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 목사는 "골프를 통해 하나님의 사랑을 전하고 싶다"는 비전을 품고 보육원, 소년원, 소년소녀가장, 탈북청소년, 국가유공자 자녀 및 손자, 다문화가정 자녀, 장애인 등 소외계층의 아이들에게 골프를 통해 꿈을 꾸고 희망을 품을 수 있도록 22년 동안 가르쳐 왔다. 지금도 매주 목요일 소년원에 가서 골프를 가르치고 있다. 이렇게 백 목사를 통해 골프를 배운 아이들 중에서 25명의 투어프로 및 세미프로가 나왔고, 골프 관련 대학에 진학한 아이들도 30여명이나 된다.
“주위에서 보육원생이나 탈북 청소년에게 왜 하필 골프를 시키냐는 말을 많이 합니다. 돈이 적게 드는 야구나 축구도 있지 않으냐는 것이지요. 모든 아이들이 박세리나 최경주가 될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골프단에서 3년만 골프를 배우면 골프 관련 일을 하면서 자립할 수 있습니다”
백 목사가 많은 스포츠 종목 가운데 골프를 택한 특별한 이유가 있다. 골프라는 말을 떠올릴 때 마다 그 당시 상황이 생각나 백 목사는 종종 목이 메여 말을 잇지 못하고 눈시울을 붉혔다고 한다. 그가 골프를 시작한 것은 친동생인 가수 민해경 씨의 매니저를 할 때였다. 골프장에서 골프 선수가 되려고 연습하는 학생들을 본 뒤 맏딸 세라에게도 골프를 가르치기 시작했다. 박세리 선수보다 2년 선배인 세라는 당시 고등부 랭킹 1위를 기록할 정도로 재능이 뛰어났다. 그에게 딸은 집안의 희망이자 자랑이었다. 하지만 1992년 4월1일 세라는 새벽 훈련을 하러 엄마 아빠에게 다녀오겠다고 인사하고 골프장으로 가다 교통사고로 현장에서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말을 안 들으니 저에게 가장 소중한 것을 가져가시더라고요. 그 당시는 잘 나가던 연예계 매니저였습니다. 사실 저는 교만해서 얻어맞은 장본인입니다. 세라 소식을 경찰서에서 연락이 와서 알았을 때 눈물도 나오지 않았습니다. 세라를 잃은 슬픔으로 한동안 너무도 많은 방황을 했습니다. 도저히 마음을 잡을 수가 없었습니다. 트럭만 보면 딸이 생각나 분노가 치솟아 올랐습니다. 그렇게 방황하던 중 아내와 둘째 딸의 기도로 목사가 되었고, 불우한 처지에 있는 보육원생을 골퍼로 육성하려는 소망이 생겼지요”
백 목사는 딸을 잃고 나서, 1971년 11월 28일 하나님께 부르짖어 간절하게 드린 기도가 생각났다고 했다. 학교를 다니다 말고 집을 나와 방황하던 중 인수봉에서 암벽 등반을 하다 사고가 나 7명이 얼어 죽은 참사의 현장에 있었다. 그때 사고현장 목격자로서 15명의 목숨을 살린 구조자 였고, 밧줄에 매달려 생사를 넘나든 생존자였다. 그때 TV뉴스에 나올 정도로 큰 사고였다,
“자일에 매달려 있을 때 몸이 얼어 마비가 되고 죽는 줄 알았습니다. 그때 하나님을 불렀어요. 제발 자일 좀 느슨하게 해주세요. 살려주시면 하나님이 시키는 대로 무슨 일이든지 다 하겠습니다. 반드시 하나님 일을 하겠습니다”
하지만 그 약속은 곧 잊혀졌다. 대신 유명 가수의 매니저로 화려한 세계에 눈이 멀었다. 인수봉에서 하나님께 드린 약속의 기억은 딸 세라의 죽음으로 다시 살아났다. 아내와 둘째딸 세진 씨의 도움으로 신학을 공부하고 목사가 됐다. 인수봉에서 하나님과 한 약속은 그렇게 지켜졌다. 마음의 평정을 되찾고 난 후 백 목사는 세라가 골프 연습을 하면서 자주 하던 말이 생각났다.
“세라는 골프로 성공해 자신보다 어려운 이들을 돕겠다고 늘 입버릇처럼 말했습니다. 제가 보육원 아이들에게 골프를 가르치겠다고 마음먹은 이유도 그 때문입니다”
최근 백 목사는 외손녀딸들에게 골프를 가르치는데 집중하고 있다. 둘째딸 세진 씨가 낳은 서그린(12), 서호린(9) 두 외손녀가 어릴 때부터 골프를 배우기 시작해서 유망주로 자라고 있다. 이들은 부모들의 직업을 따라 미국과 캐나다, 필리핀, 뉴질랜드 등을 거치면서 골프에 대한 꿈을 키워오고 있다. 최근에는 전라북도 군산에 머물면서 전라북도 초등부 대표 선수로 활동하고 있다.
