에서 벌어지는 생체정보 전쟁은 늘 현재진행형이다. 뉴욕타임스는 지난해 10월 ‘CIA가 정보원 수십명을 잃은 사실을 인정했다’는 기사에서 러시아 중국 이란 파키스탄 등이 CIA 요원들의 생체정보를 광범위하게 수집해 체포·살해에 악용한다는 문건을 폭로했다. 프랑스와 러시아의 정상회담 신경전은 단순한 샅바 싸움이 아니었던 것이다.

우리나라도 무풍지대가 아니다. 2017년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 공항에서 피살된 남성을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이복형 김정남으로 확인하는 데는 국가정보원이 제공한 생체정보가 결정적 역할을 했다고 한다. 하지만 문제는 영화에서나 스파이를 만나는 평범한 개인의 생체정보다. 스마트폰을 켤 때, 친구에게 축의금을 보낼 때, 심지어 출근할 때 지문과 홍채, 안면 인식 프로그램을 이용하는 시대다. 지난해 개인정보보호법이 강화되면서 정부가 생체정보 보호에 시동을 걸었지만 문득 불안한 마음이 생기는 건 어쩔 수 없다. 코로나19 사태가 2년이 넘으면서 누구나 PCR 검사를 한 번쯤 받았을 텐데, 매일 어디서 무엇을 하는지 기록을 남기는데, 그 정보는 아무 문제 없이 잘 폐기되고 있을까.

고승욱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