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로 확산한 ‘비대면’이 건강관리와 의료 분야까지 넘보고 있다. 디지털 헬스케어는 새로운 미래 먹거리로 떠오르고 있다. 네이버, 카카오 등 IT기업에 통신사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기업이 앞다퉈 나섰다. 대형병원들도 활발하게 디지털 기술을 도입하며 융·복합 서비스를 개발 중이다. 하지만 표준산업분류도 정해지지 않은 부족한 법과 제도의 개선은 물론 여전히 거센 의료계 반대 등은 넘어야 할 큰 산이다.
7일 글로벌마켓인사이트에 따르면 디지털 헬스케어 시장 규모는 2020년 1064억 달러(약 125조 원)에서 매년 30% 성장해 2025년 5044억 달러(약 593조원)에 육박할 것으로 추산된다. 디지털 치료제 시장도 빠르게 커지고 있다. 한국전자통신연구원은 국내 디지털 치료제 시장이 지난해 2017억원에서 2023년 3263억원으로 커진다고 전망했다. 약물은 아니지만 의약품과 같이 질병을 치료하고 건강을 향상시킬 수 있는 소프트웨어(SW)를 디지털 치료제라고 부른다.
지난달 초 열린 세계 최대 전자·가전 전시회 CES 2022에서 헬스케어는 핵심 키워드로 제시됐다. 기업들은 웨어러블 기기, 가상현실(VR) 기반의 헬스케어 솔루션 등의 기술을 들고 나왔다.
디지털 헬스케어 시장의 고속성장 배경에는 코로나19가 있다. 제자리걸음을 하던 원격의료는 비대면 진료의 필요성이 커지면서 급물살을 탔다. 감염병예방법 개정으로 2020년 2월부터 전화 상담과 비대면 처방은 한시적으로 허용됐다.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지난해 10월까지 150만여명이 312만건의 원격진료를 받았다.
흐름이 형성되자 다양한 기업이 디지털 헬스케어 시장을 넘보고 있다. 네이버는 경기도 성남에 짓고 있는 제2 사옥에 사내병원을 마련하고 직원을 대상으로 의료 인공지능(AI) 개발, 원격진료 등을 할 예정이다. 로봇수술 권위자인 나군호 세브란스병원 교수를 헬스케어연구소장으로 선임하기도 했다. 카카오는 지난해 12월 사내독립기업(CIC)을 세우고 황희 분당서울대병원 교수를 영입했다. LG전자는 지난해 10월 카이스트와 ‘디지털 헬스케어 연구센터’ 설립을 위한 협약을 맺었다.
스타트업도 활발하다. 닥터나우는 플랫폼을 통해 비대면 진료와 약 처방을 제공한다. 헬시테크 플랫폼인 넛지헬스케어는 걷는 만큼 포인트를 적립해주는 ‘캐시워크’와 멘탈케어 중심의 ‘마음챙김’ 서비스를 운영한다. 제나는 생체 데이터를 AI로 분석하는 기술을 보유하고 있다.
통신사들도 눈독을 들인다. AI와 통신기술을 기반으로 다양한 변주가 가능하기 때문이다. SK텔레콤은 유전자검사기관에 직접 유전자검사(DTC)를 의뢰하는 서비스를 바탕으로 헬스케어 서비스를 제공한다. KT는 최근 가톨릭중앙의료원 등의 의료기관, AI 스타트업과 협업해 디지털 치료기기, 헬스케어 키오스크 등을 연구·개발 중이다. LG유플러스는 뇌 질환 디지털 치료 전문기업 로완, 질병 예측 알고리즘 개발기업 휴레이포지티브 등과 손을 잡고 서비스 출시를 준비하고 있다.
의료계에서도 ‘디지털 전환’ 필요성을 인정하며 논의를 시작했다. 한국보건산업진흥원에 따르면 의료인 601명 중 71.8%는 디지털 헬스케어 도입이 필요하다고 응답했다. 대한의료협회는 지난해 11월 ‘원격진료 대응 TF’를 만들고 대응에 나섰다. 의료협회 관계자는 “원격의료는 보조적 수단에 그쳐야 하고, 상업화돼 클릭 몇 번으로 이뤄지는 진단과 처방을 경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미비한 법·제도는 걸림돌로 작용한다. 디지털헬스산업은 표준산업분류조차 없다. 산업계 관계자는 “원격진료에 대한 책임소재나 디지털 치료제 수가체계 등이 전혀 논의되지 않고 있다”고 지적했다. 배민철 디지털헬스케어산업협회 사무국장은 “세계적으로 데이터 기반 디지털헬스산업의 전략적 가치와 중요성이 커지고 있지만, 국내에선 헬스데이터 활용 접근성을 저해하는 ‘규제 허들’이 높다. 법제화를 통한 종합·체계적 지원이 급선무”라고 말했다.
양한주 기자 1week@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