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중 전 대통령의 부인 고 이희호 여사는 자서전 ‘동행’에서 2002년 아들인 홍업, 홍걸씨가 구속된 이후 청와대 관저 풍경을 이렇게 묘사했다. “우리 내외는 말을 잊었다. 각자의 서재에서 따로 시간을 보내다 늦은 밤에야 안방으로 갔다. 북악산 기슭의 적막한 관저는 깊이를 알 수 없는 캄캄한 심연이었다.” 지지층이 탄탄했던 김 전 대통령도 아들과 측근 문제로 임기 말 권력 누수 현상인 레임덕(Lame Duck)을 겪어야 했다. 직선제 대통령 대부분이 임기 말 레임덕을 경험했다. 공무원들은 청와대와 거리를 뒀고, 여당이 대통령의 탈당을 요구하는 경우도 잦았다.
버락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은 임기 말 지지율 56%를 기록하며 높은 인기를 누렸다. 오바마 전 대통령 특유의 소통 능력과 진정성, 도널드 트럼프와 힐러리 클린턴의 진흙탕 대선의 영향이었다. 한 미국 언론은 오바마 전 대통령이 후보로 나왔으면 트럼프 후보를 12%포인트 차로 이긴다고 썼다. 레임덕의 반대말이 마이티덕(Mighty Duck)이다. 뒤뚱뒤뚱 걷는 오리가 아니라 힘센 오리다. 오바마 전 대통령이 미국의 마이티덕이었다.
한국 정치에도 마이티덕이 등장했다. 문재인 대통령이다. ‘마이티 문’(Mighty Moon)인 셈이다. 11일 발표된 한국갤럽 여론조사에서 문 대통령의 직무 수행 긍정률은 41%였다. 임기 말 역대 대통령 중 최고 수치다. 문 대통령이 마이티덕이 된 이유에 대해서는 여러 분석이 있다. 측근·가족 비리가 없었다는 점, 코로나19라는 위기 상황, 핵심 지지층이 건재하다는 점 등이다. 문 대통령이 최근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 후보의 적폐 수사 발언을 비판하며 대선 한가운데로 뛰어들었다. 수치상으로는 문 대통령 지지율이 윤 후보나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후보 지지율을 앞선다(갤럽 기준). 무시하기 힘든 힘센 임기 말 대통령이다. 미국은 대통령이 소속 정당 후보자 지지유세도 많이 하지만, 한국은 대통령의 엄정 중립을 요구한다. 대통령이 전면에 등장해 야당 후보자와 대립하는 모습이 계속 이어지면 안 되겠다.
남도영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