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명분 없는 후보 단일화, 유권자에 대한 예의 아니다

입력 2022-02-09 04:03
대선이 한 달도 남지 않은 시점에 단일화 이슈가 다시 등장했다. 국민의힘이 윤석열 대선 후보와 안철수 국민의당 대선 후보의 단일화를 띄우면, 국민의당이 이런저런 반응을 내놓으며 논란이 확대되는 형세다. 더불어민주당도 이재명 대선 후보와 안 후보의 공동정부론을 말하며 한 다리를 걸쳤다. 못 먹는 감 찔러나 보자는 식이다. 이 후보와 김동연 새로운물결 대선 후보와의 단일화도 염두에 두고 있다고 한다. 후보 단일화는 대선 때마다 등장한 단골 메뉴였고, 이번에도 예외가 아닌 셈이다.

단일화 논의는 무성한데 뚜렷한 실체는 보이지 않는다. 안 후보는 8일 관훈클럽 초청 토론회에서 “제가 정권교체의 주역이 되려 나왔다”며 단일화론을 일축했다. “어떤 제안을 받은 적도 없고, 단일화 방식에 대해 고민해본 적은 더더욱 없다”고도 했다. 윤 후보도 최근 언론인터뷰에서 “단일화를 배제 안 한다”고 말했지만, 구체적인 움직임을 보이지는 않는다. 국민의힘 내부에서도 야권 후보 단일화에 대한 의견이 통일되지 않고 있다고 한다.

후보 단일화는 대선의 블랙홀이다. 정책 대결이나 비전 제시는 뒤로 밀리고 누가 후보가 되느냐에 모든 관심이 집중될 수밖에 없다. 4일 뒤인 13일부터 대선 후보 등록이 시작되고 15일부터는 공식 선거운동이 시작된다. 후보들은 아직 제대로 된 공약집도 내놓지 못하고 있다. 유권자들은 찍을 사람이 없다고 고민에 빠져 있는데, 정치권은 단일화 계산에 바쁘다. 유권자에 대한 예의가 아니다. 후보 단일화는 정치적 이벤트이고 후보와 정당이 결정할 문제다. 단일화는 유권자의 선택 폭을 줄이고 사실상 양자택일을 강요하는 일이다. 유권자에게 선택을 강요하려면 적어도 명분은 갖춰야 한다. 비전과 정책을 공유하는 정책 연대, 가치 연대의 내용 정도는 제시해야 한다. 후보를 양보하면 총리를 준다느니 몇 개 부처를 준다느니 하며 접근할 문제가 아니다. 단일화가 승리의 보증수표도 아니다. 2012년 18대 대선에서 안 후보 사퇴로 문재인 후보가 단일 후보가 됐지만, 박근혜 후보에게 패배했다. 습관적인 단일화 논의는 성사되기도 어렵고 효과도 크지 않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