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이 시작된다는 입춘이 지났지만 이번 주 초반까지 동장군이 맹위를 떨쳤다. 강추위에 몸을 움츠리지만 ‘추워야 제맛’이라며 얼음과 놀며 즐기는 이들이 늘어나고 있다. 어른들에게는 이한치한(以寒治寒)의 추억을, 어린이들에게는 재미있는 겨울 놀이를 안겨주는 ‘얼음 왕국’ 경북 안동으로 떠나보자.
길안천(吉安川)은 경북 청송군 현서면 월정리에서 발원해 청송군 안덕면, 안동시 길안면 등 약 75㎞를 지나 안동시 임하면에서 반변천에 합류하는 낙동강 제2지류다.
길안천 주변은 기암절벽과 무성한 수목이 어우러져 아름다운 풍경을 펼쳐놓는다. 특히 길안면 고란리 연점산(鉛店山·871m)을 끼고 감입곡류(嵌入曲流)를 형성하며 장관을 연출한다. 한절골에 이르면 사람들의 추억과 힐링을 선사하는 휴식 같은 물길로 변한다. 옛날 큰 절이 있어서 불리던 한절골이라는 고유의 마을 명칭이 한문으로 옮기면서 대사리(大寺里)가 됐다고 한다.
한절골은 천지갑산, 길안천, 선유암, 옥류폭 등 천혜의 자연환경을 갖춘 곳이다. ‘한절팔경’이란 한시가 전해질 정도로 경관이 장관이다. 한밤보(洑)를 중심으로 질 좋은 얼음이 얼고 인공적으로 조성한 높이 70m 빙벽이 보태지면서 볼거리가 늘어났다. 마을은 2010년 환경부로부터 자연생태우수마을로 선정됐다. 코로나19 이전엔 겨울철이면 해마다 ‘한절골 얼음축제’가 열렸다.
한밤보는 동·남·서쪽이 병풍 같은 암벽으로 둘러싸여 있다. 겨울철이면 온종일 햇볕이 전혀 들지 않는 음지다. 얼음 두께는 안전기준 20㎝를 훌쩍 넘어 50㎝에 이른다. 덕분에 이곳은 ‘아이스 캠핑’(빙박) 명소로 부상했다. 코로나19 이후 비대면 여행 방식으로 떠오른 차박·백패킹·스노캠핑을 넘어 겨울철에는 얼음 위에서 자는 빙박이 인기다.
얼음 위에 텐트를 치고 어둠이 찾아오면 맑은 하늘에 별이 보석처럼 빛난다. 빙판 옆 거대한 얼음 기둥은 하늘을 향하고 있다. 한밤보 절벽을 타고 내려오는 물줄기가 꽁꽁 얼면서 만들어진 질 좋은 빙벽은 겨울 등반가들에게 인기다. 그 아래 불 밝힌 텐트가 얼음에 반영된 모습이 환상적이다. 빙박을 하지 않고 사진만 찍어도 멋진 추억을 남길 수 있다.
한밤보 위로 천지갑산(天地甲山)이 우뚝하다. ‘산세가 천지간의 으뜸’이라 붙은 이름이다. 예전엔 관악봉으로 불렸다. 송제마을에서 이 산을 보면 평소 선비가 쓰는 관(冠)처럼 봉우리가 서 있어서다. 60여년 전 더 좋은 뜻을 담기 위해 지금의 이름으로 개명한 것이라고 한다.
높이는 462m로 야트막한 산이지만 노송이 어우러진 기암 7봉과 산허리를 휘감으며 태극 모양으로 흘러가는 물길이 학소대, 장수바위, 가마바위 등과 함께 한 폭의 동양화를 이룬다. 천지갑산 2봉과 3봉 사이에 있는 전망대에서 내려다보면 한반도 모양 땅이 뚜렷하다. 길안천이 은은하게 물돌이를 하며 형성한 신비스러운 지형이다. 동쪽은 숲이 우거졌고 서쪽은 논과 밭이다. 동고서저의 한반도 실제 지세를 닮았다. 한반도 모양의 땅 가운데로 지나가는 지방도로는 흡사 휴전선 같다.
하류로 내려가 묵계리에 닿으면 묵계서원과 묵계종택이 있다. 종택 맞은편 길안천을 건너 산길로 올라서면 솔숲이 우거지고 석벽으로 둘러싸인 틈새로 폭포수가 그림같이 얼어붙은 곳이 나온다. 바로 위에 만휴정이 살짝 모습을 드러낸다. 만휴정 앞 외나무다리는 ‘인생샷’을 찍으려는 연인들에게 인기다. 겨울에는 다리 아래 냇물이 꽁꽁 얼기에 여름철이면 물속에 들어가야 했던 곳을 얼음 위에서 찍을 수 있어 더 좋다.
안동시 남후면 암산유원지도 겨울 놀이터로 인기다. 얼음과 절벽, 구릉이 어우러져 멋진 풍광을 연출하는 데다 전국 최고의 천연스케이트장을 갖추고 ‘얼음축제’를 열던 곳이다. 스케이트장은 빙질이 우수하고 천연얼음이 초봄까지 녹지 않아 해마다 썰매 등 겨울 레포츠를 즐기려는 가족 단위 애호가들이 즐겨 찾는다. 약 3만㎡의 탁 트인 천연 얼음 위로 썰매가 미끄러지며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이어진다.
나지막한 자암산 기암절벽에는 천연기념물 252호인 구리측백나무가 신비로운 자태를 뽐내며 자생하고 있다. 유원지 뒤쪽에는 대산 이상정 선생을 추모하는 고산서원이 아늑하게 자리 잡고 있다.
여행메모
당진영덕고속도로 동안동IC 이용
빙박 시 중심부 피해 물가 쪽 선정
당진영덕고속도로 동안동IC 이용
빙박 시 중심부 피해 물가 쪽 선정
경북 안동시 길안면 대사리(한절골)는 안동시청에서 동남쪽으로 약 45㎞ 떨어져 있고, 청송군과 인접하고 있다. 당진영덕고속도로 동안동나들목이 편하다. 35번 국도를 이용해 남쪽으로 향하다 송사리에서 930번 지방도로 갈아타고 5㎞가량 가면 닿는다. 중간에 묵계서원 앞을 지난다. 길안천 건너편 주차장에서 만휴정까지 500m 거리다.
권정생 생가와 권정생동화나라는 중앙고속도로 남안동나들목에서 가깝다. 나들목 인근에 생가와 일직교회가 있고 4.5㎞ 정도 떨어진 곳에 권정생동화나라가 있다.
길안면 고란리에 계명산자연휴양림이 있다. 안동을 대표하는 음식은 간고등어, 찜닭 등이다.
빙박 시 안전에 유의해야 한다. 아무리 두껍고 단단한 얼음도 녹거나 깨질 수 있기 때문이다. 중심부보다는 물가 쪽이 적당하다.
안동=글·사진 남호철 여행선임기자 hcna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