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선 후보들이 동네 놀이터 만들어주겠다는 것까지 무수히 많은 공약을 내놓고 있지만 정작 정치개혁에 대한 이야기가 없다. 누가 당선되든 정치가 달라지지 않을 것 같다는 우려가 있다.”
강원택(61) 서울대 정치외교학부 교수는 이번 대선이 “미래가 어떻게 달라질지 기대가 없는 매우 독특한 선거”라고 했다. 강 교수는 우리 시대의 대표적인 정치학자 중 한 명으로 한국정당학회와 한국정치학회 회장을 지냈다. 칼럼과 강연, 저술활동을 통한 정치 진단으로 대중에게도 친숙하다. 30일도 채 남지 않은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강 교수에게 가장 큰 변수로 꼽히는 후보 단일화와 정치개혁, 후보들의 청와대 개편 등 관련 공약, 대선 후 정계 개편에 대해 물었다.
-대선 후보 단일화가 관심이다. 안철수 국민의당 대선 후보는 완주가 아니라 당선이 목표라고 하는데, 어떻게 보시나.
“선거일이 가까워질수록 막판 표 결집 때문에 제3 후보의 지지율은 낮아질 수밖에 없다. 실제 득표율은 여론조사보다 떨어질 가능성이 많고, 최대 9~10%로 본다. 그럼 단일화 없이도 양대 후보 중 어느 한쪽이 근소하게 승리할 수 있다. 협상력을 높이기 위해 완주한다고 하겠지만 현실 정치인 안철수로서는 비합리적인 선택이다.
안 후보가 이번 대선을 통해 기대할 수 있는 건 두 가지라고 본다. 하나는 대선 성과를 바탕으로 6월 지방선거와 내후년 국회의원 선거에서 당을 키우는 것이다. 그런데 2016년 20대 총선에서 38석을 얻었지만 안 후보에게는 큰 도움이 되지 않았다. 정치인 안철수의 단점 중 하나는 국회의원을 잠깐 해본 것 외에 공직을 맡아본 적이 없다는 점이다. 정부 내에서 중요한 자리를 갖는 것은 유권자에게 안철수라는 정치인에 대한 신망을 높일 수 있고 본인도 국정 경험을 쌓는 기회가 된다. 그런 제안이 온다면 해볼 만하지 않겠나.”
-‘안철수 책임총리론’ 말씀인가.
“책임총리라는 명칭에는 의미가 없다. 대통령이 국정을 다 챙기겠다고 하면 역할이 없어진다. 지금까지 책임총리라고 부를 수 있던 건 김종필 총리뿐이었고, 가장 비슷했던 이해찬 총리는 노무현 대통령과의 개인적인 관계 때문에 가능했던 매우 특별한 경우였다. 그런데 두 개의 힘이 합쳐져서 권력이 탄생하고, 거기에 기여한 사람이 총리와 일부 내각 각료로 같이 참여한다면 그건 다른 얘기가 된다. 공동 정권을 만들어내는 것이고, 정치적으로 지난 10년간 국정 운영에 대한 반성과도 관련이 있다. 박근혜 문재인 대통령 때의 독점적 권력 형태가 아닌 권력 공유를 한다는 명분이 있다.”
-선거마다 단일화가 있었지만 정치가 달라진 적은 드물었다. 이번 대선에는 단일화로 DJP(김대중·김종필) 연합과 같은 공동 정부가 들어설 수 있을까.
“단순히 승리할 확률을 높이는 단일화보다 새로운 정치적 변화로 가는 계기가 되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이 있다. 거대 양당 대선주자가 정권을 잡으면 권력을 독점하고 소수 측근을 중심으로 국정을 좌지우지하는 똑같은 일이 반복될 것이다. 단일화를 하게 되면 변화를 강요받게 된다. 지지층 분포상으로 윤석열 국민의힘 후보-안철수 조합이 더 가능성이 높아 보이지만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후보-안철수 조합이 될 수도 있다. 지금 단일화를 하려면 권력 공유를 하겠다는 약속을 해야 하고, 그러면 DJP 연합처럼 공동 정부가 탄생한다.”
