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범한 디지털 파일처럼 보이는 NFT(대체불가토큰)가 해외에서 억대 가격에 팔렸다는 뉴스는 한탕 심리를 자극한다. 누가 그만한 돈으로 NFT를 사나 싶으면서도 암호화폐처럼 초기에 진입하면 막대한 수익을 얻지 않을까 고민하는 투자자가 늘고 있다. 빠르게 성장하는 글로벌 NFT 시장과 쏟아지는 장밋빛 전망은 투심을 부추긴다.
전 세계적으로 불어닥친 이 같은 NFT 투자 열풍의 이면에 ‘검은손’이 있다는 분석이 나왔다. 동일 소유주로 추정되는 계좌끼리 서로 NFT를 사고팔아 가격을 부풀린 흔적이 발견됐다. 사기·횡령 등 부정 자금이 급격하게 늘어난 사실이 파악됐다. 단기 차익이나 대박을 노리고 진입했다가는 낭패를 볼 수 있는 상황이다.
“누가 사나” 싶던 NFT, 가격 뻥튀기
11일 가상자산업계에 따르면 NFT 시장은 지난해 급성장했다. 블록체인 데이터 분석업체 디앱레이더에 따르면 2020년 한 해 1억 달러에 불과했던 NFT 시장 규모는 2021년 1분기 12억3000만 달러, 2분기 12억4000만 달러로 커졌다. 3분기에는 무려 107억 달러로 폭증했다.
NFT로 제작된 그림, 영상, 게임 콘텐츠가 ‘억’ 소리 나는 가격에 팔리면서 시장은 폭발적으로 성장했다. 지난해 3월에는 세계적인 경매업체 크리스티 경매에서 NFT로 제작된 ‘매일: 첫 5천일’이라는 제목의 디지털 아트가 6930만 달러(약 828억원)에 낙찰됐다. 경매 입찰가는 100달러(약 12만원)에 불과했다. NFT로 막대한 차익을 벌 수 있다는 이야기에 투자금이 쏠렸다.
하지만 일부 NFT는 동일인이 매매와 시세를 인위적으로 조작하는 ‘자전거래(wash trade)’로 가격이 부풀려진 것으로 조사됐다. 블록체인 데이터 분석업체 체이널리시스는 최근 ‘2022 가상자산 범죄 보고서-NFT 보고서’를 통해 NFT 시장에 자전거래가 기승을 부리고 있다고 지적했다. 보고서에 따르면 블록체인 분석을 통해 NFT를 거래하는 암호화폐 지갑을 추적한 결과 일부 NFT를 판매한 자금과 구매한 자금 출처가 동일한 지갑 262건이 발견됐다. NFT는 보통 암호화폐 지갑에 담긴 코인으로 거래돼 지갑 주인이 곧 NFT 소유자가 된다. 사실상 한 사람이 하나의 NFT를 사고팔아 거래량이 많고 가격이 오르는 것처럼 조작했다는 의미다.
지난해 25차례 이상 자전거래가 이뤄진 지갑 110개는 모두 888만 달러를 벌어들인 것으로 추정된다. NFT 가격이 오른 것처럼 꾸민 뒤 이를 모르는 투자자에게 팔아넘긴 것이다. 가장 많은 자전거래를 한 지갑은 무려 830차례 매매를 한 것으로 나타났다. 킴 그라우어 체이널리시스 선임연구원은 “수익성 높은 지갑들은 다양한 플랫폼에서 여러 NFT를 거래해서 수익을 내는 경향이 있다”고 말했다. 다만 152개 지갑은 42만 달러의 손실을 봤다. NFT를 거래하려면 블록체인 등록을 위한 수수료인 ‘가스비(Gas Fee)’를 지불해야 하는데 이 비용이 만만치 않았기 때문이다.
가격 뻥튀기로 투심을 자극하는 자전거래는 NFT 시장의 신뢰도와 안정성을 끊임없이 흔들고 있다. 지난달 새로 만들어진 글로벌 NFT 거래소 ‘룩스레어’에서 83억 달러가 넘는 자전거래가 이뤄졌다는 의혹도 제기됐다.
NFT 시장에 유입되는 부정 자금도 늘어나는 추세다. 보고서는 지난해 4분기 NFT 마켓플레이스에 유입된 부정 자금 규모가 140만 달러에 달한다고 밝혔다. 지난해 2분기까지 50만 달러에 미치지 못하던 부정 자금은 3분기 처음으로 100만 달러를 넘겼다. 대개 사기나 횡령, 다크넷 등을 통해 마련된 ‘검은돈’으로 추정된다.
다변화하는 국내 NFT 플랫폼
해외만큼 활발하지는 않지만 국내에서도 NFT 시장은 저변을 넓히고 있다. 빅테크 기업과 암호화폐 거래소들이 속속 NFT 마켓을 출시하면서다. 카카오의 계열사 그라운드X는 지난해 7월 NFT 거래 마켓인 ‘클립드롭스’를 선보였다. 암호화폐 거래소 코빗과 업비트도 각각 ‘코빗NFT’ ‘업비트NFT’를 내놓았다. 빗썸도 연내 NFT 거래소를 개발해 오픈할 예정이다.
다만 누구나 제한 없이 NFT를 발행·매매할 수 있게 하는 해외 거래소의 방식과 다르게 주요 국내 플랫폼은 거래 작품을 검증·엄선하고 있다. 사기 논란을 방지하고 정부의 규제 가능성에 대응하기 위해서다. NFT 플랫폼 내 가격 부풀리기나 부정 자금도 면밀히 들여다보고 있다. 업비트 관계자는 “암호화폐 거래에 쓰이는 이상거래 탐지 기능을 활용해 NFT 자전거래 등을 모니터링하고 있다”며 “이상한 패턴으로 사고판 흔적이 있으면 모두 감지할 수 있다”고 말했다.
체이널리시스는 “블록체인 데이터를 통해 손쉽게 자전거래 등을 추적해낼 수 있는 만큼 NFT 플랫폼들이 더 적극적인 제재에 나설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개별 투자자들이 NFT 투자 전 플랫폼이 믿을 만한지, 해당 NFT를 되팔 수 있을지 등을 신중하게 검토해야 한다는 지적도 있다.
방극렬 기자 extrem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