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리 비호감 선거라지만 후보 등록이 코앞인데도 대선의 시대정신은 고사하고 그럴듯한 미래 담론 하나 만들지 못한 것은 여야 모두의 책임이다. 정권 심판론과 네거티브 캠페인만으로 선거를 치르려는 야당의 준비 부족과 정권교체 여론을 압도할 큰 정책 하나 내놓지 못한 여당의 어수선함이 어우러진 결과다. 선거에 쏟아붓는 막대한 비용과 국민적 에너지를 생각할 때 그리고 우리가 당면한 진퇴양난의 정치경제적 처지를 생각할 때 여야 정당들의 이런 안이한 태도는 비판받아 마땅하다. 더구나 대통령이 될지도 모르는 유력 후보가 이런저런 핑계를 대며 TV 토론을 피하기 바쁘고, 두 자릿수 지지율의 후보는 토론 참석을 위해 단식을 해야 하는 우스꽝스러운 상황은 누가 봐도 비정상이다.
다행히 지난주 4당 후보 초청 TV 토론이 대선 분위기를 바꾸는 데 크게 기여했다. 40% 가까운 시청률을 기록한 것도 그렇고 토론을 통해 곱씹어 볼 몇 가지 포인트를 드러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그동안 정권교체론에 함몰돼 묻혀 있던 미래 이슈가 드러난 것이 다행이다. 무엇보다 기후위기와 안보위기 같은 국가적 과제에 대해 후보들의 공방을 지켜보고 시중에서도 갑론을박하는 것은 대선의 큰 재미 중 하나다. ‘알이백(RE100)’ 논란으로 탈원전과 재생에너지에 대한 관심을 불러일으킨 것이나 사드 추가 배치 공방을 통해 우리가 당면한 경제와 안보상 딜레마를 되새기게 한 것도 성과다. 두 이슈 모두 경제와 일자리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는 현안이지만 그동안 진영과 당파를 가르는 도구로만 쓰였을 뿐 허심탄회한 토론과 국민적 합의를 모아가려는 노력은 없었다. 토론을 보며 보다 많은 사람이 시대적 과제를 함께 고민하고 스스로 자신의 견해를 갖게 하는 것은 선거의 큰 장점이다.
또 하나 눈여겨 볼 대목이 단일화 대상으로만 호명되던 소수당 후보들의 존재감이다. 그들이 있음으로 이슈가 다양해지고 기피 쟁점에 대한 타협도 가능했다. 선두 주자들이 주저하던 연금 개혁을 공통의 공약으로 이끌어낸 안철수 후보의 기민함이나 권력형 성폭력에 대한 잘못된 인식을 정색하며 바로잡은 심상정 후보의 단호함은 많은 사람의 공감을 얻었다. 이들은 캠페인 기간 내내 유력 후보들의 포퓰리즘 공약을 비판하며 경제와 과학기술의 미래, 차별 금지와 불평등 문제에 대해 일관된 목소리를 내왔다. 그런데도 이들이 무슨 말을 하든지 단일화 여부만 답하라는 압박은 공정하지도 상식적이지도 않다. 단일화 조건으로 책임총리와 공동 정부가 거론되지만 그대로 실현된다고 하더라도 사생결단의 진영 대결과 정치 양극화는 하나도 변하지 않을 것이다.
이번 대선이 더 격렬한 진영 대결의 시작이 아니라 끝으로 가는 첫걸음이기 위해서는 후보 단일화가 아니라 대통령 당선자가 주도하는 연합정치로 가야 한다. 물론 2017년 탄핵연대가 차려준 밥상조차 차버린 문재인 대통령의 사례를 볼 때 당선자는 십중팔구 승자독식의 유혹에 넘어갈 것이다. 당선의 들뜬 분위기에서 승자가 패자에게 손을 내밀어 협력을 구한다는 것은 비상한 각오가 없으면 안 될 일이다. 당선자 의지에만 맡겨놓지 않고 이를 공통공약으로 제시하는 방법도 있다. 후보들이 정치 혁신의 의지만 있다면 내일 TV 토론에서 책임총리 또는 국회 추천 총리를 공동으로 약속할 수도 있다. 그렇게만 해도 한국 정치는 크게 바뀔 것이다.
그런 토대 위에서 결선 투표제나 선거제 개편과 같은 제도 개혁으로까지 갈 수 있다. 이번 선거는 1987년 직선제 개헌 직후의 13대 대선이나 1997년 외환위기 와중에 치렀던 15대 대선만큼의 전환기적 의미를 갖는다. 1987년 헌정체제를 뜯어고쳐야 진영 간 양극화 정치를 끝낼 수 있다고 많은 학자들이 주장해왔지만 정치는 변하지 않았다. 경제도 외환위기 이후 세계화 물결을 타고 선진국 대열에 합류했지만 잠재성장률 2%대 유지도 어려울 정도다. 이제는 새로운 성장 경로를 찾아야 할 뿐 아니라 코로나 팬데믹으로 깊어진 상처의 치유와 회복도 발등의 불이다. 모든 후보가 디지털 경제와 에너지 전환의 위기를 기회 삼아 새로운 발전의 모멘텀을 찾겠다지만 그 출발은 정치적 전환에서 시작해야 한다.
정권교체가 된다고 또는 4기 민주정부가 들어선다고 대통령 혼자 위기를 극복할 수는 없다. 더구나 멱살잡이하며 선도국가와 신경제로 갈 수는 없다. 타협하고 함께 가지 않으면 뒷걸음 아니면 제자리걸음일 뿐이다.
최영기(한림대 객원교수·전 한국노동연구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