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 “긴장 완화 약속한 적 없다”… 졸지에 허풍쟁이 된 마크롱

입력 2022-02-10 04:04
미군 제82공수사단 부대원들이 8일(현지시간) 우크라이나 인접국인 폴란드 남동부에 도착해 군장을 메고 이동하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의 공언과 달리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프랑스에 우크라이나 긴장 완화를 약속한 적 없다고 러시아가 반박했다. 러시아는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의 리더가 아닌 프랑스와는 어떤 거래도 할 수 없다며 양국 정상회담의 의미를 축소했다. 마크롱 대통령에 굴욕을 안겨준 셈이다.

드미트리 페스코프 러시아 크렘린궁 대변인은 8일(현지시간) 푸틴 대통령이 (마크롱이 말한) 그런 약속을 했다는 주장을 부인했다고 미국 비지니스인사이더가 전했다. 러시아는 프랑스와 어떤 거래를 할 만큼 나토 내에서 마크롱의 영향력이 크지 않다는 점을 강조했다.

페스코프 대변인은 영국 가디언에 “모스크바와 파리는 어떤 거래도 할 수 없었다”며 “프랑스는 유럽연합(EU)에서 선도적인 국가고 나토 회원국이지만 그곳의 지도자는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그는 “이 구역에서는 아주 다른 나라(미국)가 책임을 지고 있다”며 “그런데 우리가 어떤 거래에 대해 대화할 수 있겠느냐”고 반문했다. 미국 말고는 담판 상대가 없다고 선을 그은 것이다.

러시아 발트함대 소속 상륙함 민스크호가 같은 날 흑해로 가기 위해 터키 이스탄불 보스포루스 해협을 지나고 있는 장면. 로이터연합뉴스

우크라이나 위기를 해결하겠다며 전날 모스크바를 방문한 마크롱 대통령은 크렘린궁에서 푸틴 대통령과 5시간 넘게 대화했다. 그는 다음날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을 만나러 키예프로 넘어가는 비행기에서 취재진에게 자신이 구체적인 안전보장 방안을 제안했고 푸틴 대통령으로부터 상황을 더 악화시키지 않다는 확약을 받았다고 설명했다. 마크롱 대통령은 이날 젤렌스키 대통령과 회담 후 공동기자회견에서도 푸틴 대통령이 우크라이나 내 긴장을 고조시킬 계획이 없음을 확인했다고 재차 강조했다. 그는 “이제 우리는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간 협상을 진전시킬 가능성을 갖게 됐다”며 “러시아와 서방 간 긴장을 완화하기 위한 구체적이고 실질적인 해결책을 봤다”고 연쇄 정상회담의 성과를 자랑했다.

하지만 이 자리에서 젤렌스키 대통령은 마크롱 대통령이 전한 소식에 회의적이었다. 그는 “나는 말을 별로 신뢰하지 않는다”며 “모든 정치인은 구체적 조치를 함으로써 투명해질 수 있다”고 말했다고 로이터통신은 전했다.

우크라이나 사태를 놓고 군사적 긴장감은 갈수록 높아지고 있다. 이날 러시아 해군은 지중해 훈련을 명분으로 대형 상륙함 6척을 흑해로 보냈다고 워싱턴포스트(WP) 등이 전했다. 우크라이나와 국경을 맞댄 벨라루스 상공에서는 핵무기를 탑재할 수 있는 러시아 측 장거리 전략폭격기 2대가 4시간 동안 순찰 임무를 수행했다.

강창욱 기자 kcw@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