-대선 뒤 정치권은 어떤 모습일까. 이 후보가 당선되면 입당 반년 남짓한 윤 후보가 당내 기반이 확고하지 못한 만큼 국민의힘이 중심을 잃고 후폭풍에 휩싸일 가능성이 클 것이라고 생각한다. 민주당에서도 급격한 변동이 일어날까.
“어느 쪽이든 개편이 일어날 수 있다고 본다. 만약 윤 후보가 당선되고 이 후보가 민주당을 장악한다면 이 후보는 자기 편을 키우고 싶을 테고, 가장 좋은 명분이 이미 이야기가 나오고 있는 586을 정리하는 것일 것이다. 그런데 마치 윤 후보가 보수를 아우르는 리더가 아니라고 생각되는 것처럼 이 후보 역시 아직까지 그 정파를 아우르는 리더 같지는 않다. 두 사람 모두 상황적인 측면에 얹혀 지금까지 왔지만 대선 이후의 흐름을 이끌어 나갈 수 있을지 모르겠다.
지금 이재명으로 상징되는 민주당의 정체성은 분명하지 않다. 민주당은 김대중과 노무현의 당이다. 호남과 진보 세력인데, 문재인 이후가 없다. 이 후보가 당을 장악하고 자신의 새 지지층을 만들어낸 것도 아니다. 선거에서 패하면 굉장히 혼란스러울 수 있다. 어느 당이든 패배를 수습하는 동안 일정하게 충격을 겪을 수밖에 없고, 그 과정에서 여러 변화가 일어날 것이다.”
-거대 양당 모두 ‘차차기’ 주자나 위기를 수습할 만한 구심점이 보이지 않는다는 말씀인데.
“바뀔 때가 된 것이다. 일단 87년 체제 자체에 종언을 고할 때가 됐다. 길게 보면 87년부터이고, 노무현 대통령이 등장한 2002년 이후 20년 동안 정치적 흐름이 바뀌지 않았다. 그동안 중요한 역할을 한 게 586 정치인들이었지만 이들이 중심인 대선은 이번이 마지막이 돼야 하지 않을까. 지방선거부터 변화가 시작될 것이고 내후년 국회의원 선거에는 세대교체가 공천에서 매우 중요한 기준이 될 것이다. 586이 더 튼튼하게 버티고 있는 쪽이 외면받을 것이다.”
-대선 과정에서 개헌이 관심을 끌었던 것은 이 후보가 4년 중임제를 제안하면서였다. 이 후보는 청와대 개편에 대해서 구체적인 구상을 내놓지 않았고, 여의도 정치를 개혁하겠다고 했다.
“4년 중임은 현재 대통령의 권한과 관행을 그대로 둔 상황에서 임기만 8년으로 늘리는 셈이다. 본질적인 변화가 될 수 없고 더 나빠지는 것이다. 현직 대통령이 다시 출마하는데 모든 공조직이 가만히 있을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나. 부작용이 훨씬 클 것이다. 한국 대통령제가 갖고 있는 권한 집중의 문제에 대한 고민이 없는 것이다. 임기 중에 가시적으로 도로를 놓고 공장 세우는 것만 업적이라고 생각하는데, 정치적으로 중요한 초석을 놓는 것도 굉장히 의미있는 역할이다. 아쉬움이 많다.”
-윤 후보는 청와대를 해체하고 광화문 정부서울청사에 대통령실을 설치하는 공약을 내놓았는데.
“청와대 해체는 힘을 빼겠다는 이야기가 아니라 통치 방식을 바꾸겠다는 것이다. 폭넓게 사람을 만나고 행정부를 더 잘 활용해 효율적으로 통치하겠다는 뜻으로, 대통령의 권한을 줄이거나 협치하겠다는 걸 의미하지 않는다.”
