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원동 ‘뚝방마을의 성자’ 사후 45년 만의 졸업장

입력 2022-02-09 03:03
이상양 전도사의 장로회신학대 신학대학원 명예졸업 증서. 장로회신학대 제공

서울 망원동 뚝방마을 성자로 불렸던 이상양(1942~1977·아래 사진) 전도사가 10일 장로회신학대(총장 김운용) 신학대학원을 졸업한다. 가난한 이들을 위해 살다 폐결핵으로 세상을 떠난 지 45년 만의 일이다. 이 전도사는 1974년 장신대 신학대학원에 진학했지만 졸업을 하지 못하고 별세했다. 장신대는 이 전도사의 동기인 신대원 71기 동기회(회장 문영용 목사)의 제안을 받아 명예졸업장 수여를 결정했다.


70년대 망원동은 서울 곳곳에서 수거한 분뇨를 버리는 곳이었다. 도심 개발로 갈 곳을 잃은 이들은 악취가 풍기는 이곳에 판잣집을 지었다. 72년 당시 주선애 장신대 교수는 우연히 이 장면을 본 뒤 학생들에게 “신앙과 신학이 있어야 할 곳이 바로 이곳이 아닐까 생각한다”고 소개했다. 이 전도사는 이렇게 망원동을 알게 됐고 얼마 후 친구들과 방문해 참상을 목도했다. 그는 그 길로 뚝방마을에 월세방을 구해 눌러앉았다. 망원동과의 인연은 이렇게 시작했다.

이 전도사는 공동화장실을 짓고 주민들과 함께 530세대의 집도 지었다. 오물에 발을 담그고 동전을 찾는 아이들을 위해서는 보육사업을 펼쳤다. 보육원은 자연스럽게 야학으로 이어지며 학업을 포기한 청년들에게 배움의 길을 열어줬다. 망원제일교회(홍성인 목사)의 전신인 애린교회도 설립했다. 그사이 결혼을 했고 아들도 낳았다.

이 모든 일은 5년 만에 해냈다. 하지만 그의 사역은 계속 이어지지 못했다. 뚝방마을에 희망의 씨앗이 자랄수록 그의 몸은 결핵균이 뒤덮었다. 세 차례나 큰 수술을 받았지만 결국 77년 3월 23일 하나님 품에 안겼다. 임종 사흘 전 병문안을 온 주 교수에게 남긴 유언은 지금도 감동으로 다가온다.

“선생님,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요 하나님의 능력입니다. 선생님은 제가 여기 와서 병이 난 줄 아시지만 전 여기 오기 훨씬 전 죽었던 사람입니다. 지금까지 덤으로 살았던 거예요. 부러울 게 없습니다. 이렇게 행복해도 되나 싶어요. 죽는 건 두렵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일을 하다 죽게 된 게 얼마나 감사한지 몰라요.”

부인 박영혜 도림교회 장로는 8일 국민일보와의 통화에서 “마땅히 해야 할 일을 하다 하나님의 부름을 받은 남편을 이렇게 오래도록 기억해 주시는 분이 많아 늘 감사하게 생각한다”며 “명예졸업장을 받을 수 있도록 힘쓴 신대원 동기회와 장신대의 배려 덕분에 남편이 졸업장을 받게 돼 기쁘다”고 말했다. 박 장로는 이 전도사를 대신해 명예졸업장을 받을 예정이다.

장창일 기자 jangci@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