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반도포커스] 힘의 상관관계

입력 2022-02-07 04:02

북한이 지난 1월 30일 중거리탄도미사일(IRBM)을 발사했다. 새해 들어 7번째 무력시위다. 북한이 지금 이 같은 행동을 재개한 이유는 무엇일까? 바로 ‘힘의 상관관계(correlation of forces)’가 북한에 유리한 방향으로 변화하고 있다는 것을 계산한 결과다. 이 개념은 마르크스가 혁명이론에서 처음 언급했고, 레닌이 1917년 러시아 혁명에 적용했으며, 1970년대 소련은 국제관계에서 자신의 대외관계를 규정하는 핵심적인 이론적 틀로 발전시켰다. 북한은 이 개념을 렌즈로 삼아 세계의 권력관계를 바라보고 있다.

북한에 그 첫 번째 ‘유리한 방향’은 한국이다. 북한은 이러한 군사적 도발이 앞으로 다가올 대통령 선거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것을 또렷이 알고 있다. 만약 보수 후보가 당선된다면 상식선으로 볼 때 북한에 불리해 보일 수 있다. 하지만 역설적이게도 이러한 도발을 통해 북한이 한국 사회에 여전히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음을 또렷하게 보여주는 증거가 된다. 뿐만 아니라 앞으로 한국에 그 어떤 정권이 들어서든지 관계없이 국제무대의 협상 테이블에서 한국을 배제시키려는 목적이다.

두 번째 ‘유리한 방향’은 매끄럽지 않은 한·미 관계다. 이런 북한의 도발은 현 정부에서 한·미 관계의 균열을 더욱 증폭시키는 방향으로 전개하도록 한다. 미국은 지난 1월 두 차례에 걸쳐 일본 영국 등 다른 나라들과 함께 북한 미사일 발사를 규탄하는 공동성명을 발표했다. 그러나 두 차례 모두 직접 당사국인 한국은 불참했다. 한국 정부는 북한의 미사일 발사에 대해 직접적으로 규탄하는 발언 대신 1월 5일에는 ‘우려’, 11일과 14일에는 ‘강한 유감’, 그리고 17일 ‘매우 유감’ 정도의 표현을 냈을 뿐이었다. 그럼 이다음 행해질 북한의 도발에는 ‘참으로, 진심으로 유감’이라고 발표할 것인가? 이러한 정부의 대응은 미국으로 하여금 동맹국인 한국에 대한 신뢰를 약화시키게 한다.

세 번째 ‘유리한 방향’은 북한을 둘러싸고 있는 국가의 현재 상황이다. 중국은 베이징올림픽, 러시아는 우크라이나 사태로 북한 문제는 우선순위에 밀려나 있다. 특히 북한의 도발은 중국에 대한 레버리지를 높이게 한다. 만약 북한이 올림픽 기간에 또 다른 미사일 실험을 한다면 북한은 이제 중국조차도 통제할 수 없는 독립적인 나라라는 이미지를 세계에 각인시키게 된다. 더불어 김정은의 정치적 위상도 더욱 강화될 것이다.

마지막 ‘유리한 방향’은 나약한 미국 대통령이다. 김정은은 조 바이든을 시험하고 있다. 아프가니스탄에서의 끔찍한 철수작전 실패와 우크라이나 상황에 대한 형편없는 대응에서 볼 수 있듯이 바이든의 국제사회 관리 능력 부족은 김정은으로 하여금 현 상황을 더욱 대담하게 악용하도록 만들고 있다.

2018년 김정은은 중거리 및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발사 관련 모라토리엄을 선언했지만 지난 시험발사를 통해 이를 파기했다. 이제 북한은 대기권 재진입 기술만이 남은 ICBM 시험발사를 눈앞에 두고 있다. 만약 이 시험발사가 성공하게 된다면 북한은 미국 본토를 정확히 타격할 수 있는 완벽한 미사일 기술을 보유하게 된다. 이를 통해 북한은 사실상 직접적으로 미국에 대한 억지력을 갖게 되는 것이다. 만약 이런 상황이 발생한다면 미국은 한미상호방위조약뿐만 아니라 2차 대전 이후에 갖고 있던 동아시아에 대한 안보정책, 특히 그중 핵심인 확장억제에 대한 계산이 달라지게 된다. 냉전시대에 미국의 핵 반격을 의심했던 프랑스의 샤를 드골 대통령이 한반도를 바라보며 스스로 질문을 한다. ‘과연 미국이 서울을 보호하기 위해 워싱턴을 희생할 수 있을까?’ 그의 답은, ‘모르겠다(Je ne sais pas)’이다.

김진우 세르모국제연구소 소장·전 미국 국무부 선임보좌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