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카’쓰면 안 걸릴까?… 편법증여 혐의자 세무조사 받는다

입력 2022-02-04 04:02
박재형 국세청 자산과세국장이 3일 오전 세종시 정부세종청사에서 ‘금수저 엄카족’(부모 명의 신용카드를 사용하며 자신의 월급을 고스란히 모으는 이들) 등 편법증여 혐의자 227명에 대한 세무조사와 관련한 브리핑을 진행하고 있다. 연합뉴스

의사인 A씨의 자녀 2명은 번듯한 직업을 가진 ‘명품족’으로 보인다. 아버지가 운영하는 병원 소속으로 꼬박꼬박 월급을 받으면서 고가의 아파트에 거주한다. 다수의 명품 구매 등 월급 수준으로는 감당 못할 정도의 씀씀이도 눈에 띈다. 이런 생활이 가능했던 것은 A씨의 탈법적인 지원 덕분이었다.

알고 보니 병원 소속이라던 자녀 2명은 병원에서 일한 적이 없었다. ‘유령 직원’이면서 월급만 받아 간 것이었다. A씨는 딸 B씨가 소위 ‘영끌 대출’을 통해 마련한 십수억원대의 고가 아파트 대출금 및 이자를 대신 내주기도 했다. 아들 C씨가 수억원대 오피스텔 전세를 얻기 위해 금융권에서 받은 전세자금대출도 A씨가 대신 갚았다. 수시로 구매한 명품은 아버지 A씨 명의 카드로 긁었다. 세정 당국은 A씨 일가의 이런 행위가 편법 증여에 해당한다고 보고 세무조사에 착수키로 했다.

비슷한 사례는 적지 않았다. 일용직 근로자인 여성 D씨는 명품 구매를 자주 했으며 해외여행도 수시로 다녔다. D씨는 다수의 부동산을 구입하기도 했다. D씨의 이런 생활 뒤에는 자산가인 D씨 어머니가 있었다. D씨 어머니는 수십억원대인 본인 소유 부동산을 D씨에게 시세보다 상당히 낮은 가격에 팔았다. 그런데 이 과정에서 어머니가 받은 자금의 출처는 어머니 본인이었다. 자신의 돈을 딸에게 줬다가 다시 받으면서 대금을 낸 것처럼 꾸민 것이다. 명품 쇼핑과 해외여행 자금은 모두 어머니 명의 카드로 썼다. D씨는 이른바 ‘엄카(엄마 카드)족’으로 확인된 셈이다. 세정 당국은 이 사례 역시 증여세 탈루 등의 혐의로 세무조사 대상이라고 밝혔다.

D씨 가족을 포함해 편법 증여 혐의가 있는 부유층 자녀들이 무더기로 세무조사를 받게 됐다. 국세청은 증여세를 한 푼도 내지 않고 부모의 재산을 쓰고 있는 17~38세 연령대 자녀 227명에 대한 세무조사에 착수한다고 3일 밝혔다. 본인의 힘으로 돈을 모으고 대출금을 갚은 것처럼 위장한 사람들이 이번에 집중 조사 대상에 올랐다.

박재형 국세청 자산과세국장은 “연령, 소득, 재산 상태를 감안했을 때 고가 자산을 취득하거나 고액을 변제한 이들을 추렸다”고 설명했다.

이번 조사에서 두드러진 부분은 부모 신용카드 사용액도 증여로 평가했다는 점이다. 성년은 5000만원, 미성년은 2000만원인 공제액을 넘는 금액을 사용한 자녀들에게 증여세 탈루 혐의가 적용될 것으로 보인다. 박 국장은 “세금 없는 부의 대물림에 대해선 더욱 엄정히 대응할 것”이라고 말했다.

세종=신준섭 기자 sman321@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