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2년 봄 캐나다 동부 웨스트레이 석탄광산이 폭발해 노동자 26명이 사망했다. 이 중 11명의 시신은 찾지도 못했다. 원인은 갱도 내에 있던 메탄가스가 폭발한 것이었다. 노동자들은 사고 전에 관리자에게 수차례 위험성을 경고했지만 묵살당했다. 관리자 2명이 과실치사로 고발됐으나 유죄 판결을 받지 못했다.
사고 광산 이름을 딴 웨스트레이법이 의회에서 만장일치로 통과된 건 12년 뒤였다. 산업재해가 발생했을 때 안전관리를 제대로 하지 못한 고용주와 기업을 처벌할 수 있도록 한 법이다. 법 제정까지는 멀고 고단한 길이었다. 숨진 광산 노동자 유족과 생존자들이 캐나다 연방의원들을 일일이 찾아가 설득한 덕분이었다. 2007년 제정된 영국의 기업살인법, 2003년 제정된 호주의 산업살인법 역시 피해자들의 피와 눈물로 만들어졌다.
한 달 전 발생한 광주 서구 화정아이파크 붕괴 사고는 건설 현장의 관리 과정 전체가 제대로 되지 않아 발생한 전형적인 후진국형 인재다. 현행 건설 안전 관련 제도와 법규는 이미 선진국 수준으로 올라가 있지만, 언제나 그렇듯 이를 지키지 않아 일어났다. 아이파크 붕괴에 영향을 미친 주요 원인으로 지지대 미설치, 역보 무단 설치 등 부실 시공이 지목된다. 콘크리트를 타설하면서 규정을 어긴 채 아래 3개층의 지지대를 제거하고, 정상적인 설계 변경 없이 무거운 역보를 설치해 건물에 무리한 하중을 준 것이 사고 원인 중 하나로 추정된다. 그런데 현재까지 드러난 수사 과정을 보면 시공사와 하청업체는 서로 책임을 떠넘기기에 급급한 인상이다.
건설 현장에는 철저한 관리 감독과 붕괴 방지를 위한 구조설계가 반드시 필요하다. 하지만 안전관리를 제대로 하지 않은 곳이 비일비재하다. 공기 단축을 최고의 선으로 여기는 업계 관행이 아직도 만연한 탓이다. 원청, 하청, 재하청 구조와 최저가 낙찰 시스템도 개선돼야 할 관행이다. 2018년 화력발전소에서 숨진 김용균씨 사고 이후 산업재해에 대한 우려가 확산되면서 국내에서도 중대재해처벌법이 제정돼 시행됐다. 노동자의 생존권과 안전권 보장이라는 취지에서 출발했지만, 법 조항의 모호성 등으로 현장의 혼란이 불가피할 것이라는 우려는 여전하다.
정부는 며칠 전 아이파크 붕괴 사고, 경기도 양주 채석장 매몰 사고 같은 중대재해를 줄이기 위해 당국이 감독을 강화하는 산업안전보건 감독 종합계획을 발표했다. 중대재해처벌법이 적용되는 상시 근로자 50인 이상 사업장 중 사망 사고 발생 가능성이 큰 곳은 특별관리하고, 집중관리 대상인 고위험 사업장 중에서 안전관리가 불량한 사업장은 무관용 원칙을 적용해 엄정히 감독한다고 한다. 지난해 일터에서 발생한 산업재해로 숨진 노동자는 828명이다. 정부는 올해 중대재해처벌법이 시행되는 만큼 사망자 숫자가 700명대 초반까지 줄어들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산업재해 문제는 더 이상 후진국형 참사를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 반드시 해결해야 할 과제지만, 개선을 위해선 무엇보다 안전에 대한 무한대의 책임의식이 필요하다.
광주 아이파크 붕괴 사고의 마지막 매몰자가 8일 밤 수습됐다. 한 달 만이다. 생명의 위험을 무릅쓰고 24시간 내내 수색 작업을 벌인 구조대원들의 헌신적인 노력이 없었다면 이 역시 어려웠을 것이다. 수색을 종료한 구조대원들은 유족에게 깊은 위로를 표하면서 눈물을 떨궜다. 유족들 역시 29일간의 사투 끝에 마지막 희생자까지 가족 품에 돌려준 구조당국에 고마움을 표하면서 눈물을 흘렸다. 지금까지 많은 산업재해로 유명을 달리한 노동자와 그 가족의 피와 눈물이 조금이라도 결실을 맺으려면 이젠 안전에 대해서만큼은 걱정 없는 사회를 만들어야겠다. 이젠 정말 변해야 한다.
남혁상 사회2부장 hsna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