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대를 졸업하고 고시공부를 하다가 체력이 약해 포기한 아버지는 공부를 잘 하던 나를 통해 당신의 꿈을 이루려 했다. 그 기대가 내 부담의 시작이었다. 6남매 맏이라는 것도 늘 큰 짐이었다. 학기 초 가정환경조사서에 칸을 더 그어 동생들 이름을 쓸 때마다 어깨에 무거운 짐이 척척 올라앉는 것 같았다. 방 한 칸에 옹기종기 모여 있으니 공부도 제대로 할 수 없는데다 언니라고 따라붙는 동생들에 짜증만 났다. 자연히 동생들을 쌀쌀하고 무섭게 대했다.
집안의 경제도 내겐 큰 부담이었다. 아버지의 공장이 어려워져 전기세도 못 내는데 화재까지 나 결국 하루아침에 거리에 나앉게 되었다. 그런 어느 날, 여럿이 몰려와 집을 부수기 시작했고 부랴부랴 동네 빈 집으로 짐을 옮겼다. 올망졸망한 동생들과 새벽부터 한숨을 쉬며 담배를 피우는 아버지 모습은 나를 숨 막히게 했다. 앞일이 캄캄하니 차라리 죽고 싶다는 생각까지 들었다. ‘사는 것이 무엇인가? 인생은 어디서 와 어디로 가고 죽음 후의 세상은 어떨까? 하나님이 정말 계실까?’ 인생에 대해 심각하게 고민하다가 결국 하나님을 찾았다.
대학에 들어가며 목사님을 만났다. 하루 성경 30장, 기도 1시간, 일주일에 한 구절 말씀 암송에 방학 때는 하루 100장씩 성경을 읽으며 모든 시간을 드려 대학시절 내내 마음에 말씀이 가득하고 십자가 사랑에 감격하며 보냈다. 교사로 발령을 받은 후엔 점심시간마다 학생들을 만나고 교회 성가대, 고등부 교사, 청년회 회장으로 열심히 헌신했다. 그런데 시간이 가면서 스스로 한계를 느끼기 시작했다. 남편에게 짜증을 내고, 삶의 설계에서 하나님이 제외되고, 말씀에 대한 부담도 눈덩이처럼 커지며 깊은 수렁으로 빠져들었다. ‘기도가 적어 그런가? 성령 충만을 받지 못해서 그런가?’ 아무리 노력해도 부담감의 산을 넘을 수 없었다.
어느 날, 목사님께서 사도행전의 사도들은 날마다 예수님의 부활을 전파했다며 부활을 강조하셨다. 다윗의 예언처럼, 예수님이 부활하신 후에 제자들은 사람이신 예수를 하나님의 아들이고 주님으로 믿었음이 확실했다. 그때 주님이 ‘너는 나를 누구라고 생각하니?’하고 물으시는 것 같았다. 예수님은 죽은 후에 천국 가게 해 주시는 분 정도였지, 내 문제들과는 아무 상관없는 분이었다. 내 생각대로 살며 문제 앞에 염려하는 내 인생의 주인은 바로 나였다. ‘아! 원래 예수님이 나의 주인이셨구나! 부활하신 예수님을 나의 주인으로 믿지 않았구나!’ 내 신앙의 한계가 왜 왔는지 선명해지자 바로 엎드렸다. ‘주님. 제 인생의 주인은 저였어요. 예수님을 무시하며 살아왔던 죄를 회개합니다. 예수님은 나의 주, 나의 하나님이십니다.’
예수님을 주인으로 모시니 가정의 염려와 부담이 말끔히 사라지며 기쁨의 삶이 시작되었다. 어느 날 아버지께서 ‘하던 일을 정리하고 싶은데 빚이 많아 어떡하면 좋겠냐?’ 하셨다. 순간 부담감이 쓰나미처럼 밀려왔다. 전세를 옮기려고 아꼈던 통장, 늦게 직장 잡은 둘째의 피 같은 통장 등을 다 끌어모아도 어림없는 데다 넷째는 대학생, 다섯째는 고3으로 재수를 한다고 하고 막내는 고등학교에 입학하니 도대체 답이 나오지 않았다. 그때, ‘그래. 감당할 수 있는 시험만 허락하신다는 주님이 계신데 내가 왜 염려해?’ 예수님을 바라보며 벌떡 일어났다.
극심한 스트레스로 아버지는 뇌졸중으로 쓰러져 언어 장애가 오고, 두 번째 쓰러져 마비로 누웠다. 세 번째 쓰러졌을 때는 사람도 잘 알아보지 못한 채 십 년을 보냈다. 빚에, 병원비에, 생활비에, 아이가 셋이어도 예수님이 주인이시니 염려가 되지 않았다. 어머니는 하나님이 날마다 새 힘을 준다며 기쁨으로 10년 병수발을 했다. 나는 아버지의 빚, 둘째와 셋째는 넷째 학비와 생활비, 넷째는 다섯째 대학공부를 시키고, 다섯째도 그렇게 여섯째를 대학을 보냈다. 남편도 한마디 불평이나 원망 없이 마음을 함께 하며 도와주었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몇 년 후 어머니가 간단한 시술을 위해 병원에 갔다가 잠시 시술 도중 혈전이 생겨 갑자기 뇌경색으로 돌아가셨다. 모두들 의료사고라고 했고, 친척들도 멀쩡한 사람을 병원에 데려가 이 지경을 만들었다며 속상해 했지만 기도 중에 ‘참새 한 마리도 아버지께서 허락지 아니하시면 땅에 떨어지지 아니한다.’는 말씀을 받고, 둘째도 아버지로 오래 고생하여 때가 되면 고생 없이 데려가시겠다는 응답을 받아 모두들 평강을 되찾았다.
내 인생에 예수님이 없었다면 6남매의 맏이로 평생 염려와 부담으로 살았겠지만, 주인 되신 예수님만 붙잡으니 부담은 멀리 이사가고 그 자리에 사랑이 이사를 왔다. 명절때마다 큰언니의 집이 친정이라며 동생들의 대가족이 몰려오지만 ‘사랑하면 돼. 사랑이 전부야!’ 하시는 하나님의 마음을 알기에 기쁨으로 맞아 함께 예배드리며 하나님을 찬양한다.
모든 부담의 담을 허물어 주신 주님이 너무 좋다. 오늘도 주님이 원하시는 사명을 생각하며 기쁨으로 대문을 나선다.
최현청 성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