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노한 현직 대통령의 반격… 대선판, 진영 대결로 번지나

입력 2022-02-11 04:02
문재인 대통령이 10일 청와대에서 열린 자립준비청년 초청 오찬 간담회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서영희 기자

문재인 대통령이 10일 “강력한 분노”라는 표현까지 써 가며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 후보를 직접 규탄한 것은 이례적이다. 그간 청와대는 대선 상황과 관련한 입장 표명을 극도로 자제해 왔다.

문 대통령의 격한 분노를 유발한 건 현 정부를 청산의 대상으로 규정한 윤 후보의 발언 때문이다. 청와대 고위 관계자는 이날 “문 대통령은 촛불 정부로서 개혁 과제를 온몸에 안고 살아오신 분인데, (윤 후보는) 정부를 별 근거도 없이 범죄집단으로 규정했다”며 “문 대통령의 자부심과 자존심이 통으로 부정당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윤 후보는 9일 공개된 중앙일보 인터뷰에서 ‘전 정권 적폐청산 수사를 할 것이냐’는 질문에 “해야죠. (수사가) 돼야죠”라고 답했다. 또 “문재인정권에서 불법과 비리를 저지른 사람들도 법에 따라, 시스템에 따라 상응하는 처벌을 받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9일 저녁 해당 기사를 직접 찾아 읽어본 문 대통령은 청와대 참모회의에서 격한 감정을 숨기지 않았다고 한다. 청와대 관계자는 “‘부적절하고 불쾌하다’는 입장 발표로 넘어갈 문제가 아니라고 생각하신 것 같다”고 말했다.

여권에서도 하루종일 성토가 쏟아졌다. 임종석 전 청와대 비서실장은 페이스북에서 “어떤 후보도 ‘집권하면 전 정권을 수사하겠다’는 망언을 한 적 없다”고 비판했다. 더불어민주당 의원총회에서 윤호중 원내대표는 “이렇게 끔찍한 후보가 있을 수 있느냐”고 목소리를 높였다. 청와대 대변인 출신인 김의겸 의원도 “윤 후보는 기득권 세력의 사냥개, 아니 망나니, 그것도 술 취한 망나니가 됐다”고 원색적으로 비난했다.

이재명 민주당 후보 측은 사안이 대선에 미칠 영향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관측은 엇갈린다. 진보진영 지지층 결집에 속도가 붙는 동시에 ‘전 정권 심판’에 염증을 느끼는 중도층에도 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낙관적 전망이 있다. 반면 ‘문재인 대 윤석열’ 구도가 짜여지면서 이 후보의 존재감이 줄어들 것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이 후보와 가까운 한 민주당 의원은 “아직 친문 지지자 중 이 후보에게 마음을 열지 않은 지지자들이 꽤 있다”며 “민주당 지지층 결집이 더 견고해질 것”이라고 말했다. 다른 중진의원도 “결국 중도층 지지를 확보하는 싸움이 될 텐데, 윤 후보가 중도층이 염증을 내는 정치 보복을 들고 나온 것”이라며 “통합과 미래라는 메시지에 집중하는 이 후보에게 유리할 것”이라고 평가했다.

하지만 문 대통령의 전면 등판이 이 후보에게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란 의견도 있다. 민주당 선대위 관계자는 “오히려 윤 후보 지지층 결집을 더 강화하는 계기가 될 것”이라며 “문 대통령이 전면에 나와버리면 이 후보의 존재감은 그만큼 줄어든다”고 우려했다.

전문가들의 의견도 갈렸다. 이재묵 한국외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이 후보가 문 대통령 지지율을 다 가져가지 못하고 있는 상황에서 윤 후보의 이번 발언으로 민주당 결속이 강화될 것”이라고 말했다. 또 “중도층 중에 조금 더 품격 있는 정부를 바라는 사람들에게도 윤 후보가 잘못했다는 평가가 나올 것”이라고 내다봤다.

최진 대통령리더십연구원장은 “보수와 중도층 내에 있는 반문 정서에 기름을 부어버린 격이 됐다”며 상황이 윤 후보에게 유리할 것으로 봤다. 최 원장은 “친문 세력이 전면에 등장하면서 정권교체 여론이 더 힘을 받게 될 수 있다”고 전망했다.

정현수 박세환 손재호 기자 jukebox@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