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로 활동하며 다양한 인터뷰 기회를 얻는다. 최근 한 지면과 인터뷰를 하며 이런 질문을 받았다. ‘글쓰기에 매료됐던 최초의 순간은 언제인가요?’ 뜻밖의 궁금증을 만나면 즐거운 당혹감에 빠지게 된다. 세월의 이끼가 촘촘히 덮인 기억들을 헤집어 나가다 보면 나조차 잊고 있던 과거가 보석처럼 발굴되기 때문이다. 글이라는 것에 반했던 최초의 기억을 복기하며 과거로, 과거로 거슬러 올라가는데 문득 정수리에 작은 번개가 꽂히듯 생각나는 사건이 있었다.
막 초등학교에 입학했을 무렵이었다. 수업시간에 본 것인지 도서관에서 본 것인지는 떠오르지 않지만, 어린 가슴을 뛰게 한 글 한 편을 마주했다. 놀랍게도 아직까지 모든 구절이 생생하다. 박목월 시인의 ‘다람쥐’라는 동시로 전문을 소개하자면 이렇다. ‘다람다람 다람쥐/ 알밤 줍는 다람쥐/ 보름보름 달밤에/ 알밤 줍는 다람쥐/ 알밤인가 하고/ 조약돌도 줍고/ 알밤인가 하고/ 솔방울도 줍고.’ 당시 나는 이 글을 읽고 충격을 받았다. 분명 종이에 쓰인 글인데 어쩌면 이렇게 노래하듯 읽힐 수가 있지? 나는 글을 읽었을 뿐인데 왜 눈에 생생히 보이는 것 같지? 길지도 않은 글인데 어떻게 이처럼 순식간에 사람의 마음을 흐뭇하게 만들지?
선생님은 그것이 ‘시’라고 하셨다. 즐거운 충격이었다. 우리말은 받아쓰기 시험에서 ‘설거지’나 ‘베개’ 같은 단어로 나를 헷갈리게만 하는 것이 아니라 이런 깜찍한 짓도 하는구나 생각했다. 당장 나도 시를 써보고 싶었다. 그래서 그날 일기장에 ‘병아리’라는 제목의 시를 써보았는데 ‘삐약삐약 병아리’라는 첫 구절만 떠오르긴 하지만, 돌이켜 생각해 보면 아무리 봐도 박목월 시인의 오마주였다. 아무튼 나는 인생 최초로 만난 한 시인의 시를 읽고 가슴에 떠오른 감동을 나름대로 변주했고 그것이 내가 한 최초의 창작, 내가 쓴 최초의 시였다. 나의 글을 읽으신 선생님의 첫 말씀은 ‘엄마가 써주셨니?’였다. 막 한글을 뗀 아이가 쓴 시라기엔 꽤 괜찮게 보였던 모양이다. 나는 얼굴을 붉히며 ‘아니요, 제가 쓴 건데요’라고 말했다. 물론 박목월 시인이 큰 손으로 등을 밀어주었기에 가능했던 작문이었지만.
선생님은 그 시가 썩 흡족하셨는지 다른 선생님들께도 알렸다. 당시 우리 학교에는 작은 방송국이 있었고 일종의 문학 프로그램으로 일주일에 한 번씩 학생들의 글을 소개하곤 했다. 나의 시는 거기에도 소개됐다. 말하자면 나의 창작물이 전파를 탄 것이다. 전교생 앞에 내가 쓴 문장이 울려 퍼지던 순간은 일곱 살 인생의 클라이맥스였다.
하나의 질문 앞에 이 해묵은 기억을 복기하며 즐거운 충격에 빠졌다. 분명 나의 과거임에도 까맣게 잊고 있었던 사건이기 때문이다. 이 일이 놀라웠던 것은 카피라이터로 시작해 만화가와 수필가를 거쳐 시인에 이른 오늘의 경력이 이 사건 하나에 녹아 있었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창작물을 만들고 그를 전파에 태운 그날의 짜릿함이 오늘의 나를 만들었다. 그 동력으로 줄기차게 글을 써서 매체에 태워 보내는 삶을 살게 됐다.
단언하건대 저 일은 이제 이 지구상에 나 말고는 누구도 기억하지 못하는 사소한 사건일 것이다. 하지만 내 인생을 움직였다. 그렇구나. 어린 날에는 벼락같이 인생의 나침반을 돌려버릴 대사건을 언제 마주할지 모르는 것이구나. 나이가 들수록 감정에도 굳은살이 박이는지 그런 드라마틱한 순간은 잘 찾아오지 않는데 말이다. 어쩌면 누구에게나 ‘그 순간’이 있을지 모른다. 어제 난생처음 수족관에 다녀왔다는 조카의 사진을 전해 받았다. 푸른 물빛이 어린 그 경이의 표정을 보며 생각했다. 어제 조카도 ‘그 순간’을 맞이했을지도 모른다고. 어제가 아니더라도 언젠가 ‘그 순간’을 맞이할 거라고. 우리의 어린 시민들은 모두 ‘그 순간’의 예비자들이다. 그들에게 건네는 말 한마디가, 그들에게 선사하는 사건 하나가 ‘그 순간’을 만들 수 있다니 어찌 섬세해지지 않을 수 있을까.
홍인혜(시인·웹툰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