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을 생각하라는 라틴어 ‘메멘토 모리’는 이어령 전 문화부 장관의 좌우명이다. 여섯 살 굴렁쇠를 굴리던 시절 어머니 숨소리를 느끼고픈 생각으로 눈물을 흘리던 순간에, 그는 훗날 알게 된 저 말의 느낌을 온몸으로 접했다고 자작시 ‘메멘토 모리’에서 털어놨다. 암과 싸우며 인생이란 마라톤의 골인 지점을 앞둔 그가 지난해 12월 국민일보와 6회에 걸쳐 나눈 죽음에 관한 대화록이 ‘메멘토 모리’란 책으로 엮여 나왔다.
시대의 지성 이 전 장관은 이병철 전 삼성그룹 회장이 죽음을 앞두고 가톨릭 사제에게 물었던 창조주, 영혼, 종교, 천국, 부자가 천국 가기 어려운 이유, 지구의 종말 등 24가지 질문에 관해 마지막 힘을 짜내어 다시 한번 답한다. 책의 1부는 국민일보에 게재된 짧은 형식의 답변으로 그보다 2년 앞선 2부의 월간조선 인터뷰를 한 번 더 압축해 답한 결과다. 비유는 더 날카로워지고 재치는 번뜩이며, 마치 정금처럼 군더더기 없는 경구들로 말과 글이 연단됐음을 알 수 있다.
코로나를 통해 이 전 장관은 마스크를 새롭게 발견했다고 말한다. 마스크는 나를 바이러스에서 보호하지만 다른 이에게 병균을 옮기지 않는 이타적 역할도 한다. 마스크를 쓰면서 내 얼굴이 감춰지는 게 아니라 드러나는 것도 있다. 가면을 쓰면서 내 성격이 드러나는 가면무도회 같은 상황이 벌어진다고 그는 말한다.
“일흔 된 늙은 제자들이 마스크를 쓰고 나를 찾아와요. 마스크를 쓰고 있으니 주름이 하나도 안 보여. 하하하. 눈만 보이는데, 눈이 저렇게 아름답구나. 마스크로 얼굴을 가리게 되니 그동안 보지 못한 눈을 새롭게 보게 된 것입니다. 참된 얼굴이 드러나는 겁니다.”
구순의 지성이 유언처럼 남기고 싶은 말과 글과 지혜가 온전히 담겼다. 출판사 열림원은 이 책을 제1권으로 해서 총 20권 규모로 ‘이어령 대화록’을 발간할 계획이다.
우성규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