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설교] 역설이 필요한 시대

입력 2022-02-15 03:07

마가복음은 예수님이 공생애를 시작하고, 곧바로 치유사역을 했다고 기록합니다. 오늘 본문은 예수의 특별한 치유 행위를 기록합니다. 시몬의 장모 손을 잡아 일으키는 일, 즉 병자와 ‘접촉’을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 시대의 병자는 부정한 자들이었습니다. 부정의 전이를 일으키는 성결하지 않은 자들이란 뜻입니다. 예수님이 그들의 손을 잡고 아픈 부위에 손을 얹으며 그들의 몸에 손을 대는 것은 자신도 오염이 되어 부정을 얻겠다는 행위입니다. 예수님은 그런 방법으로 치유 사역을 합니다.

손을 대지 말아야 할 사람에게 손을 대고, 같이 밥을 먹지 말아야 할 사람들과 같이 식사를 하며, 어울리지 말아야 할 사람들과 어울려 함께하는 것으로 예수님은 하나님 나라를 세상에 깨닫게 해 주십니다. ‘역설’이 하나님 나라를 알아 가게 하는 지혜의 방법이었던 것입니다. 역설적이게도 하나님과 가장 잘 소통하는 방법은 ‘침묵’이고, 입으로 하는 말보다 그림과 음악, 마음으로 소통할 때 사람들은 자기 뜻을 더욱 아름답고 온전하게 전할 수 있습니다.

로마제국의 십자가는 사형을 집행하는 틀이었습니다. 로마제국은 무시무시한 십자가를 통해 이스라엘을 비롯한 수많은 식민지를 폭력과 압제로 지배하고 통치했습니다. 십자가는 로마제국의 법치와 통제의 상징이었습니다. 그러나 역설적이게도 그리스도인들은 십자가를 통해 사랑과 은혜를 느낍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이 그 십자가를 통해 고난을 받고 죽임을 당함으로 모든 인류에게 구원을 주었기 때문입니다. 법을 세우던 십자가가 은혜를 허락해주는 도구가 된 것입니다.

예수님은 고난의 길을 걸었습니다. 율법으로 부정하다는 병자들을 직접 만지고 손을 잡는 것으로 치유의 역사를 보여줍니다. 고난에 뛰어들고 고통의 길에 일부러 발을 내디딥니다. 예수님은 행복과 기쁨의 길로만 가지 않으십니다. 좁은 문, 좁은 길로 갑니다. 그러나 그 역설적인 신앙 속에 참된 소망과 구원이 있음을 보여 줍니다.

양화진문화원이 2013년 주최한 목요강좌에서 이어령 전 문화부 장관은 “저는 성서가 무오류의 책이 아니라 오히려 오류투성이이기 때문에, 역설적으로 이 책은 인간이 멋대로 쓴 게 아니고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생각합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인간이 썼다면 이것보다 훨씬 더 논리적으로 잘 쓰지 않았겠는가, 성서의 이야기를 읽으며 이 세상에서 똑똑하다고 하는 사람들은 한계를 깨닫게 되고 지성인들은 자신의 초라한 모습을 발견하게 될 것이라고 전합니다. 교회가 율법으로 완성된 사람들이 모이는 곳이라면, 교회는 결코 선교적인 교회가 될 수 없을 것입니다. 역설적이게도 교회는 죄인들이 회개하여 모인 화해의 공동체입니다.

미디어와 잘못된 종교인들이 만들어낸 교회 내 신유 사역자들이 이상한 주술을 외치고 장풍을 쏘는 듯한 행동으로 치유 행위를 하며 마치 자신이 예수가 된 양 거만한 행동을 보이는 모습은 전혀 예수님이 보여준 모습이 아닙니다. 예수님은 도리어 아픈 자들의 손을 잡아 일으켜주고, 그들의 상처 난 곳을 눈물로 닦아주며, 그곳을 진심으로 어루만져 주는 것으로 하늘의 치유를 보여주셨습니다. 역설적이게도 대단한 권위로 병을 고치는 조물주의 모습이 아니라, 같이 아파하고 함께 눈물을 흘리는 친구의 모습으로 치유와 회복, 구원과 믿음을 주는 것입니다.

김주용 서울 연동교회 목사

◇김주용 목사는 성균관대와 장로회신학대 신학대학원, 미국 맥코믹신학교와 루터교신학대학원에서 선교학을 공부하고 연동교회 제8대 목사로 섬기고 있습니다. 이 설교문은 한국실천신학연구소가 엮은 ‘2022 예배와 강단’에 수록된 글의 일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