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 2009년 미국 매사추세츠주 케임브리지에서 발생한 시위 영상이 있다. 한 건물 앞에서 시위자와 경찰들이 충돌하는 장면이다. 영상만 보면 시위자들이 누구이고 무엇에 관한 시위인지 알 수 없다. 이 영상을 이념적 구성이 동일한 두 그룹에게 보여주며 서로 다른 얘기를 해줬다. A그룹에게는 이 영상이 낙태 반대 시위라고 알려주고 경찰의 대응에 대해 평가를 요청했다. A그룹 내 보수적인 사람들은 70%가 경찰이 시위대의 권리를 침해했다고 해석했다. 자유주의적인 사람들은 28%만이 그렇다고 얘기했다. B그룹에게는 동성애자 군 복무 금지를 반대하는 시위라고 얘기했다. 그랬더니 이 그룹의 보수적인 사람들은 16%만이 시위대의 권리가 침해됐다고 했다. 자유주의적인 사람들은 76%가 그렇다고 해석했다.
2012년 개헌·호프만 외의 연구다. 두 그룹은 분명 같은 시위를 보았다. 그러나 자신이 지지하는 시위냐 아니냐에 따라 경찰의 대응에 대한 해석이 완전히 달랐다.
같은 사실을 보더라도 해석은 다르다
우리는 논쟁과 설득에서 팩트나 증거가 상대를 설득할 거라고 믿는다. 그러면서도 아무리 많은 팩트나 증거, 토론도 사람의 생각을 바꾸기 어렵다는 걸 경험적으로 안다. 지식과 합리성이 우리를 진실이나 합의에 데려다 주지 못 한다는 것도 실감하고 있다.
미국 심리학자 스타노비치의 책 ‘우리편 편향’은 왜 이런 일이 벌어지는지 설명해 준다. 핵심은 신념 때문이다. 신념은 확신이나 세계관과 동일한 의미다. 과학적 심리학을 추구하는 스타노비치는 다양한 연구 결과들을 촘촘히 인용하면서 신념이 어떻게 인식에서 편향을 만드는지, 더 나아가 신념이란 게 과연 무엇인지 분석한다.
연구들이 보여주는 것은 사람들은 거의 언제나 자신의 신념과 견해에 우호적인 방식으로 정보를 처리한다는 것이다. 증거나 논리, 통계 등을 해석할 때 합리성만 작용하는 게 아니다. 세계관이 투사된다. 저자는 이를 신념이 만드는 편향으로 보고 ‘우리편 편향(Meside Bias)’이라고 명명했다.
책은 우리가 어떻게 자신에게 유리한 방식으로 사실을 신념에 꿰어 맞추는지 보여준다. 사람들은 자신의 견해와 다른 연구나 논증에 대해 더 무자비하게 비판한다는 사실이 여러 연구에서 반복적으로 드러난다. 공정함에 대한 판단 역시 자신이 그 결과의 어느 편에 있느냐에 따라 판이하게 달라진다. 단순히 수치적인 데이터를 평가하는 데서도 우리편 편향이 드러난다.
우리편 편향은 모든 인구 집단에서 나타난다. 심지어 지식인들에게서도 강하게 나타난다. 우리편 편향은 인식론적으로 보면 정확하지 않다. 그러나 도구적 합리성을 가지고 있다. 도구적 합리성은 개인이 추구하는 목적 충족의 최적화를 추구하는데, 인간은 누구나 집단에 귀속되길 원한다. 우리편 편향은 개인이 집단 정체성을 가지기 위해 인식론적 정확성을 희생한 결과일 수 있다.
합리성에는 인식론적 합리성만 있는 게 아니다. 자유주의자들은 가난한 계층이 보수 정당에 투표하는 모습을 보면서 ‘가난한 사람들이 왜 부자를 위해 투표하는가’라며 비판한다. 그러나 사람들은 이익을 위해서만 투표하지 않는다. 가치관을 표현하기 위해서 투표를 하기도 한다. 이익을 위한 투표는 합리적이고, 가치관의 표현을 위한 투표는 비합리적이라고 할 수 없다.
