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사장서 말춤 추고 사회적 약자 돌본 ‘유쾌한 정숙씨’

입력 2022-02-12 05:01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은 2019년 6월 30일 한·미 정상회담에서 김정숙 여사를 가리켜 “아주 활기찬 힘을 갖고 있는 훌륭한 여성”이라고 칭찬했다. 외국 정상이 외교 무대에서 상대국 대통령 부인을 치켜세우는 것은 이례적이다. 김 여사 특유의 친화력이 외교 현장에서 진가를 발휘했던 장면이다.

성격이 낙천적이고 소탈해 ‘유쾌한 정숙씨’로 불린 김 여사는 86일 후(12일 기준) 문재인 대통령과 함께 청와대를 떠나게 된다.

김 여사는 장애인과 여성, 아동, 치매 환자, 한부모 가족 등의 복지와 처우 개선에 힘써 왔다. 또 외교 현장에서 각국 지도자 부인들과 특별한 ‘케미’를 보여주며 내조 외교를 활발하게 펼쳤다. 하지만 ‘관광을 위해 해외 순방을 다닌다’는 야권의 비판을 받기도 했다.

그동안의 발언과 일화를 중심으로 유쾌한 정숙씨의 청와대 5년 생활을 정리해 봤다.

행사장서 말춤 추는 파격 면모

2017년 5월 13일 김 여사는 서울 서대문구 자택을 정리하고 있었다. 청와대로 이사가기 위해 짐을 싸던 중이었다. 이때 한 60대 여성이 다가와 “아침부터 한 끼도 못 먹었다”고 말했다. 그러자 김 여사는 “나도 밥 먹으려고 했다”며 이 여성의 손을 잡고 집으로 들어가 족발과 비빔국수, 방울토마토를 대접했다. 국민들 사이에선 소탈한 퍼스트레이디가 등장했다는 호평이 이어졌다.

김 여사는 2017년 11월 문 대통령의 필리핀 순방에 동행했다. 현지 호텔에서 열린 동포 간담회에 참석한 김 여사는 행사 도중 싸이의 노래 ‘강남스타일’이 흘러나오자 자리에서 일어나 말춤을 췄다.

2020년 8월 강원도 철원에 물난리가 났을 때 김 여사는 비공개로 현장을 찾았다. 줄무늬 셔츠와 밀짚모자 차림에 고무장갑을 끼고 오수에 잠겼던 식기를 씻었다. 역대 대통령 부인 가운데 직접 수해 복구 작업에 나선 것은 김 여사가 처음이었다. 청와대 관계자는 “여사가 피해를 입은 국민들에게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겠다며 먼저 봉사활동을 하고 싶다는 뜻을 밝혔다”고 설명했다.

외국 영부인들과 ‘케미’ 과시

김 여사의 솔직하고 활달한 성격은 특히 외교 현장에서 빛을 발했다. 김 여사는 박근혜정부에서 중단된 퍼스트레이디 외교를 부활시켰다.

김 여사는 2018년 9월 평양 남북정상회담 당시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부인 리설주 여사에게 4·27 남북회담 기념메달을 전달했다. 김 여사는 “더 큰 메달로 기념해야 하는데 이 정도 메달로 해서 제가 (남편에게) 뭐라고 했다”고 농담했다. 그러자 리 여사는 “저도 두 분께서 아주 큰일을 하시리라 굳게 확신한다”고 답했다.

2017년 11월 트럼프 대통령 내외가 방한했을 때 김 여사는 멜라니아 트럼프 여사에게 “많은 분이 저만 보는 것 같아 때로는 힘들다”고 털어놨다. 멜라니아 여사도 “사람들이 현미경을 갖다 대고 나를 보는 것 같다”고 공감했다. 멜라니아 여사가 주변에 “나는 김 여사의 팬”이라고 밝힐 만큼 두 영부인의 케미가 좋았다는 게 청와대의 설명이다.

탁현민 청와대 의전비서관은 “과묵한 편인 대통령 옆에 여사가 계신 것이 의전적으로 참 도움이 많이 됐다”며 “공감력과 감정이입이 김 여사의 매력적인 면모”라고 말했다.

김 여사는 역대 대통령 부인 중 처음으로 외국을 단독 방문한 기록(2018년 인도 방문)도 남겼다.


치매 환자 등 소외 계층 챙겨

김 여사는 자신의 친정어머니가 치매를 앓고 있다는 사실을 수차례 언급하며 국가 차원의 치매 환자 지원을 강조했다.

장애인 복지도 김 여사의 주된 관심사 중 하나였다. 김 여사는 2018년 평창을 방문해 그곳에서 열린 동계패럴림픽을 홍보했다. 2019년 전국장애인체육대회 개막식에서는 직접 수어로 “틀리지 않습니다. 우리는 다릅니다. 못 하는 게 아닙니다. 자신만의 방식대로 하는 것입니다”라고 연설했다.

김 여사는 또 다문화 가족과 미혼모 가족을 청와대로 초청하고, 비혼모들이 출연한 뮤지컬을 관람하기도 했다.

다만 정치권을 중심으로 김 여사를 둘러싼 논란이 벌어지기도 했다. 지난달 문 대통령의 중동 순방에 동행한 김 여사가 이집트 방문 때 비공개로 피라미드를 찾은 사실이 뒤늦게 알려졌다. 이집트 정부의 요청에 따른 방문이었지만, 야권에선 코로나19로 국민적 고통이 큰 상황에서 부적절한 행동이었다는 비판이 제기됐다.

김 여사는 2019년 6월 삼성전자 등 대기업 최고경영자 10명을 청와대로 초청해 비공개 오찬을 가졌는데, 당시 문 대통령이 대기업과의 비공식 만남을 자제해온 기조에 어긋난다는 지적이 나왔다.

김 여사는 문 대통령 퇴임 이후 경남 양산 평산마을 사저로 함께 내려갈 계획이다. 김 여사는 평소 강아지 ‘마루’와 고양이 ‘찡찡이’ 등 반려동물을 키우며 조용히 지내고 싶다는 뜻을 밝혀 왔다고 한다. 청와대 일각에선 최상영 제2부속비서관을 비롯해 김 여사와 잘 맞는 참모가 양산까지 동행할 것이라는 관측이 제기된다.

박세환 기자 foryou@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