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논단] 중산층 위한 새로운 금융수단 내놓아야

입력 2022-02-07 04:06

아무래도 분배가 문제다. 최근 10여년간 세계적으로 관심이 크게 올라간 분야가 있다면 단연 분배 문제일 것이다. 그런 가운데 주목을 받은 것이 토마 피케티의 연구다. 피케티는 선진국의 역사로 볼 때 자본의 수익률이 경제성장률보다 높아서 소득에서 차지하는 자본의 몫이 늘고 노동의 몫이 줄어 분배가 악화된다고 주장한다. 예외가 있다면 선진국이 고도성장을 한 2차대전 이후 수십 년 정도다. 한국도 고도성장기에는 성장률이 자본의 수익률보다 높다가 1997년 외환위기 후 그 반대가 돼 분배를 악화시켰다.

그러나 자본소득이라도 같은 자본소득이 아니다. 그 구성 요소를 보면 내용이 서로 다르다. 자본소득은 이윤, 이자, 지대로 나누어볼 수 있다. 이윤은 기업이 불확실성 속에서 혁신을 통해 장래를 보고 투자해서 얻는 소득이기 때문에 성장의 엔진이다. 그러나 혁신도 기업 혼자 힘으로 하는 경우는 드물기 때문에 그 성과를 공유할 근거가 충분히 있다. 거대 기업이 독점을 통해 혁신을 저해하는 일도 없어야 한다. 이자는 저축으로 자금을 공급해서 생산이 가능하게 하는 데 대한 보상으로 받는 소득이다. 대다수 중산층이나 서민층은 저축을 했을 경우 일단 이자를 받는 예금을 하기 마련이다.

지대는 독특한 성격을 갖고 있다. 개별 공급자 입장에서는 생산요소를 제공하고 수익을 얻는 것이므로 이자와 마찬가지지만, 경제 전체의 관점에서 보면 다르다. 소유 부동산에 대해 우연히 수요가 늘었거나 정부가 도시 개발 및 인프라 건설에 투자한 결과 늘어나는 소득이다. 지대가 늘어날 것으로 예상되면 부동산 가격이 올라 차익이 생기게 된다. 그 차익은 투기를 조장함으로써 성장과 분배를 모두 해칠 수 있다. 우리나라는 지난 60여년간 투기를 조장한 차익이 큰 문제가 돼 왔다. 2014년부터 시작된 부동산 가격 상승을 보더라도 민간 소유 토지 가격 상승분만 2020년까지 7년 동안 국내총생산의 평균 23.1%에 달했다. 토지 소유의 집중도가 높은 상태에서 그 이익은 대부분 부유층에게 돌아갔다.

다행히 부동산 차익이 문제라는 데 대해서는 사회적 합의가 있는 것 같다. 실행이 쉬운 것은 아니지만 그에 대한 대책도 널리 알려져 있다. 한편 주목을 못 받는 가운데 너무 낮아서 문제가 되는 자본소득이 있다. 바로 이자다. 대다수 중산층에게 일차적 저축 수단인 예금이자율을 보면 경제성장률에 미치지 못하는 것은 물론 플러스 수준을 유지하기도 어렵다. 지난 10년간 저축성 예금에 대한 명목이자율은 1.9%였는데, 소비자물가 상승률 1.3%를 빼면 실질이자율은 0.6%에 불과했다. 작년에는 명목이자율이 1.1%였는데, 물가상승률은 2.5%로 실질이자율은 -1.4%였다. 명목이자에 대해 무는 15.4% 세금까지 넣으면 실질이자율은 -1.6%였다. 이렇게 실질이자율이 낮다 보니 여유가 있는 중산층은 부동산 투기에 돈을 몰아넣게 된다.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해야 할까. 우선 예금의 명목이자율보다 실질이자율에 대해 과세하는 것을 생각해 볼 수 있다. 예금보다 수익률은 좀 더 높으면서 위험은 그만큼 높지 않은 금융상품을 만들 수는 없는가. 물론 그런 목적으로 설립된 금융기관이 이미 여럿 있다. 앞으로 그 기관들이 더 좋은 상품을 제공할 수 있게 돼야 할 것이다. 그런 점에서 한국은 뼈아픈 경험이 있다. 정부가 그런 목적으로 설립된 금융기관의 경영에 부적절하게 개입해서 부실화시킨 과오가 있는 것이다.

희망적인 측면도 있다. 현재 정부가 관리하는 국민연금이나 보유 외환에 대한 수익률은 저축예금에 대한 수익률보다 위험의 차이를 감안하더라도 더 높아 보인다. 그 이유는 아마도 세계 금융시장이 통합된 속에서 ‘큰손’에게 유리하기 때문일 것이다. 민간에서 세계적 큰손이 나오기 어려운 한국의 실정에서 정부가 가계를 대신해서 자산을 운용해 줄 여지가 있어 보인다. 미국을 비롯한 다른 선진국에도 그런 예가 있다.

자본소득의 몫이 늘어나 분배가 악화되는 것은 좋은 일이 못 된다. 그러나 자본소득이라도 모두 같은 것은 아니다. 각 자본소득에 대한 정책도 달라야 한다. 중산층이 저축을 운용할 수 있는 금융자산을 좀 더 나은 형태로 제공하는 것이 그런 정책 중 하나가 될 수 있다. 좋은 정책은 사각지대를 메우는 데 있을 경우가 많다.

이제민 (연세대 명예교수·경제학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