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물을 상상한다. 충분한 물이 담겨 있어 우물물을 긷기 위해 사람들이 하루에도 몇 번씩 오가는 우물. 사람들은 우물 안을 들여다보고 대수롭지 않은 표정을 짓는다. 그저 물의 유무만이 중요하다는 듯이. 우물의 우가 비(雨)를 뜻하는 게 아니라는 사실을 알았을 때, 처음으로 우물이 달리 보였다. 우물 속이 궁금해졌다는 말이다. 우물의 본딧말은 움물인데, 이는 ‘움에서 솟아오르는 물’을 뜻한다. 움막, 움집이라고 할 때의 그 움이다. 땅을 파는 일이 선행돼야 하기 때문에 우물은 지하수를 뜻하는 것이기도 하다.
얼마 전에 있었던 대선 후보 초청 TV 토론회가 우물의 시작이었다. 토론회를 보고 나서 나는 속이 몹시 탔는데, 그때 문득 ‘우물 들고 마시겠다’라는 속담이 떠오른 것이다. 성미가 몹시 급한 것을 비꼬는 말인데, 이는 원래 성마른 나 자신을 다그칠 때 길어 올리곤 하는 말이었다. 토론을 위해 마이크 앞에 선 네 명의 후보는 각자의 우물 안에 있었다. 우리가 집, 학교, 직장, 공동체 등에 소속돼 있듯이. 어디에 있든 우물은 고여 있는 성질의 것이라, 호수가 되고 강이 되고 바다가 되려면 밖을 생각하지 않으면 안 된다.
다 같이 우물 안에 있을 때, 우물 바깥을 상상하는 사람도 있고 내 우물이 더 크다고 떵떵거리는 데 혈안이 되는 사람도 있다. 자신의 우물을 지킨다는 명목으로, 혹은 과시하기 위해 다른 이의 우물을 헤집는 일이 심심찮게 벌어지기도 한다. 한 우물을 파는 사람도 있고 목마르고 갑갑해 먼저 다른 우물을 파는 사람도 있다. 몸담고 있는 우물 안에 무엇이 있는지 몰라 난처한 사람도 있고 난데없이 숭늉을 찾는 사람도 있다. 다행히도 실은 우리가 개구리일지도 모른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모든 선거는 어쩌면 우물에도 샘구멍이 따로 있음을 확인하는 자리일지도 모르겠다. 샘구멍을 제대로 찾지 못한다면 물이 부족해지는 것은 시간문제다.
우물거릴 때마다 나는 내가 속한 우물과 내 안의 우물을 떠올렸다. 우물거린다는 것은 하고 싶은 말이 있다는 것이다. 물이 넘치기 직전이라는 말이다. 그러나 그 말이 혹시라도 다른 이에게 상처를 안기고 그가 속한 우물을 부정하는 것이 될까 봐 참고 또 참는 것이다. 뱉지도 삼키지도 못하는 상황으로 인해 우리의 우물은 늘 들썩인다. 들떠서가 아니다. 안절부절못해서다. 그리하여 우물의 바닥에 옹크리고 앉아서 못다 전한 사연을 가만히 감싸 안는다. 이현승의 시 ‘바닥이라는 말’(시집 ‘대답이고 부탁인 말’, 문학동네, 2021)의 마지막 부분처럼 말이다. “아무리 맑은 우물이라도/ 바닥 사정은 비슷하다./ 그러므로 함부로 휘젓지 말 것.” 우리에게는 지금 바닥을 휘젓는 사람이 아닌, 바닥을 보듬는 사람이 절실하다.
한편 내 안의 우물을 응시하는 일은 나를 아는 가장 적극적인 일이기도 하다. 고였다는 것은 흘려보내지 못했다는 것이니까. 어떤 고민이, 문제가 풀리지 않았다는 말도 되니까. 더 깊이, 더 철저하게 내려갈수록 나의 목소리가 선명해진다. 우물우물하던 말이 생명을 얻으며 물웅덩이는 이윽고 심연이 된다. 우물을 영어로 ‘well’이라고 하는데, 이 단어는 ‘제대로’와 ‘건강한’이라는 다른 뜻도 가지고 있다. 나를 제대로 알기 위해서는 내 안의 우물을 들여다봐야 하고 그래야 몸도 마음도 건강해질 수 있다.
우물 정(井)자는 어쩐지 요새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서 자주 쓰이는 해시태그(#)를 닮았다. 우물로서 자기 자신을 표현하는 것일 테다. 내가 길어 올린 우물물에서 무엇이 발견됐다고 알리는 것이다. 우물 안 개구리일 수도 있지만, 어쩌면 우리는 개구리를 품고 있는 우물일지도 모른다. 타인은 나의 일부분만 보기 마련이니까. 개구리라고 쉽게 단정하고 마니까. 우물쭈물하다가는 평생 우물을 벗어날 수 없을지도 모른다. 우물 밖에 무엇이 있을까. 우물 밖의 생활은 어떨까. 우물 밖에 나가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 이런 물음들 없이는 내 우물은 말라붙어 금세 유물이 될지도 모른다.
우물 안 개구리에서 우물 밖 개구리로, 다시 우물 안팎의 개구리로. 도약력에 유연성까지 갖춘 개구리는 더 이상 올챙이 적 생각 못 한다는 비난을 받지 않아도 된다. 안을 살피고 밖을 헤아리는 능력을 바탕으로 어디로든 갈 수 있을 것이다. 다가오는 3월 9일, 새 우물 앞에서 해갈이 되기를 간절히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