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문재인 대통령의 중동 순방에서 기업들은 활발하게 협업의 손길을 주고받았다. 산유국이자 부유한 나라들이 몰려 있는 중동이기 때문에 사업 기회도 많다. 다만 초점이 달라졌다. 과거엔 안정적 원유 공급망 확보와 건설·에너지 플랜트 진출에 쏠렸다면, 이번에는 ‘암모니아’가 테이블에 올랐다.
현대오일뱅크는 사우디아라비아의 국영기업인 아람코와 함께 저탄소 연료원으로서 암모니아의 활용 타당성을 조사하는 업무협약(MOU)을 맺었다. 사우디아라비아로부터 암모니아를 장기적으로 공급받을 수 있는 기회를 얻으려는 취지다. 롯데정밀화학은 아람코와 ‘저탄소 암모니아’의 장기 공급을 위한 프로젝트 타당성 조사에 협력하기로 했다. 아람코는 사우디아라비아의 국영 석유기업이다. 왜 아람코와 원유가 아닌 암모니아 수입을 논의했을까.
암모니아 최대 수출국 꿈꾸는 사우디
세계적 산유국인 사우디아라비아는 풍부한 천연가스 매장량을 기반으로 ‘석유 수출국’에서 ‘수소 수출국’으로의 전환을 선언했다. 사우디아라비아는 석유 대신 암모니아 최대 수출국을 꿈꾸고 있다. 2020년 9월 일본에 처음으로 블루 암모니아 40t을 수출하기도 했다. 암모니아는 일반적으로 비료나 공업용으로 쓰인다. 최근에는 정유·에너지·화학업계에서 암모니아에 눈독을 들이고 있다. 암모니아가 수소의 운반물질이자 무탄소 에너지원으로 주목받고 있어서다. 에너지원으로 석유 대신 암모니아를 수입하는 시대가 온 것이다.
10일 산업계에 따르면 정부는 한국의 연간 수소 수요를 2030년 390만t, 2050년 2700만t으로 추산한다. 이 가운데 청정수소 비중을 2030년에 50%, 2050년에 100%로 확대할 계획이다. 다만 수소는 기체 상태인 데다, 대용량 수송이 어렵다는 문제를 안고 있다. 그래서 수소 저장·운반 방식으로 고압수소, 액화수소, 암모니아 등이 거론된다. 특히 산업계는 암모니아에 주목한다. 암모니아(NH3)는 수소 원자 3개와 질소 원자 1개가 결합한 분자다. 수소를 액체상태로 저장해 운반할 수 있는 일종의 ‘캐리어’ 역할이 가능하다. 암모니아의 부피에너지밀도는 일반 수소의 1467배로 고압수소(463배), 액화수소(865배)보다 높은 에너지밀도를 가진다. 기존 인프라를 이용해 운송할 수 있다는 장점도 있다. 대신 냄새와 독성이라는 걸림돌이 남아 있다.
암모니아는 생산 과정에 따라 그린 암모니아, 블루 암모니아 등으로 분류된다. 그린 암모니아는 이산화탄소 배출 없이 풍력, 태양광 같은 신재생에너지로 생산한 암모니아를 지칭한다. 블루 암모니아는 화합물 생산과정에서 배출되는 이산화탄소를 분리·포집해 저장하고 천연가스 등을 원료로 생산한 암모니아다.
우리 기업들 “암모니아를 잡아라”
우리 기업들은 그린 암모니아나 블루 암모니아 도입 기술을 활발하게 연구 중이다. GS에너지는 지난해 10월 블루 암모니아 도입을 위해 아랍에미리트 아부다비국영석유회사(ADNOC)와 도입 실증 프로젝트 계약을 체결했다. GS에너지는 향후 아부다비에서 생산되는 블루 암모니아를 수입해 암모니아 혼소발전, 암모니아 분해(크래킹) 연구·개발 등에 활용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에쓰오일은 아람코와 협력해 블루 암모니아를 수입한 뒤 파트너십을 체결한 삼성물산, 발전회사에 공급할 예정이다. 기존의 공장 발전 연료를 수소로 전환하고 중질유 분해 탈황 등의 생산공정에 청정수소를 투입한다는 계획이다. 현대중공업도 올해 초 아람코와 친환경 수소, 암모니아 활용 등에 관한 MOU를 맺었다. 현대오일뱅크는 아람코로부터 블루 암모니아를 받아 2024년까지 설립 예정인 LNG 보일러의 연료로 일부 활용할 방침이다.
㈜한화와 한화임팩트는 지난해 10월 원익머트리얼즈, 원익홀딩스와 암모니아를 기반으로 한 수소 생산·공급에 협력하기로 했다. 4개 기업은 암모니아를 분해해 수소를 생산할 수 있는 시스템을 공동 개발한다. 대규모 수소 생산 공급 시설 구축까지 염두에 두고 있다. 롯데정밀화학은 세계 1위 암모니아 유통회사 트라모(TRAMMO)와 지난해 8월 그린 암모니아 구매 협약을 맺었다. 지난해 12월 그린 암모니아 해상운송·벙커링 컨소시엄의 암모니아 추진선 국제인증을 땄다.
아직 가야할 길 먼 수소 경제
수소 유통을 위해 필수적인 암모니아 분해 기술은 한국뿐만 아니라 세계적으로 아직 연구·개발 수준에 머물러 있다.
또한, 암모니아가 유일한 대안은 아니다. 안정적 수소 캐리어인 데다 직접 연소도 가능하지만, 액화수소도 경쟁력을 갖고 있다. 이태의 에너지경제연구원 연구위원은 “암모니아는 수소를 추출해서 쓸 수 있는 동시에 직접 연소할 수 있다. 변화 효율성이 좋고, 안정적으로 수입할 수 있다는 장점 때문에 수소 운송 수단으로 주목받고 있다”면서 “답이 암모니아 하나라고 할 수 없다. 다양한 시각을 갖고 미래를 준비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지애 기자 amor@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