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은 지난 2일 나토군의 일부로서 우크라이나 파병 대기 중인 8500여명의 미군과 별도로 3000여명에 이르는 미군을 독일을 거쳐 폴란드와 루마니아 등지로 직접 배치할 것을 전격적으로 발표했다. 이에 맞서 러시아는 더 많은 군대를 배치함으로써 수개월 동안 이어져 왔던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간 긴장 상태가 최고조로 치닫고 있다. 외견상 신냉전에 따른 군사적 대치 상황이 전개되고 있으나 이익갈등이 내재돼 있다고 해석하는 게 더 적절해 보인다.
우크라이나의 나토 가입 선언으로 촉발된 위기의 핵심은 소련 붕괴 당시 러시아와의 약속을 어기고 계속 동쪽으로 확장해 온 나토에 대한 러시아의 반발이라고 이해된다. 특히 완충 지대 역할을 하는 우크라이나를 비롯한 구소련 국가들의 나토 가입 그리고 동유럽 국가들에서의 미사일 기지 배치와 나토의 군사훈련 등은 러시아로서는 매우 위협적으로 느낄 수 있는 요인이다.
반면 크림반도 등 영토의 상당 부분을 러시아에 빼앗긴 우크라이나는 서방측의 군사 안보적 지원이 절실했고 나토 가입은 그 일환으로 볼 수 있다. 여기에 더해 러시아로부터의 위협을 막는 안보 최전선 국가라는 점을 강조함으로써 미국의 경제적 지원과 유럽 경제권으로의 통합도를 높여 경제 발전을 도모하려는 목적도 존재한다.
그런데 이번 위기는 과거의 유사한 갈등이나 분쟁과는 매우 다른 양상으로 전개되고 있다는 점에서 주목할 필요가 있다. 무엇보다 러시아는 보란 듯이 대규모로 군사력을 이동하는 모습을 장기적으로 노출시켜 왔다. 미국 등 서방 언론들은 미 정부 당국의 정보를 거르지 않고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설을 기정사실화해 왔다. 그러나 정작 대규모 전쟁을 준비한다는 러시아의 언론은 매우 평온하다. 또한 러시아의 위협을 과장하던 우크라이나 정부는 이젠 전쟁 발발 가능성을 일축하고 있다.
이러한 일련의 모습에서 양측 모두 물러설 수 없는 어떠한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협상력을 높이려는 고도의 심리전을 하고 있는 게 아닌가 조심스럽게 예측된다. 우크라이나가 나토에 가입하면 향후 크림반도와 친러시아 반군 점령 지역의 주권 회복을 공공연히 선언할 가능성이 크다. 이로 인해 러시아는 우크라이나 영토 강탈에 대한 국제사회의 비난을 지속적으로 받으면서 항상적인 긴장 상태를 유지해야 하는 상황이 닥칠 수 있다. 따라서 이번 기회에 러시아는 소련 붕괴 이후 자국에 극도로 위협적인 서방 안보 지형의 근본적인 재편을 꾀하려는 것으로 보인다.
미국의 중동 및 유라시아지역으로부터 인도 태평양지역으로의 전략 변경 국면을 이용해 미·중 간 갈등 구도 속에서 러시아의 역할과 존재를 부각시키려는 의도도 엿보인다. 가스 수입 의존도와 러시아 무역 비중 등에서 미국과 유럽의 이해관계가 차이가 있는 점을 적극 이용해 서방 진영을 분열시킴으로써 자신의 의도를 관철하려는 작업을 계속 진행 중이기도 하다. 이미 여러 유럽 국가 수장들이 중재 역할을 자임하고 나서는 모습은 이를 방증한다.
이러한 러시아에 맞서 미국과 나토도 더 이상 물러설 수 없는 단계로 진입한 상황에서 전쟁 발발에 대한 공포가 지속되고 있다. 그러나 대치와 막후 협상 국면이 지루하게 지속될 가능성이 크다. 전쟁보다 분쟁 중인 돈바스 지역에 대한 러시아의 직접적 지원이나 국지적 분쟁 지역 확대 그리고 우크라이나 정·재계 내 친러시아 세력의 확산 등 다양한 차원에서의 ‘관리되고 통제된 갈등’이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이는 필연적으로 동아시아에서의 안보 불안으로 이어질 수 있기에 우리 정부는 러시아 경제 제재가 실행돼 동참을 요구받게 될 때를 대비해 여러 플랜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
정재원 국민대 유라시아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