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승민의 사이언스&테크놀로지] 대세로 자리잡은 양자컴퓨터… 진화는 계속된다

입력 2022-02-08 04:02 수정 2022-02-08 10:41

어떤 상자에 1이나 2라는 숫자가 적혀 있는 종이가 들어 있는데 아무도 답은 모른다. 분명한 것은 어떤 숫자가 적혀 있는지 답을 모르는 것이 아니라 진짜로 둘 중 어떤 것이든 될 수 있는 종이가 들어 있다는 사실이다. 대신 상자를 열어 볼 때의 조건에 따라 1이나 2라는 숫자 둘 중 하나만 확인할 수 있다. 이런 현상이 말이 될까. 이런 말도 안 될 것 같은 현상이 분명히 존재하는데 이를 ‘양자중첩’이라고 한다. 이를 이용해 개발한 컴퓨터를 ‘양자컴퓨터’라고 부른다. 이 양자컴퓨터가 현실에 들어와 있다. 세계 각국은 양자컴퓨터 기술 확보를 위해 경쟁적으로 달려들고 있다.

지금까지 우리가 사용하던 컴퓨터는 ‘비트’라는 단위를 사용한다. 0 또는 1을 표현할 수 있는 최소 단위다. 비트가 16개 있으면 16²=256가지의 경우를 표시할 수 있다. 그런데 문제는 이런 256가지를 모두 하나씩 차근차근 확인해 가며 계산해야 한다. 숫자가 많아지면 많아질수록 계산에 필요한 시간이 점점 더 많아지게 된다. 우리가 사용하는 컴퓨터가 가끔 하염없이 계산에 시간을 잡아먹는 것은 이 때문이다.

양자컴퓨터는 이와 반대다. 큐비트가 16개가 있다면 2의 16승인 6만5536개의 경우의 수를 모두 한꺼번에 확인할 수 있게 된다. 시간 지체 없이 한번에 계산을 끝낸다. 만약 큐비트가 20개면 104만8576개의 계산을 한꺼번에 끝낼 수 있다. 이론상 수백 개가 넘어가면 모든 슈퍼컴퓨터의 성능을 뛰어넘을 거라는 예측이 많다. 그러니 양자컴퓨터 시대를 선점하려는 여러 기업은 저마다 이 ‘큐비트’ 숫자를 늘리기 위해 사활을 걸고 있다.


최근 등장한 양자컴퓨터 중 가장 주목할 만한 것은 2019년 개발된 구글의 ‘시커모어’일 것이다. 53큐비트의 양자컴퓨터 칩이 탑재돼 있는데 기존 슈퍼컴퓨터로 푸는 데 1만년 걸릴 과제를 약 200초 만에 풀 수 있다고 강조한 바 있다. 이 밖에 리게티 컴퓨팅이란 회사가 아스펜-M이란 이름의 80큐비트 양자컴퓨터를 2021년 소개했었다. 컴퓨터 산업계의 맏형 IBM도 2021년 11월 127큐비트의 ‘이글’ 프로세서를 발표한 바 있다. 중국도 최근 양자컴퓨터에 집중 투자하고 있다. 2021년 66큐비트의 ‘쭈충즈’를 자체 개발했다고 발표했다.

양자컴퓨터는 아직 완전히 규명된 원리가 아니어서 개발사마다 이야기가 다르다. 양자컴퓨터를 만들려면 양자중첩 현상을 만들기 위해 초전도 냉각장치 등 복잡한 주변장치가 필요한 경우가 많다. 양자컴퓨터를 운영하는 입장에선 적어도 기존 슈퍼컴퓨터 이상의 성능을 발휘해 주어야 수지가 맞는 셈이다. 이처럼 양자컴퓨터의 성능이 일반적인 슈퍼컴퓨터의 컴퓨터 성능을 뛰어넘는 것을 ‘양자 우월성’에 도달했다고 하는데 현재는 누가 먼저 이 ‘양자 우월성’에 도달하느냐를 놓고 경쟁이 한창이다.

