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권주자들 집 앞은 ‘대선 현주소’… 일촉즉발 긴장감

입력 2022-02-12 04:03
게티이미지뱅크

지난 5일 오후 2시 서울 서초구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 후보 자택 주변에 40여명이 삼삼오오 모이기 시작했다. 이들은 자유연대 등 보수단체를 중심으로 한 윤 후보 지지자들이다. 같은 시각 이들과 왕복 8차로 도로를 사이에 둔 건너편 서울회생법원 청사 앞에는 대학생 30여명이 모여들었다. 한국대학생진보연합(대진연) 소속 학생들로 윤 후보와 배우자 김건희씨에 대해 비판적인 목소리를 내는 이들이었다. 도로를 끼고 마주보며 집회 준비를 하는 두 진영 사이에 묘한 긴장감이 흘렀다.

대진연 회원들이 먼저 침묵을 깼다. 이들은 김씨가 국정농단 사건의 최서원(개명 전 최순실)씨와 다를 바 없다며 목소리를 높였다. 그러자 건너편 보수 진영에서도 확성기를 꺼내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의 여성 연예인 스캔들 이슈를 언급했다. 서로를 향해 2시간가량 계속된 고함 소리에 주민들의 소음 민원도 빗발쳤다. 관할인 서울 서초경찰서에는 맞불 집회가 시작된 이후 10여건의 민원 신고가 접수됐다.

경찰 관계자는 “양측이 충돌하는 사태를 막기 위해 3개 기동대 150명의 경찰관이 배치됐다”며 “주민 민원 신고가 많아서 소음 통제도 엄격하게 하고 있다”고 했다. 양측은 3월 9일 대통령 선거 전까지 매주 두 차례(수·토) 시위를 하겠다고 예고한 상태다. 대선까지는 주민 불만과 민원도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지난달 25일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후보 배우자 규탄 집회에 참석한 한국대학생진보연합(대진연) 소속 대학생들이 서울 서초구 윤 후보 자택 방향을 향해 발언을 하고 있다. 왕복 8차로 도로를 사이에 두고 건너편에서 보수단체가 윤 후보 지지 집회를 진행 중인 모습이 보인다. 김승연 기자

맞불 집회 목소리 커지는 윤 후보 집 앞

윤 후보를 지지하는 이들과 반대하는 이들은 최근 설 연휴 전까지 윤 후보 집 앞에서 매일 밤 마주했다. 먼저 집회를 시작한 건 대진연 쪽이다. 지난달 10일 첫 시위를 벌였다. 그 사흘 뒤부터 보수단체 회원들과 보수 유튜버, 윤 후보 지지자들이 나타났다. 서로를 향한 비방전은 명절 전까지 매일 오후 7시부터 9시까지 같은 자리에서 반복됐다.

지난달 25일 저녁 윤 후보가 사는 아크로비스타 단지 서문 앞에는 ‘오로지 국민 위해, 자유민주주의 위해 봉사하고 충성하는 믿음직한 공익 검사’라는 윤 후보 응원 노래가 왕복 8차로 건너까지 쩌렁쩌렁하게 울려 퍼지고 있었다. 인도에는 윤 후보 지지자 모임 대표인 장철호(56)씨를 포함한 11명의 시민이 ‘김건희 대표님 힘내세요! 우리가 지켜드릴게요’라고 적힌 손팻말을 들고 서 있었다. 장씨는 “대진연이 김씨를 노린 가짜뉴스를 퍼뜨리며 비방을 하는데 선거법 위반 행위라고 경고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그의 주변으로 모여든 보수 유튜버들은 대진연의 선거법 위반 증거를 수집하겠다며 현장을 계속 촬영했다.

건너편 서울회생법원 앞에서는 대진연 소속 대학생 7명이 돌아가며 1인 발언을 이어갔다. 한 학생은 “오늘도 김씨의 잘못을 국민들께 낱낱이 알리기 위해 나왔다”며 “진짜라고는 단 하나 없이 온갖 거짓으로 물든 김씨의 삶이 너무나 불쌍하고 안타깝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또 다른 학생은 “김씨 비리 의혹이 계속 불거지는 걸 보니 ‘제2의 최순실 국정농단’과 다를 바 없다고 생각해 대학생들과 시민단체분들이 모여 시위를 진행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시위 참석을 위해 아르바이트를 미뤘다는 학생도 있었다.