“외손녀들이 골프를 하게 된 이유가 있습니다. 제가 세라의 죽음으로 마음을 잡지 못하고 방황하고 있을 때에 아내와 둘째딸 세진이가 와서 ‘아빠 나도 너무 힘들어 그렇지만 나도 견디고 있는거야 그러니까 아빠도 힘내고 견디자 그리고 내가 결혼해서 아이를 낳으면 골프를 가르쳐서 언니가 이루지 못한 꿈을 이루어 하나님께 영광돌리자’고 했습니다. 나는 이전까지는 나만 힘든 줄 알았는데, 아내와 둘째딸도 힘든 것을 처음으로 느꼈습니다. 딸의 말을 듣고 마음을 잡고 가족들과 함께 신학을 하면서 함께 기도하고 은혜로 회복되었습니다. 이것이 계기가 되어 태어난 외손녀들이 골프를 시작하게 되었습니다”고 했다.
외손녀 서그린을 만나 골프를 왜 하냐고 물었더니 “저는 골프가 재미있습니다. 그리고 저는 골프를 잘해서 하나님께 꼭 영광 돌리고 싶습니다. 미국 LPGA에서 우승해서 상금으로 어려운 나라에 학교와 병원을 세워 복음을 전하고 싶습니다”고 했다.
그동안 백 목사의 할렐루야그린골프단을 거쳐간 아이들이 수백명이 된다. 한때는 30명이나 되는 아이들을 데리고 숙식하면서 훈련시키기도 했다. 최근에는 코로나 여파로 경제적인 어려움으로 골프단 사역이 중단되었다. 지금까지 많은 단체와 독지가들의 후원으로 해외까지 데리고 다니며 교육시킬 수 있었다. 최근에는 제네시스트레이드1317 땡큐기부회에서 연습할 때에 타고 다닐 자동차를 후원해주고, 취영루 만두 박성수 대표가 골프채를 후원해주기도 했다.
충북 옥천에서 견인차와 렌트카 서비스 회사를 운영하고 있는 우시훈(35) 사장은 “백 단장님은 제가 평생잊지 못하는 은인입니다. 십대 때에 단장님이 나를 잡아주지 않았다면 지금 이렇게 가정을 꾸리고 사업을 하며 행복하게 살아가고 있지 못하고 교도소를 들락거리며 방황하는 사람이 되었을 것입니다. 지금 목사님과 사모님 때문에 행복하게 잘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땐 엄하셨는데 지나고 보니까 엄하게 교육받고 훈련시켜주셔서 바르게 살아가고 있습니다. 사모님이 우리 때문에 너무 고생을 많이 하셨습니다. 잠도 못 주무시고 밥해주면서 돌보시느라 애쓰셨습니다. 정말 목사님과 사모님이 제 인생에서 고맙고 감사한 분입니다. 때가 되면 반드시 크게 보답하고 싶습니다”고 했다.
백 목사에게는 가장 기억에 남는 아이가 있었다. “정신지체 1급인 OOO은 티칭 프로가 되었습니다. ‘OOO’이라는 이름은 ‘서귀포에서 두 번째로 주워온 남자아이’라는 뜻입니다. IQ가 70이 채 안되지만, 성경 1백 구절 이상을 암송했습니다. 시편과 마태복음을 줄줄 암송했습니다. 우리가 보기에는 장애아이기에 불가능해보였지만, 믿음 안에서는 불가능이 없었습니다. 아쉬운 것은 아이들이 성인이 되고 실력을 갖추면 자신들의 과거를 감추고 싶어 합니다. 그래서 성인이 되면 각자 갈 길을 가고 스스로 자립해서 살아가고 있는데 연락이 없어 가끔은 보고 싶을 때가 있습니다. 나도 보육원 생활을 해보았기 때문에 그들의 마음을 충분히 이해합니다”고 했다.
백 목사는 할렐루야그린골프단을 이끌어오면서 숱한 하나님의 기적들을 수없이 경험하였다. 아무것도 없는 무에서 보육원 아이들을 데리고 미국으로 태국으로 필리핀으로 다니며 전지훈련을 시켜왔다.
“매일 새벽마다 부르짖었더니, 하나님께서 이루어주셨습니다. 처음에는 제가 미국에 데리고 가서 훈련시킨다고 하니까 헛소리한다며 주위에서 비웃더군요.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기적 같은 일을 이루셨습니다. 저는 아무것도 한 것이 없습니다. 기도하니까 하나님께서는 어거스타 한인감리교회 이용성 목사님을 비롯해서 돕는 손길들을 연결시켜주셔서 아이들에게 최고의 전지훈련을 받게 해주셨습니다. 하나님은 그의 뜻에만 맞게 믿고 구하면 누구에게나 역사하십니다”고 했다.
백 목사의 삶의 여정을 담은 책 ‘너를 위해 울어줄 눈물이 없구나(도서출판 누가)’이 출간되어 판매되고 있으며 영화로까지 제작되었다. 불우한 처지에서 방황한 청소년 시절, 최고의 연예계 매니저 생활 그리고 목회자로서 불우한 형편과 처지에 놓인 사람들에게 용기와 희망을 주며 살아가고 있는 그의 인생 여정 중심에는 항상 하나님이 있었다.
백 목사는 스스로 목사가 되지 않으려고 노력하였으나 하나님의 특별한 섭리를 통해 목사가 되었다고 했다. 스스로를 엽기적인 목사라고 칭하며, 도전적 사고를 가지고 살아계신 하나님의 역사하심을 믿고 하나님의 심정에 맞춰 순종하며 살아가려고 몸부림친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