구글은 2019년 개발된 시커모어가 양자 우월성을 달성했다는 입장이다. 이 컴퓨터를 미국 항공우주국(NASA)과 공동으로 개발했으며 현재 실용화 과정을 연구 중이며, 2029년이면 완전한 시스템을 가동할 수 있다는 게 구글의 입장이다. 반대로 IBM은 ‘1000큐비트 이상의 양자 시스템’이 개발돼야 양자 우월성에 도달할 수 있다고 내다보고 있다. 2023년까지 1121큐비트의 ‘콘도르’ 프로세서를 출시할 계획이다.

양자컴퓨터를 사용하면 슈퍼컴퓨터로 몇 년에 걸쳐 계산해야 하는 문제를 단 몇 초 만에 풀어낼 수 있다는 주장이 많다. 이 정도로 성능이 뛰어나면 기존 컴퓨터는 쓸모없게 되는 것일까. 구글은 2016년 양자컴퓨터 개발 선언 이후 특정 수학 문제를 양자컴퓨터로 계산해 보여 화제를 모은 바 있다. 그런데 이 양자컴퓨터로 일반 수학 문제를 풀면 도리어 일반 컴퓨터보다 효율이 떨어졌다. 즉 어떤 문제는 훨씬 더 빨리 처리하지만 일반적인 모든 사례에서 성능이 뛰어나다고 보기 어렵다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양자컴퓨터로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 없고 다만 기존 컴퓨터로 너무나 긴 시간이 걸리는 몇몇 난제 해결에 도움이 된다고 보고 있다. 즉 앞으로 두 가지 시스템을 모두 사용하며 상호보완적으로 사용해야 한다는 주장이 설득력이 있다.

그렇다면 양자컴퓨터가 활약할 분야는 어디일까. 가장 먼저 실용화될 것으로 주목받는 것은 암호 및 보안 분야이다. 보안 전문가들은 2030년까지 1만 큐비트 수준의 양자컴퓨터가 상용화되면 기존 암호 시스템이 무력화되는 ‘양자 취약성’ 우려가 있다고 지적한다. 여기에 대응하기 위해선 차세대 양자 보안시스템이 앞으로 한층 더 각광받을 것으로 보인다. 양자현상을 이용해 보안시스템을 구성하면 해킹이 사실상 불가능한 첨단 시스템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현재 이 기술을 일부 적용해 통신보안 등에 적용하는 회사가 늘고 있다. 통신 분야에선 양자 기술이 실용화 단계라 업계 표준만 합의되면 관련 제품 시장이 빠르게 발전할 수 있다는 기대가 많다. 삼성은 이미 스위스의 양자암호통신 기업 IDQ(ID Quantique)가 개발한 양자 난수 생성기 칩이 내장된 갤럭시 퀀텀2(Galaxy Quantum2) 스마트폰을 출시하기도 했다. SK텔레콤과 KT, LG유플러스 등 국내 통신기업들도 양자시스템 도입에 한창이다.

양자컴퓨터의 또 다른 장점은 데이터 처리 능력이다. 양자컴퓨터가 ‘빅데이터 시대의 다크호스’라고까지 불리는 까닭이다. 폭스바겐, 에어버스 등 세계적 기업들은 양자시스템을 이용해 교통 최적화, 항공기 설계 등에 양자 응용 프로그램을 활용하는 방안을 추진 중이다. 현대차도 미국 양자컴퓨터 스타트업과 손잡고 차세대 배터리 개발에 나섰다. 양자컴퓨터 기술은 인공지능 시대에 더욱 주목받을 전망이다. 양자컴퓨터의 ‘큐비트’를 인공지능의 기본 소자로 활용할 경우 기존의 시스템으로 상상하기 어려운 초고성능 인공지능 개발이 가능할 거라는 기대도 높다. 이처럼 양자 컴퓨팅 시장은 시장의 대세가 됐다. 보스턴컨설팅그룹에 따르면 앞으로 수년 뒤 양자컴퓨팅 시장은 4500억~8500억 달러(약 539조~1018조원)에 달할 것으로 전망된다. 전 세계 ICT 기업들이 양자컴퓨터 개발에 사활을 거는 이유다.

전승민 과학저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