우리편 편향은 이처럼 개인적인 차원에서는 일정한 합리성을 가지고 있다. 그런데 사회적으로도 합리성이 있을까. 사회 전반은 공공 정책이 객관적이고 실제로 참인 것에 기반을 두었을 때 더욱 잘 살게 된다. 그러나 모두가 저마다 우리편 편향에 기대어 증거를 처리할 경우 결과적으로 그 사회는 좀처럼 진실에 수렴할 수 없게 된다. 이것이 현재 우리가 처한, 가장 기본적인 사실에 대해서조차 합의하기가 극도로 어려운 사회다. 저자는 “우리편 편향은 개인적 차원보다는 사회적 차원에서 우리에게 상처를 입히는 듯하다”고 진단했다.
신념을 의심하라… 밈의 관점에서
우리편 편향을 만드는 건 신념이다. 우리는 신념을 자신의 소유물이라고 여긴다. 자신의 신념을 자신이 획득했으며, 그 신념들이 자신의 이익에 봉사한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자신의 신념을 두둔하는 게 타당하다고 믿는다.
하지만 유전자의 문화적 개념인 ‘밈(meme·문화 복제자)’을 이용해 신념을 다르게 생각해볼 수 있다. 리처드 도킨스의 책 ‘이기적 유전자’ 는 유전자가 유기체의 이익이 아니라 유전자의 이익, 즉 유전자 복제를 위해 움직인다고 말한다. 밈 이론은 신념이라는 밈이 그 주인인 사람의 이익이 아니라 신념의 복제라는 밈의 이해에 봉사할 수 있다는 관점을 열어준다. 여기서 ‘당신이 신념을 소유하는 게 아니라 신념이 당신을 소유하고 있는 게 아닐까’라는 질문도 가능해진다.
밈 이론은 신념이 확산하는 이유에 대해서도 유용한 설명을 제공한다. 어떤 신념이 사람들 사이에서 퍼져 나가는 이유는 그것이 옳거나 이익이 되기 때문이 아니라 그저 좋은 복제자이기 때문일 수 있다. 우리 대다수가 새로운 밈을 적대시하는 이유 또한 유전자라는 관점에서 보면 이해된다.
“우리가 몸에 해로운 지방 덩어리를 게걸스레 먹어치우는 까닭은 우리 몸이 이기적 복제라는 생존 논리로 무장한 유전자들로 이루어졌기 때문이다. 문화 복제자의 생존 논리 역시 그와 비슷한지라 우리는 기존 신념에 맞는 밈들만 허겁지겁 받아들이게 된다.”
신념을 밈으로 바라볼 수 있다는 가설은 이 책에서 가장 흥미로운 부분이다. 우리 신념이 우리가 이성적으로 선택한 소유물이 아닐 수 있다는 밈 과학의 언어는 자신의 신념에 대해 좀더 회의적인 태도를 갖게 할 수 있다.
우리편 편향을 벗어나는 길은 신념의 편향성과 불완전성을 이해하는 데서 시작될 수 있다. 사실 우리가 가진 확신의 상당수는 당파성에 의해 주조된다. 대다수 사람은 이슈마다 자신의 입장을 명확히 가지기 어렵고, 입장들을 가진다고 해도 그 사이에 일관성이 없다. 대개 지지하는 정당이나 집단에 자신을 동일시하고 있을 뿐이다. 저자는 자신이 지지하는 정당의 견해와 일치하지 않은 상태를 유지하라고 조언한다.
“우리 정당을 정의하기 위해 한데 묶여 있는 이슈의 상당수는 그 어떤 일관된 원칙에 의해서도 서로 연결되어 있지 않으므로, 일관성을 유지하려고 애쓰는 일을 당장 멈추라. 상당수 이슈는 양편의 당파적 엘리트들이 정치적 편의를 위해 하나로 묶어 놓은 것들에 불과하다.”
김남중 선임기자 njk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