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 용인에 사는 송은정(52)씨는 매년 안락사가 임박한 유기견 200여 마리를 인근 가평군 보호소에서 긴급 입양한다. 일부는 본인이 맡고 나머지는 친구, 지인이나 자원봉사자에게 맡긴 뒤 국내외 입양처를 찾는다. 입양의 형식을 빌린 임시보호인 셈이다. 지방자치단체의 공공 동물보호센터(보호소)는 포화상태에 이르면 유기견들을 안락사한다. 송씨는 이렇게 죽음의 문턱까지 간 유기견들을 일단 입양한 뒤 사비를 들여 사설 위탁보호소에 입소시키거나 국내외 가정입양을 주선해 안락사를 막아왔다. 송씨가 지난 3년간 구조한 유기동물 숫자는 600마리가 넘는다.
하지만 이 같은 구조활동은 이제 불가능하다. 농림축산식품부(농식품부)가 올해부터 유기동물 입양 숫자를 1인당 3마리로 제한하는 내용의 동물보호센터 운영지침을 시행하고 있기 때문이다. 농식품부 관계자는 “보호소에서 입양한 품종견을 국내 펫숍이나 해외로 판매하는 등 악용 사례가 있어 이를 방지하기 위한 조치”라고 밝혔다.
올해 초 안락사가 임박한 유기견 3마리를 입양한 송씨는 지자체 담당자로부터 추가 입양을 불허한다는 답변을 받았다. 송씨는 “중앙 부처에 항의했더니 ‘추후 입양률, 안락사 통계가 악화하면 지침을 수정하겠다’고 답했다”면서 “통계가 악화한다는 건 수천수만 마리 유기동물이 안락사당했다는 얘기일 텐데 생명을 살리려는 입장에서 비통하다”고 말했다.
유기동물 입양률이 저조한 지역의 보호센터에선 개인 봉사자가 매년 100마리 이상 긴급 입양하는 경우가 흔하다. 임시로 입양한 뒤 장기간에 걸쳐 임시보호 내지 입양처를 주선한다. 전국 지자체가 운영하는 보호소는 280곳 안팎인데 이 중 봉사자 의존도가 높은 영세 보호소에선 새 지침으로 인해 유기동물 안락사율이 급증할 가능성이 크다.
경북 구미의 개인 봉사자 조정희(41)씨는 칠곡 등 인근 보호소에서 연간 70여 마리를 긴급 입양한다. 조씨는 “보호소는 포화 상태인데 안락사가 임박한 동물을 빼낼 수가 없다. 한 보호소장은 ‘애들 다 죽으라는 지침’이라며 걱정한다”고 말했다.
정부는 대규모의 유기견 긴급 입양이 필요하면 동물보호 민간단체를 설립하면 된다고 했다. 하지만 민간단체를 설립하려면 수천만원의 재산 출연과 100명 이상의 회원 모집 등 어려운 조건을 충족해야 한다. 정부는 동물보호단체가 중간에 기증 형태로 보호센터 동물을 양도받은 뒤 개인 봉사자에게 건네는 방식도 제안했지만 역시 비현실적이다.
한 동물보호센터 소장은 “동물보호단체들은 학대 문제를 공론화하고 구조를 촉구할 뿐 구조된 동물을 돌보는 것은 개인 봉사자가 대부분”이라며 “동물보호단체에 대규모 입양의 책임을 지우는 건 이해하기 어렵다”고 비판했다.
이성훈 기자 tellme@kmib.co.kr
정부 새 지침으로 유기동물 대량 안락사 위기
입력 2022-02-12 04: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