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이름은 넓을 호(浩)에 길 영(永)을 씁니다. 목사님이셨던 할아버지가 지어주신 이름입니다. 미션스쿨에 다니며 일찍 믿음에 눈을 뜨자 제 이름에 대한 의구심이 생겼습니다. ‘성경은 좁은 길로 가라고 하는데, 왜 넓은 길이지? 다만, 고생하지 말라고 지어준 이름인가’하는 고민이었습니다.
신학대학원에 입학해 성경을 묵상하던 중에 “주께 힘을 얻고 그 마음에 시온의 대로가 있는 자는 복이 있나이다”(시 84:5)라는 말씀을 보면서 ‘아, 이거구나’라는 깨달음이 왔습니다. 믿음의 길이 아무리 좁은 길, 험한 길이어도 하나님과 동행하면 그 길이 대로가 된다는 사실입니다. 비록 오늘 코로나19로 현실이 어렵고 힘들지라도, 하나님의 자녀는 주께 힘을 얻어서 마음에는 시온의 대로를 가지고 살아야 할 것입니다.
시편 84편에서 시인은 죽음을 생각할 만큼 고통스러운 인생 여정을 지나고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런데도 시인은 어떻게 그 마음에 시온의 대로가 열린 것일까요.
그는 성전에서 주께 힘을 얻습니다. 시인은 어떤 어려운 현실로 인해 성전에 나아갈 수 없습니다. 그럴수록 그는 더욱 성전을 그리워합니다. 어찌나 간절한지 다양한 표현으로 그립니다. 주의 장막(1절), 여호와의 궁정(2, 10절), 주의 제단(3절), 주의 집(4절) 등입니다.
시인의 성전을 사모하는 마음의 절정은 3절입니다.
“주의 제단에서 참새도 제집을 얻고 제비도 새끼 둘 보금자리를 얻었나이다”.
아마도 시인이 살던 집 처마에 참새와 제비 둥지가 있어, 그들이 그곳을 대로처럼 드나들며 힘을 얻는 것을 보며, 성전에 갈 수 없는 자신의 처지를 안타까워하며 몹시 사모합니다. 왜 이렇게 성전을 사모하는 것일까요.
성전은 하나님을 예배하는 공동체로, 주의 자녀들이 함께 모여 예배할 때 주께 더욱 힘을 얻고, 그 마음에 시온의 대로가 열리기 때문입니다. 물론 혼자 예배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주의 백성들이 교회에 함께 모여 하나님을 예배할 때 받는 은혜와 영광과는 비교할 수가 없습니다.
“그들은 힘을 얻고 더 얻어 나아가 시온에서 하나님 앞에 각기 나타나리이다.”(7절)
뉴질랜드에 산 적이 있습니다. 공원을 산책하다 보면 참새들이 모여드는데, 한국 참새와는 달리 둥글둥글 살이 오르고 빛깔이 좋습니다. 이유인즉 시민들이 소풍 와서 먹다가 흘린 부스러기를 먹고 부유해졌다는 것입니다. 귀신 들린 딸을 가진 여인이 예수님께 주인의 아들을 위한 상이라도 그 부스러기는 개에게 던져주는데, 자신에게 부스러기 은혜를 달라고 구함(막 7:28)으로 귀신이 떠났던 것처럼, 하나님이 함께하시는 성소에서는 ‘부스러기 은혜’만 얻어도 만물의 주 하나님으로부터 모든 것을 얻을 수 있습니다. 그래서 시인은 “주의 집에 거하는 자가 복이 있나이다”(4절) 라고 확신에 찬 노래를 부릅니다. 나아가 성전(교회)은 세상 그 어떤 좋은 곳보다 더 안전하고 복되다고 고백합니다.
“주의 궁정에서의 한 날이 다른 곳에서의 천 날보다 나은즉 악인의 장막에 사는 것보다 내 하나님의 성전 문지기로 있는 것이 좋사오니”.(11절)
코로나19란 고난의 시절을 지나면서 더욱 교회를 사랑하고, 성전에 모여 예배하기를 힘써야 할 것입니다. 그때 “주께 더욱 힘을 얻고 그 마음의 시온의 대로”가 열릴 것입니다.
송호영 목사(새생명교회)
◇새생명교회는 한국독립교회선교단체연합회에 소속된 교회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전도 명령에 순종함으로 예수님을 닮아 민족을 치유하고 세상을 변화시키며 성도가 그리스도의 품격을 갖는 교회가 되고자 합니다. 화요일 저녁마다 기독교 문화를 녹여낸 재즈 공연을 열며 세상과 소통도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