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현주의 밥상+머리] 혼자 먹어도 맛있다

입력 2022-02-12 04:05

“만약 내일 세상이 끝난다면 마지막으로 뭘 할 거예요?” 사치에 상이 묻는다. “엄청 맛있는 걸 먹고 싶어요.” 미도리 상이 대답했다. “그렇죠? 저도 세상이 끝나는 날엔 꼭 맛있는 걸 먹을 거예요. 좋은 재료를 써서 잔뜩 만들고 좋은 사람만 초대해서 술도 한잔하면서 느긋하게 즐기는 거죠.” 2006년에 개봉한 일본 영화 ‘카모메식당’에 나오는 대화다. 자그마한 체구에 조용한 미소와 야무진 이미지를 가진 배우 고바야시 사토미가 주연을 맡은 이 영화는 몇 년 만에 한 번씩 다시 봐도 늘 맛있다. 카모메식당 때문에 새로 산 주방도구가 몇 개나 되더라?

이들의 대화를 실천으로 옮긴 영화가 있다. 작년 연말 공개된 넷플릭스 영화 ‘돈룩업’이다. 에베레스트 크기의 혜성이 지구로 돌진해오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된 천문학과 대학원생 케이트 디비아스키(제니퍼 로렌스 분)와 랜들 민디 박사(리어나도 디캐프리오 분)가 세상 마지막 날을 맞이하는 장면. 이들은 민디 박사 가족과 함께 식탁 앞에 앉았다. 이 만찬을 위해 주인공들은 마트에서 연어를 사왔다. 자연산 연어와 양식 연어의 색을 비교하면서. 마지막 만찬 메인 요리를 무엇으로 할지 결정하는 데는 이견이 분분할 테지만 어쨌든 세상 마지막 순간에 좋은 사람들과 맛있는 걸 먹고 싶다는 상상에 동의하는 사람들은 꽤 많을 것 같다. 사과나무를 심는 것보다는 현실적이고, 딱히 유난스럽지 않으며, 송별회를 하듯 약간 설레고 또 담담하게 운명을 받아들일 수 있으니까.

그런데 영화 속 같은 암담한 상황이 아니라 여전히 삶이 지속되는 일상의 시간이라면 어떨까? 좋은 재료를 써서 음식을 하고 술도 한잔하면서 느긋하게 즐기는 만찬이 좋은 사람들 없이 다만 혼자를 위해서도 당연한 일이 되면 좋겠다. 1인 가구가 많아진 요즘 같은 사회에서 ‘음식은 혼자 먹는 것보다 여럿이 함께 먹어야 맛있다’는 말은 지나치게 오래 절인 배추 같다. 맛있는 음식을 좋아하는 이들과 함께 먹는 즐거움이 큰 것은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혼자 마주한 밥상이 매번 재빨리 끝내야 할 외롭고 궁상맞은 과제처럼 느껴져서는 안 된다.

남편과 아이들을 위해서는 요리를 해도 자신을 위해서는 결코 새 음식을 만들지 않는 이미 중년이 된 내 친구들이, 대충 차린 밥상 앞에서 한 끼 식사를 ‘해치우기’ 십상인 수많은 비혼 세대들이, 혼자만의 식사와 만찬을 더 잘 즐길 수 있으면 좋겠다. 집 밖에서도 혼자 ‘엄청 맛있는 것’을 먹으러 다니는 것에 모두가 익숙해지면 좋겠다.

내일 세상이 끝난다면 모를까 내일도 여전히 우리들의 삶이 지속된다면 그럴수록 혼자만의 밥상이 더욱 정성스러우면 좋겠다. 조금 다르게 말하면 20세가 넘은 자들은 누구나 자신의 밥상쯤은 혼자 차릴 수 있으면 좋겠다. 그래야 20년 넘게 가족을 위해 밥상을 차려온 중년 여성들이 자신을 위해 밥상을 차릴 기운을 남겨둘 수 있다. 잊지 말자. 솔직히, 좋은 재료를 써서 잘 차린 맛있는 음식은 혼자 먹어도 맛있다는 것을.

최현주 카피라이터·사진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