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이 10일 참모회의에서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 후보의 발언을 거론하며 사과를 요구했다고 청와대가 밝혔다. 윤 후보가 전날 언론 인터뷰에서 집권하면 현 정권의 적폐를 수사해야 한다고 언급한 것에 발끈한 것이다. 대선이 20여일 남은 시기에 대통령이 제1야당 후보의 발언을 문제 삼아 사과를 요구한 것은 이례적인 일이다. 문 대통령은 현 정부를 근거없이 적폐수사의 대상, 불법으로 몬 것에 대해 강력히 분노를 표했다고 한다.
윤 후보의 발언이 지나쳤지만 사과 요구까지 한 것은 선거 중립 책무가 막중한 대통령으로서는 유감스러운 대응이다. 의도했든 하지 않았든 정치적 중립 위반 논란이 확산될 수밖에 없다. 국민의힘은 즉각 ‘노골적이고 부당한 대선 개입’이라며 반발했다. 여야 후보들이 미래를 놓고 정책 경쟁을 펼쳐야 할 대선 과정이 자칫 문 대통령과 윤 후보 간 대결 구도로 변질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크다. 이래저래 대통령 책임론이 불거질 수밖에 없다.
대통령의 처신도 문제지만 불필요한 발언으로 빌미를 제공한 윤 후보는 책임을 통감해야 한다. 윤 후보는 ‘집권하면 전 정권 적폐청산 수사를 할 것이냐’는 질문에 “해야죠. 해야죠. (수사가) 돼야죠”라며 거듭 강조했는데 정치보복 수사를 염두에 두고 있는 것 아니냐는 의혹을 자초했다. 대선 과정에서 야당 후보가 현 정권을 강도 높게 비판하는 것은 있을 수 있는 일이나 지켜야할 선이 있다. 자신이 몸 담았던 정부를 납득할 근거도 제시하지 않고 범죄 집단 취급하는 건 정당한 비판이라고 할 수 없다.
물론 수사에 성역이 있어서는 안 된다. 하지만 범죄 혐의가 있고 수사할 필요가 있다는 판단은 수사기관의 몫이지 대통령이나 대통령 후보가 개입할 영역이 아니다. 자신의 최측근인 특정 검사장을 ‘(수사를) 독립운동처럼 해 온 사람’이라고 치켜세우며 서울중앙지검장을 맡아 적폐 수사를 주도해도 문제될 게 없다는 취지의 발언을 한 것도 부적절했다. 대통령이 전 정권에 대한 수사 필요성을 언급하는 것은 수사 가이드라인을 주는 부당한 개입이고 정치보복이란 비판을 들을 일이다. 더욱이 윤 후보는 검찰총장 출신 아닌가.
수사기관은 여야나 지위고하를 따지지 말고 엄정히 수사해야 하고, 정치 권력이 수사에 개입해선 결코 안 된다. 이는 차기 대통령이 누가 되더라도 지켜야 할 대원칙이다. 청와대와 정치권은 논란을 소모적 정쟁으로 확산시키지 말아야 한다.
[사설] 尹의 ‘적폐 수사’ 발언도, 文의 ‘사과 요구’도 부적절했다
입력 2022-02-11 04: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