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너지 요금의 ‘정치화’가 극심해지고 있다. 대선을 의식한 정부가 전기·가스요금 인상 부담을 차기 정부에 넘긴 상황이지만, 새 정부 출범 직후 전기·가스요금 인상이 쉽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하다. 이로인한 에너지 공기업의 적자는 결국 세금으로 메워야 해 ‘폭탄 돌리기’라는 지적이 일고있다.
지난해 국제유가 상승으로 연료비 가격이 폭등하면서 전기·가스요금 인상 압박이 가중됐지만 정부는 요금 상승을 계속 억눌러왔다. 결국 지난해 말 에너지 공기업들은 올해부터 요금을 올리겠다고 주장했고 정부는 대선을 의식해 1분기에는 요금을 동결한 뒤 2분기부터 인상키로 결정했다. 정부는 물가 안정을 위해 분기별 조정폭을 만들었다는 입장이지만, 연료비 연동제가 정치 논리에 따라 유명무실화해졌다는 비판을 피하기 어려웠다.
전기요금 동결 부담은 오롯이 에너지 공기업의 몫이다. 특히 최근 가파른 국제 유가 상승에 전력도매가격(SMP)이 고공행진하며 한국전력의 적자가 눈덩이처럼 불어 올해 적자 규모는 10조원을 넘길 것으로 관측된다.
이런 적자는 결국 국민 부담으로 돌아온다. 에너지 공기업 관계자는 7일 “정부는 (공공요금) 인상을 통제하면서 부담을 줄인다고 생색까지 낸다. 국민이 지게 될 부담을 오히려 혜택으로 포장한다”고 말했다.
이런 상황에서 2분기 전기·가스요금 인상이 실제 가능할 것인지 의문을 제기하는 목소리가 흘러나온다.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 후보는 아예 ‘전기요금 동결’을 공약으로 내세웠다. 다른 후보가 당선된다고 해도 임기 초반인 점, 6월에 지방선거를 앞두고 있는 점 등 때문에 전기·가스요금 인상이 쉽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도 있다. 고물가 국면이 지속되는 상황에서 정부로선 물가 상승 억제를 위해 가장 손쉬운 정책수단은 공공요금 동결을 들고 나올 수 있다.
실제 지난 20년 동안 이뤄진 전기요금 조정 실적에 따르면 대선이나 총선, 지방선거 등 중요한 선거가 3개월도 남지 않은 상황에서 전기요금이 인상된 적은 한 번도 없었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독립된 규제기관에서 에너지 요금을 결정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현 구조에서는 에너지 공기업이 요금을 조정하려면 정부로부터 인가를 받아야 한다. 최종 결정은 산업통상자원부 산하 전기위원회에서 내리지만 독립성을 갖춘 기관으로 보기는 어렵다. 반면 미국 연방에너지규제위원회(FERC)나 영국의 가스·전력시장위원회(GEMA), 프랑스의 에너지규제위원회(CRE) 등은 위원장 등을 대통령이 임명하거나 의회의 동의와 추천을 통해 위원회를 구성해 독립성·중립성을 확보하고 있다.
조홍종 단국대 경제학과 교수는 “정부의 가격 시그널 통제는 현재 소비자에서 미래 소비자로 비용을 전가하는 정책적 미스”라며 “언젠가는 한전의 부채가 한꺼번에 풍선처럼 터져 세금으로 공적자금을 투입해 해결해야 하는 시점이 도래할 수 있다”고 말했다.
세종=신재희 기자 jshi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