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블시론] 무속 논란과 한국교회의 숙제

입력 2022-02-11 04:02 수정 2022-02-11 04:02

대선 정국이 무속 논란으로 시끄럽다. 윤석열 국민의힘 후보의 왕(王)자 손바닥, 부인 김건희씨 녹취록 등으로 불거진 갑론을박이 여전히 진행 중이다. 평소 도사들과 가깝고 점술에 의존적이었다는 둥, 무속인이 주요 결정을 한다는 둥 의혹과 반박이 난무한다. 무속인을 등용한 건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후보 캠프도 마찬가지라는 주장도 나왔다.

나처럼 종교와 세속의 경계가 만들어지는 방식에 관심 있는 사람에겐 이런 소문의 진위보다 무속과 종교, 정치를 놓고 오가는 이야기들이 더 흥미롭다. 특히 개신교가 내놓는 입장이 주목된다. 개신교 유입 초기부터 이어져 온 무속과의 관계에서 살펴볼 게 많아서다. 그런데 정치적 이해 득실을 따지려는 충동을 누르고 보면 여기서 역설적으로 한국교회가 풀어야 할 숙제가 읽힌다.

이번 논란에서 개신교 입장은 넷으로 나뉜다. 첫째는 합리성과 과학을 벗어난 영역 자체를 문제 삼는 견해다. 후보와 배우자가 비과학적 무속에 연루된 자체가 문제라는 말이다. 합리성과 과학성을 충족하지 못한 것이라면 개인과 사회에 관여하는 게 허용되지 않는다. 그런데 이는 이성과 과학 역시 완벽하지 않다는 점에서 한계가 있다. 과학기술은 우리 삶과 죽음을 다 제어하지도 설명하지도 못한다. 따라서 종교를 합리적 이성 아래에 위치시키는 이런 논리는 결국 인간의 근원적 한계와 과학의 불완전성이 전제된 종교 고유의 자리까지 부정하는 꼴이 된다.

두 번째, 무속이 사사로운 욕망 추구에만 탐닉한다는 점을 문제 삼는다. 주술로 개인의 장래를 예측하고, 운명을 조종하려는 사적 기복에 대한 비판이다. 핵심은 공공선과 공정의 결여에 있다. 그런데 이 논리는 한국 개신교의 강한 기복성을 지적해 온 종교학자들의 진단과 충돌한다. 교회 현실이 건강, 성공, 물질적 풍요 축원에 머물렀음을 성찰하고 이를 넘어서는 공평과 정의, 평화의 복(福)을 구해야만 설득력이 생긴다.

셋째는 비합리성이 공적 영역에 개입하는 걸 비판한다. 사적으로 무속에 심취하는 건 괜찮지만 그 영향력이 정치와 나랏일에까지 확장되는 건 용납할 수 없다. 무속을 ‘무교’로 일컬으며 이웃 종교로 인정하는 전향적 태도도 볼 수 있다. 하지만 이 역시 개신교에 먼저 적용돼야 한다는 지적을 피하긴 어렵다. 한국교회가 정치에 개입했던 수많은 사례로부터 공과를 엄밀히 구분해 종교의 바람직한 공공성 실천법을 제시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이 논란에 대한 침묵이다. 대외적 입장 표명이 없어 정확한 논리를 알 수는 없지만, 무속 논란을 상대 진영의 근거 없는 정치 공세로 판단하거나 대수롭지 않은 일로 여기는 듯하다. 정교 분리에 철저한 침묵이라 추론할 수도 있다. 하지만 석연치 않다. 개신교 내부의 복잡한 지형에서 과거 장로 대통령 만들기에 앞장섰고, 타 종교 존중에 제일 인색하며, 각종 현안마다 목소리를 높이는 이들의 침묵이기 때문이다. 가장 설득력 있는 해석은 진영 논리다. 이미 지지하기로 선택한 정치 세력의 유불리에 따른 전략이라는 말이다. 신앙이 정치 이념의 종속 변수가 된 셈이다.

무속 논란이 도출한 한국교회의 숙제 목록은 이렇다. 신앙과 이성의 관계를 재정립함으로써 과학만으로는 불가해한 영역의 가치를 최대한의 합리성으로 설명하기. 무속의 흔적을 직시하고 표피적 기복을 넘어서려는 노력으로 사교(邪敎)와의 차이를 입증해내기. 더 나은 세상을 향한 공공의 노력에 종교가 이바지할 옳은 길을 제시하기. 무엇보다 개신교 신앙이란 결코 어떠한 정치 세력의 이해관계에도 종속될 수 없는 것임을 분명하게 보여주기. 모두 스스로 제기한 과제들이기에 그만큼 책임도 크다.

박진규 서울여대 언론영상학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