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과 소금] 혼합종교 만신전에서 탈출해야

입력 2022-02-12 04:02

최근 미국 고든콘웰신학교 세계기독교연구센터는 세계 기독교 현황을 발표하고 2025년까지 전 세계 종교 인구가 72억9500만명에 이를 것으로 전망했다. ‘신을 믿는다’는 사람이 2억4000만명 늘어난다는 것이다. 반면 무신론자는 300만명 줄어들 것으로 내다봤다. 2016년 통계청이 발표한 인구조사 결과 우리나라의 무종교인이 인구 절반을 넘는 56.1%를 차지한 것과는 사뭇 다르다. 한국 바깥 세계에서는 종교인이 늘어나고 있다.

그런데 우리 사회를 보면 무종교인 증가는 체감이 잘 안 된다. 소위 영성에 대한 관심이나 종교적 갈급함은 여전한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종교적 의미의 치유나 힐링이란 말이 일상화됐고 TV나 유튜브 등엔 종교적 언어와 상징, 코드들이 일종의 문화로 자리잡았다.

이런 흐름은 최근 한국리서치가 발표한 ‘점, 신년 운세에 대한 인식조사’ 결과에서도 잘 나타난다. 조사에 따르면 최근 5년간 점(사주, 타로, 관상, 신점)을 본 경험이 있는 국민은 41%를 차지했다. 60대를 제외한 전 연령층에서 40% 이상의 사람이 점을 본 경험이 있다고 답했다. 개신교인도 23%나 된다. 미신으로 여기는 점을 21세기를 살고 있는 사람들이 관심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특별한 이유 없이 ‘재미로’ 점을 봤다는 응답이 가장 많았지만 점을 봤다는 것은 사람들의 종교적 심성이 작동했다는 뜻일 게다.

바야흐로 다종교 시대를 살아가는 가운데 최근 눈에 띄는 장면이 포착됐다. 무속인이 자신들을 폄하하지 말고 무교로 인정하라고 주장하거나, 심지어 기독교 이단들이 일간지에 전면광고를 실으며 적극적인 홍보전에 나섰다는 점이다. 음지에 있던 사람들이 자신들의 믿음 체계가 하나의 종교임을 드러내고 있는 것이다.

이런 대범함은 이제 우리 사회가 다종교 사회를 넘어 혼합 종교 사회가 되고 있음을 시사한다. 특정 지역에 교회와 사찰, 성당을 비롯해 점집과 이단 단체의 회합이 공존하면서 혼합주의 양상을 띤다는 말이다. 종교 혼합주의는 모든 종교를 상대적이고 포용적이며, 실용적 측면에서 구별 없이 수용하는 자세를 일컫는다. 마치 고대 로마제국의 만신전(萬神殿·Pantheon)처럼 우리는 보이지 않는 만신전을 지어놓고 그 속에서 살아가는 것일 수도 있다. 만신전엔 돈의 신 ‘맘몬’도 있을 것이고, 과학주의 만능 신, 인간의 영원한 가능성을 신봉하는 인본주의 신도 있겠다.

문제는 기독교인 입장에서 이 같은 만신전 속에서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 하는 점이다. 이리 기웃 저리 기웃하며 ‘흥미로’ 한 번쯤 다가갈 것인가. 아니면 ‘오직 나와 내 집은 여호와만 섬기겠노라’(수 24:15) 하며 살 것인가. 그동안 한국교회는 종교 혼합주의에 대해 ‘영적 전쟁’ 또는 ‘영적 싸움’을 선포하며 단호한 입장을 표해 왔다.

하지만 대선을 앞두고 나타난 교회 지도자들의 행태는 자못 실망스럽다. 툭하면 ‘영적○○’이라는 말을 써가며 시대와 상황을 해석하고 성경대로 살자고 강조했으면서도 대선 후보와 관련된 무속 논란에 대해서는 말이 없다. 일부 신학자와 목회자들은 발빠르게 성명을 내면서 무속정치, 비선정치를 비판했지만 한국교회 다수를 차지하는 보수적 교회의 목회자들은 침묵하고 있다.

이러는 사이 성도들은 현실판 ‘아합과 이세벨’의 출현에 분노하고 선지자 엘리야는 도대체 어디 있느냐며 탄식한다. 물론 또 다른 대선 후보의 욕설이나 부인 갑질 논란도 문제이지만 기독교인에게 무속은 그 차원이 다른 영적인 사안이다. 그러니 보수 성향의 ‘샬롬을꿈꾸는나비행동’(대표 김영한 박사)에서조차 지난 8일 ‘대형교회는 대선 후보 부부의 무속 유착 의혹에 대해 입장을 밝히라’고 촉구하는 것 아니겠는가. 한국교회는 만신전에서 탈출해야 한다. 핍박을 받더라도 주변인으로 살아야 한다. 그것이 1세기 초대교회 신자들이 살았던 방식이 아니던가.

신상목 종교부장 smshi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