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를 위해 빛 밝혀야 할까

입력 2022-02-15 20:20

14세기 흑사병이 전 유럽을 휩쓸고 간 이후, 그에 대적할 만한 대유행의 질병인 코로나19가 전 세계를 어둡게 만든 지 벌써 2년의 시간이 흘렀고, 지금도 우리는 그 시간을 걸어가고 있는 중이다. 종료시점을 알지 못하고 가야하는 막막함과 두려움이 사람들의 마음을 어둡게 만들고 우울하게 만들어 가고 있다. 그 과정 속에서 우리는 우리 자신은 물론 다음 세대가 이 시대를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 고민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학교는 자유롭게 갈 수 없게 되었고, 비대면 온라인 수업이 학생들의 몸과 마음을 더 답답하게 만들었다. 가르치는 사람이나 배우는 사람, 그리고 그 과정을 옆에서 지켜보는 학부모 모두에게 이 시기는 더할 나위 없이 어둡게 느껴진다. 제대로 공부를 하지 못했음에도 학생들은 입시를 준비하며 수능을 보았다. 이 어둠의 시대를 조금이나마 밝게 살아가기 위해서 치열하게 그 시간을 보내고 있는 것이다.

많은 이들은 무한 경쟁 속에서 다른 사람을 앞질러 딛고 이겨서 올라가야 더 나은 미래가 우리 앞에 펼쳐진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그 생각이 깨지는 것은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는다.

우리는 하룻저녁 뉴스만 보더라도 경쟁을 딛고 일어서서 이긴 것처럼 보이는 사람들이 어떤 결말을 향해 가는지 알 수 있으며, 그 삶이 결코 행복해 보이지 않는다는 사실도 금세 알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많은 사람들이 그 생각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는 것은 그들의 중심에 하나님이 계시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우리는 앞이 보이지 않는 시대 속에서 스스로 그 빛이 되고자 한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우리는 절대 빛이 될 수 없다는 사실이다. 빛이 되신 하나님이 우리 안에 계심으로 인해서만 우리는 빛을 낼 수 있게 될 뿐이다. 기독교 학교에서는 이 사실을 정확하고 명징하게 학생들에게 가르친다. 우리에게 하나님이 계셔야만 우리는 빛 가운데 살아갈 수 있음을 말이다.

오래 전에 한 학생이 학교에 입학했었다. 밝고 깨끗한 마음을 가진 그 학생은 기독교 교육을 받기 위해 우리 학교에 왔었다. 당시 기독교 학교에 입학하는 것은 지금과 달리 많은 시선을 이겨내야 하는 일이었다. 문제가 있거나, 유학에 실패했거나, 일반학교에 다니기 힘든 상황이 있는 학생들이 기독교 학교에 오는 경우가 다수였을 때였다. 그러나 그 학생과 학부모님은 주위의 걱정 어린 시선을 두려워하지 않고 기독교 학교를 선택했다.

그 학생은 적극적인 자세와 태도로 학교생활 속에서 다양하게 하나님을 만났다. 학교에서 가르치는 ‘빛’의 의미를 말씀과 찬양으로, 봉사와 선교로 배운 그 학생은 하나님 앞에서 귀한 꿈을 꾸게 되었다. 여러 시간 동안 장애인을 돌보는 봉사활동을 통해 연약한 사람들을 사랑으로 가르치며 도와주는 사람이 되고 싶다고 말이다. 지금 그 학생은 특수 교육을 전공하고 교사가 되었다. 그리고 자신이 배우고 경험한 그 귀한 ‘빛’을 다른 사람을 위해 비춰주며 살아가고 있다. 비단 이 학생뿐만 아니라 많은 다른 학생들이 사회 곳곳에서 자신의 재능을 펼치며, 그리스도의 빛을 나타내고 있다.

입시를 생각하고 더 풍요로운 자녀의 삶을 생각하면 기독교 교육이 조금 답답하게 느껴질 수도 있다. 조금은 거리가 멀게 인식되고 주저하게 되며 어둡게 느껴지기도 한다. 하지만 단언컨대, 결코 그렇지 않다. 기독교 교육을 통해 아이들은 하나님을 바르게 알게 되며, 우리가 가진 귀한 빛을 스스로 내는 사람이 되어야 하는지, 그 빛을 다른 사람을 위해 비춰주어야 하는지 그 답을 스스로 찾고 살아갈 수 있게 된다.

사내가 어두운 밤길을 걷고 있는데 맞은편에서 누군가가 등불을 들고 걸어오고 있었다. 자세히 보니 그는 눈먼 장님이었다. 사내가 눈먼 장님에게 물었다.

“여보시오, 당신은 앞을 보지도 못하는데 왜 등불을 들고 다니시오?”

그러자 눈먼 사내가 담담하게 말했다.

“나는 비록 앞을 보지 못하지만 어두운 밤엔 이 등불이 맞은편에서 걸어오는 사람에게 길잡이가 되어줄 것이고, 또 가까이 와서는 내가 장님인줄 알아채고 길을 양보해 주지 않겠소?”

앞서 소개한 그 학생은 스스로 빛이 되는 것보다 다른 사람을 위해 길을 비춰주는 일이 얼마나 값지고 귀한 일인지 깨달은 학생이었다. 스스로 빛이 되면 자신은 빛이 나고 화려할 수 있다. 그러나 누군가에게 그 빛을 비춰주기는 쉽지 않다. 그러나 우리 안에 빛 되신 하나님이 계심을 확신하고 그 정체성을 바르게 인식한다면, 우리는 스스로 빛을 내는 것을 넘어서서 다른 사람을 위해서 우리가 가진 그 빛을 전해주고 비춰주게 된다. 어느 빛이 더 아름답고 가치가 있으며 고귀할까.

전인미답(前人未踏)의 어두운 바이러스 앞에서 우리는 누구를 위해 빛을 비추며 살아야 할까. 어두운 시대에서 내가 아닌 누군가를 위해 빛을 비춰주고, 그 빛을 가지고 이 어두운 시대를 밝히는 것. 그것이 하나님을 마음에 모신 크리스천의 정체성이 되어야 하지 않을까. 그 일은 모든 학교에서 할 수 없고, 기독교 학교에서만 가능한 일이다. 그것이 바로 하나님을 바르게 가르치는 기독교 학교의 사명이자, 기독교 학교의 존재 이유이다.

박진희 등대글로벌스쿨 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