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돋을새김] 새로운 영웅을 기다리며 Ⅲ

입력 2022-02-08 04:05

‘새로운 영웅을 기다리며’라는 제목의 글을 세 번째로 쓴다. 12년 전인 2010년 3월에 처음 썼고, 두 번째는 2018년 3월이었다. 모두 동계패럴림픽이 열릴 때쯤이었다. 매일 전해야 할 새로운 소식이 넘쳐나는 신문 지면에 같은 제목의 칼럼을 세 번이나 쓰게 된 건 2010년 3월 밴쿠버 동계패럴림픽 취재 당시 알게 된 한 청년의 스토리가 계기가 됐다. 김연아와 이상화, 모태범, 이승훈 등이 그해 2월에 열린 밴쿠버 동계올림픽에서 스타로 탄생하면서 동계올림픽 종목에 대한 관심이 치솟았던 시기였다.

하지만 동계패럴림픽을 취재하는 것은 경기 상황을 긴박하게 전해야 하는 체육부 기자의 일반적인 일과는 퍽 달랐다. 대한민국 선수들이 패럴림픽에서 어떤 성적을 기록했는지보다는 그들이 패럴림픽까지 어떤 과정을 거쳐 오게 됐는지가 더 중요했다. 동계올림픽과 동계패럴림픽의 개막식 장소였던 BC 플레이스 스타디움의 개선문이 그래서 더 각별하게 느껴졌는지도 모른다. 그곳에는 테리 폭스라는 청년의 모습이 새겨져 있었다.

열여덟 어린 나이에 골육종 진단을 받고 오른쪽 다리를 절단한 그는 의족에 의지한 채 생활하던 중 암 연구기금 마련을 위한 캐나다 횡단 마라톤을 결심한다. 오랜 훈련 후 그는 의족을 단 오른쪽 발을 내디디며 8000여㎞를 횡단하는 도전을 시작했다. 한 발짝 한 발짝이 고통의 연속이었고, 의족과 맞닿은 다리의 절단 부위에는 상처가 아물 날이 없었지만 멈추지 않았다. 143일간 매일 평균 37㎞를 달렸으나 144일째 되던 날부터는 더 이상 달릴 수 없었다. 암이 재발했고, 암세포가 폐로 전이됐다는 진단이었다. 병상으로 옮겨진 그는 몇 개월 후 숨을 거뒀다.

병상에서도 “마라톤을 이어갈 사람이 필요하다”고 호소했던 그를 캐나다인들은 영웅으로 추앙한다. 그의 달리기가 장애인의 도전정신과 나눔의 소중함을 확산시켰기 때문이다. 그 뜻은 지금도 매년 9월 세계 곳곳에서 열리는 ‘테리 폭스 달리기대회’로 이어지고 있다. 패럴림픽이 열릴 때마다 새로운 영웅의 출현을 기다리는 이유는 하나다. 패럴림픽 스타에 대한 관심이 장애인 스포츠 확산의 촉매가 되고, 우리 사회 장애인들에게 더 많은 기회가 주어지는 환경을 만드는 데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하기 때문이다.

다음 달 4일 개막하는 2022 베이징 동계패럴림픽 휠체어컬링 국가대표팀의 애칭은 ‘장윤정 고백’ 팀이라고 한다. 유명 가수의 이름을 떠올리게 하는 팀명이지만 실제로는 대표팀 선수 5명의 성씨를 하나씩 붙인 것이다. 동계패럴림픽 휠체어컬링 국가대표팀은 장재혁(51) 윤은구(53) 정성훈(44) 고승남(37) 백혜진(39) 선수로 구성돼 있다. 5명의 성씨를 차례로 부르면 ‘장윤정 고백’이 된다.

‘장윤정 고백’ 팀은 지난해 베이징에서 열렸던 휠체어컬링 세계선수권대회에선 9위에 그쳤지만, 선수들의 기량이 궤도에 올라 있어 이번 대회에서 메달권도 가능하다는 분석이 나온다. 이번 휠체어컬링 대표팀의 강점은 오랜 기간 같은 팀으로 호흡을 맞춰왔다는 점이다. 2018 평창 동계패럴림픽 당시 휠체어컬링 대표팀이 개인별로 선발됐던 것과 달리 이번 대회를 앞두고는 팀 대항전으로 대표팀을 뽑았다.

대표팀의 백혜진 선수는 지난달 24일 이천선수촌에서 만난 취재진에게 ‘장윤정 고백’이란 팀 애칭을 소개하면서 “장윤정씨가 불쾌해하실까 봐 조심스러운데, (가수 장윤정처럼) 국민들에게 많은 기쁨을 드리고 싶다”고 했다. ‘장윤정 고백’ 팀이든 혹은 또 다른 어떤 선수든 이번 동계패럴림픽에서 국민들에게 많은 기쁨을 주는, 새로운 스타가 탄생하기를 기대한다.

정승훈 디지털뉴스센터장 shju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