경찰에 따르면 ‘김건희씨 7시간 녹취록’이 폭로된 이튿날인 지난달 16일 시위에서는 양쪽에서 고성이 오가며 갈등이 최고조에 달해 물리적 충돌이 빚어질 뻔했다. 지난달 26일 찾은 시위 현장도 팽팽한 긴장감이 흘렀다. 오후 8시쯤 대진연에서 본격적으로 김씨 규탄 발언을 시작하자 윤 후보 지지자 측은 “쟤들 준비하는 거 봤지”라며 확성기를 틀고 맞불을 놨다.

양측이 서로를 향해 목소리를 키울수록 고통받는 건 현지 주민들이었다. 주민 한 명은 현장을 주시하고 있던 경찰관을 붙들고 “남의 집 앞에서 이렇게 큰 소리를 내도 되는 거냐. 서울역광장 같은 곳도 있는데 왜 주택가에서 이렇게 시끄럽게 시위를 하는 건지, 정말 너무하다”고 하소연했다. 경찰관들은 “확성기 소리를 자제해 달라”는 요청을 거듭했지만 양쪽 모두 아랑곳하지 않았다.

이날 시위는 예정된 2시간을 넘겨 오후 9시 이후까지 이어졌다. ‘시위를 언제까지 할 것이냐’는 질문에 장씨는 “쟤들이 집에 가야 우리도 가”라고 답했다.

왼쪽은 윤석열 후보의 자택이 있는 서울 서초구 아크로비스타 단지. 오른쪽은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 자택이 위치한 경기도 성남시 분당구 수내동 아파트. 뉴시스

이 후보 집 앞은 각자 시간차 집회

이 후보의 경기도 성남시 분당구 집 앞 상황도 크게 다르지 않다. 보수 유튜버가 주축이 된 보수 진영 시위와 이 후보 지지자들의 1인 시위가 산발적으로 이어지고 있다. 경찰에 따르면 지난달 이 후보 자택이 위치한 아파트 단지 앞에서는 보수단체 시위가 세 차례, 이 후보 지지 측 시위가 한 차례 진행됐다.

지난달 보수 유튜버 안정권씨가 주최한 이 후보 자택 앞 시위에는 매번 10명 정도가 참석했다. 이들은 이 후보 차남의 입시특혜, 불법도박 의혹들을 제기하며 수사에 착수할 것을 외치고 있다. ‘대장동 게이트’와 관련한 특검 촉구도 빠지지 않는다. 주민들의 소음 민원도 집중되고 있다. 현장을 통제하는 경찰관은 시위 관련 채증을 하면서도 쏟아지는 주민들의 항의 민원을 듣느라 분주했다.

다만 이 후보 자택 앞 시위의 경우 윤 후보 자택 시위 상황과 달리 보수·진보 양측의 충돌 가능성은 낮은 상황이라고 한다. 분당경찰서 관계자는 “이곳에서 시위하는 양쪽은 충돌을 우려해 각자 시위하는 날짜와 시간대를 피해서 시위를 진행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경찰은 대선 전까지 이 후보 자택 시위 상황도 예의주시하고 있다. 경찰 관계자는 “이 후보 자택 앞으로 보수단체의 집회·시위 신고가 계속해서 접수돼 있는 상태”라며 “실제 시위를 진행할 경우 경찰에 미리 연락하도록 안내하며 대비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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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대 양당 후보 집 앞이 소음으로 몸살을 앓는 것과 달리 다른 후보들의 집 앞은 별다른 지지·반대 집회 없이 조용한 편이다. 안철수 국민의당 대선 후보와 심상정 정의당 대선 후보 집을 관할하는 서울 노원경찰서와 경기 고양경찰서에 따르면 두 후보 집 앞에는 어떠한 시위나 집회 신고도 들어오지 않고 있다.

이형민 기자 gilels@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