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온의 소리] 봄동 예찬

입력 2022-02-10 03:04

텔레비전 요리 프로그램에서 봄동으로 겉절이를 만들며 봄동의 효능을 열심히 설명해주고 있었다. 모자를 눌러놓은 것 같은 모양의 볼품없는 채소라 지나쳤었는데 영양가와 그에 따른 효능이 대단했다. 변비 예방, 면역력 강화, 항암 효과, 피로 해소 등 당장에 먹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았다. 급하게 인터넷을 뒤졌더니 피부미용, 뼈 건강, 눈 건강, 혈관 건강, 빈혈 개선과 심지어 다이어트에까지 효능이 있다는 정보가 줄줄이 쏟아졌다. 이런 놀라운 채소가 있다니! 내친 김에 시장에 갔더니 납작한 봄동이 켜켜이 쌓여있었다.

값도 저렴해 봄동을 잔뜩 싸 들고 오기는 했지만 요리법이 난감했다. 겉절이는 해본 적이 없어서 다시 인터넷을 뒤졌다. 된장국, 된장무침 등 손쉽게 할 수 있는 것들이 꽤 있어서 성공적인 요리가 가능했다. 그냥 쌈으로만도 일품이었다. 그러고도 남은 봄동으로 배추전을 부쳤더니 그 맛 또한 놀랍다. 저 많은 것을 언제 먹을까 걱정했던 마음은 사라지고 몇 날을 질리지 않고 봄동으로 피로를 날렸다. 먹을수록 신기한 채소다.

봄동은 겨울 노지에서 재배된 배추로, 냉이 달래와 더불어 대표적인 봄 채소이다. 자라다 만 듯한 납작모자 모양은 겨울의 추운 날씨 때문에 속이 꽉 차지 못하고 잎이 옆으로 퍼졌기 때문이라 하니, 마음조차 짠하다. 11~3월이 제철이지만 1~2월에 수확되는 것이 더 아삭하고 단맛이 강하다고 한다. 나는 매우 운 좋게 가장 맛있을 때 봄동을 만난 것이다. 더욱 재미있는 것은 ‘봄동’이라는 이름이다. 채소 이름치고는 참 예쁘다는 생각이 들었다. 봄동의 ‘동’은 ‘겨울 동’(冬) 자로, ‘겨울을 나다, 겨울을 지내다’의 의미이다.

봄동은 ‘겨울을 나고 봄을 가져온다’는 의미라고 한다. 이미 맛과 효능에 빠진 나는 그 이름의 예쁜 의미에 다시 한번 매료됐다. 어찌 이렇게 기특한 채소가 있을까. 추위를 견디며 양지바른 밭에서 잘 자란다는 봄동은, 겨울을 이긴 상징이며 봄의 생명을 미리 당겨온 전령인 것이다. 봄동에 녹아든 그 많은 영양소는 겨울을 이기며 차곡차곡 쌓아둔 훈장이다. 봄동의 고소함은 노지에서 혹한의 겨울과 싸우며 만들어진 내공이다. 얼어붙은 땅에서 찬바람을 견디며 살아남아 생명을 꽃피우는 봄동은, ‘나도 살았으니, 너도 살 수 있다’고 말해주는 듯하다. ‘겨울이 그리 오래 가지 않으리라’ 전해주는 것 같다.

봄이 오면 더 이상 봄동은 볼 수 없을 것이다. 더 멋진 채소들이 나올 테니 말이다. 봄동은 긴 겨울과 싸우면서 겨울을 봄에게로 양도하는 다리이다. 어느 것도 죽지 않고 다시 살아난다는 생명의 징표이다. 봄동이 대견스러운 것은 이 때문이다. 이번 겨울 처음으로 만난 봄동은 나에게 희망이 됐다. 처음으로 하는 봄동 요리로 나도 요리에 재능이 있다는 것을 깨우쳤다는 것만으로도 그렇다. 그러나 봄동이 이렇게 사랑스러운 것은 보잘것없는 자태 속에 숨겨진 봄동의 힘이다. 긴 겨울을 견뎌낸 봄동이 자신의 몸속에 꼭꼭 숨겨놓은 그 많은 영양소를 보며, 어려움을 견디며 성장한다는 것의 의미를 다시 한번 되새긴다.

생각지도 못하게 밀려온 코로나의 겨울은 아직도 끝나지 않았다. 우리가 기다리는 봄에도 코로나의 겨울이 여전할 것 같은 상황이다. 그러나 한낱 채소도 겨울을 이기고 이처럼 풍부한 생명을 쏟아내는데 우리가 못 할 것이 무엇이겠는가. 겨울을 이기고 봄을 불러오는 것이 어찌 봄동뿐이랴. 하나님의 생명을 담지한 우리가 코로나의 긴 겨울을 뚫는 봄동이지 않은가. 겨울이 춥기만 한 것은 아니다. 겨울은 새로운 생명을 준비하는 기간이다. 곧 봄이 오면 겨울을 견뎌낸 수많은 생명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김호경 교수(서울장로회신학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