-안 후보와 심상정 정의당 후보는 대통령 권한 축소를 위한 개헌을 말했다. 안 후보는 분권형 대통령제를 제시하며 대통령 비서실 축소를, 심 후보는 의회 중심제로 전환하고 청와대 수석비서관 제도를 폐지하겠다고 했다.
“저는 청와대 정책실을 없앨 것을 제안한다. 국무총리와 경제부총리의 역할을 모두 하는 정책실장이 있는 한 청와대를 광화문이 아니라 부산으로 옮겨도 의미가 없다. 또 인사수석실의 역할을 제한해 장관에게 인사권을 돌려줘야 한다. 인사수석이 각 부처는 물론 공기업이나 정부투자기관 인사까지 관리하고 있다. 대통령이 임명하는 자리가 2000~3000개에 달하고 드러나지 않는 곳까지 합하면 2만개라고도 한다. 그 수많은 자리를 향해 자리 사냥꾼들이 캠프에 몰리는 것이다.”
-박병석 국회의장은 ‘단계적 개헌’을 주장했다. 전면 개헌이 어렵다면 여야가 당장 합의할 수 있고 시급한 것부터 부분적으로 하자는 것이다.
“아홉 차례의 개헌이 모두 격변기에 이뤄졌고 그중 6번은 권력자가 자기 권력을 강화하기 위해 바꿨기 때문에 우리는 헌법을 바꾼다는 것에 대해 약간의 불편함이 있다. 기본권, 지방분권 등 고쳐야 할 부분이 많지만 전략적으로 하나씩 하자는 것인데, 우선순위를 어디에 두느냐의 문제다. 개헌을 하려면 먼저 국회의원 선거 제도를 고쳐서 다당제로 복귀하고, 다음으로 제왕적 대통령제를 혁파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문재인정부에는 청와대 주도로 대부분의 정책 결정이 이뤄진다는 의미로 ‘청와대 정부’라는 별칭이 붙었다.
“대통령이 권력을 틀어쥐고 있는데 폭넓게 사람을 쓰는 것 같지 않고, 주변 사람들도 이전보다 유능한 것 같지 않다. 기본적인 생각이 바뀌어야 하는 부분은 국가가 모든 걸 다 할 수 없다는 것이다. 결국은 총체적인 권력을 갖는 대통령이 있고, 청와대를 차지하면 모든 것을 뜻대로 할 수 있다는 생각이 전제돼 있다. 그러다 보니 싸움이 격렬해지고 반대쪽에서는 그것을 빼앗기 위해 무엇이든 한다는 대립의 정치가 반복됐다. 그래서 정치개혁이 필요하고 그 핵심에 강한 대통령이 놓여 있다. 그런 관점에서 보면 청와대 정부는 최악의 정부다. 총리와 내각에게 권한을 주는 방향으로 대통령의 권력을 나눠야 한다.”
-코로나19 팬데믹은 국가의 귀환, 그것도 강력한 국가의 귀환을 낳았다. 고강도 방역이 코로나19 초기에 어느 정도 성과를 거두면서 큰 정부가 주효했다고 생각하는 이들도 적지 않다.
“지금 한계가 오지 않았나. 박정희 대통령 때 만들어놨던 너무 강한 국가가 계속 이어져 왔다. 이제는 국가의 시대가 아니라 민간의 창의와 이니셔티브를 중심으로 움직이는 시민들의 시대다. 국가가 개입하고 규제해 실패한 게 부동산이고, 국가가 손을 대지 않아서 성공한 게 K컬쳐와 반도체다. 강한 대통령을 중심으로 한 강한 정부라는 예전의 프레임이 계속되고 있지만 이제 그 옷이 맞는 사람이 없다. 김영삼 김대중 대통령까지 큰 정치인이 있던 시절에 맞는 옷이었다. 우리 사회에 그 옷이 필요 없게 됐고, 유행이 지난 옷을 무겁게 입고 있는데 아무도 그 옷이 잘 맞지 않는다. 이제는 바꿔줄 때다.”
권혜숙 인터뷰전문기자 hskwo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