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은 귀화 선수인데 평가는 극과 극… ‘비루한’ 中 애국주의

입력 2022-02-09 04:02
미국 국적에서 중국으로 귀화한 스노보드 스타 에일린 구가 8일 베이징 서우강 빅에어경기장에서 열린 2022 베이징 동계올림픽 프리스타일 여자 빅에어 경기에서 금메달을 딴 뒤 기뻐하고 있다. 신화연합뉴스

현시점에서 중국 올림픽 선수단 가운데 가장 큰 사랑을 받는 선수는 프리스타일 최강자 에일린 구다. 구는 8일 중국 베이징 서우강 빅에어경기장에서 열린 2022 베이징 동계올림픽 프리스타일 여자 빅에어 결선에서 합계 188.25점으로 금메달을 차지했다. 주종목인 하프파이프가 남아 있어 대회 2관왕도 가시권이다.

중국 당국도 재빨리 축하 메시지를 내놨다. 베이징시 정부와 당은 구를 중국 이름 ‘구아이링’으로 칭하며 “프리스타일 플랫폼 결승에서 완벽한 연기로 금메달을 획득해 국가에 명예를 안겨 기쁘다”고 치켜세웠다. ‘에일린 구가 금메달을 획득했다’는 해시태그는 1시간 만에 3억회 이상의 조회수를 기록했고 웨이보 사이트 전체가 다운되기까지 했다.

구는 캘리포니아에서 미국인 아버지와 중국인 어머니 아래 태어난 중국계 미국인이지만 2019년 “어머니의 나라를 대표해 뛰고 싶다”며 중국으로 귀화했다. 미국 팬들의 공격을 받는 가운데서도 2020년 명문 스탠퍼드대학에 합격했다. CNN은 “중국에서 ‘스노 프린세스’로 유명한 구는 현 챔피언이자 중국 올림픽의 비공식 얼굴”이라고 전했다. 구는 대표팀 합류 후 다수의 잡지 표지모델과 광고판을 접수했고 루이비통 등 많은 브랜드와 계약을 체결해 인기스타로 급부상했다.

역시 중국 대표로 올림픽에 출전한 귀화선수 주이가 7일 피겨스케이팅 단체전 여자 프리스케이팅 경기에서 연기를 펼치고 있다. AP연합뉴스

반면 같은 귀화 선수임에도 저주에 가까운 비난을 받는 선수가 있다. 중국 피겨 대표팀으로 올림픽에 나선 주이는 전날 피겨 단체전 여자 프리스케이팅에서 잇따른 점프 실수로 낮은 순위에 머물렀다. 주이는 경기 후 “속상하고 당황스럽다. 국가대표로 나서는 것에 대한 부담이 컸다”며 눈물을 흘렸다. 중국 이민가정 출신으로 미국 로스앤젤레스에서 태어난 그는 이름도 베벌리 주에서 주이로 바꿨지만 중국 대중으로부터 외면받고 있다.

중국 네티즌들은 소셜미디어를 통해 ‘주이가 넘어졌다’(#ZhuYiFellOver) ‘엉망진창 주이’(#ZhuYiMessedUp) 등의 해시태그를 붙인 게시물을 쏟아냈다. 주이에 대한 사이버 불링(온라인 괴롭힘)이 확산되자 진원지 격인 웨이보는 이날 “주이에게 사이버 공격을 가한 계정 93개를 정지하고 관련 게시물 300여개를 삭제했다”고 밝혔다.

웨이보는 맹목적 애국주의를 표출하는 중국 네티즌 집단 ‘샤오펀훙(小粉紅)’의 주 활동 무대다. 1990~2000년대 출생으로 시진핑 주석 체제에서 강화된 애국주의 교육을 받은 세대가 주를 이룬다.

중국어를 유창하게 구사하는 구와 달리 주이는 중국어도 미숙해 “애국심을 얘기하기 전에 모국어부터 배우라”는 조롱을 받았다. 광적인 자국 선수 추종과 성적지상주의가 결합된 샤오펀훙들의 이 같은 행태가 중국 스포츠 정신의 현주소를 적나라하게 보여준다는 지적이 나온다.

정건희 기자 moderato@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