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가 아파트 32채 법인에 팔고 대금 안 받은 ‘이상한 거래’

입력 2022-02-04 04:07

A법인 대표 B씨는 지난해 본인과 배우자, 형 등 가족이 소유한 공시가격 1억원 이하 저가 아파트 32채를 A법인에 팔았다. 그런데 아파트값을 받지도 않았고, 법인이 내야 할 취득세는 B씨가 부담했다. 이후 A법인은 32채 아파트를 불과 몇 달 새 전부 팔았다. 다주택자에 대한 양도소득세 등 중과세를 피하기 위한 명의신탁이 의심되는 사례다.

다주택 중과세의 사각지대인 공시가격 1억원 이하 저가 아파트에 대한 이 같은 편법 거래가 무더기로 적발됐다. 국토교통부는 2020년 7월부터 지난해 9월까지 전국에서 저가 아파트를 매수한 법인·외지인 거래 8만9785건을 전수 분석해 570건의 위법 의심 사례를 적발했다고 3일 밝혔다. 적발된 거래 중에는 소득이 없는 미성년자 명의로 부모가 저가 아파트 12채를 ‘갭 투자(전세를 준 상태에서 매매가와 전세보증금 차액만 내고 주택을 매수)’로 사들이거나, 금융기관에서 기업자금대출을 받은 돈으로 저가 아파트를 사는 사례도 있었다.

국토부는 다주택자와 법인의 세 부담을 대폭 강화한 2020년 7·10대책 발표 이후 중과 세제의 사각지대인 저가 아파트로 투기 수요가 번졌다는 지적이 제기되자 지난해 11월부터 대대적인 조사를 벌였다. 7·10대책에서 정부는 다주택자나 법인의 취득세율을 최고 12%까지 올렸지만, 공시가격 1억원 이하 저가 주택에 대해서는 실수요자 보호를 이유로 기본 취득세율만 적용했다. 비규제지역의 3억원 이하 주택 역시 양도소득세 중과 대상에서 빠졌다.

이런 빈틈을 투기 수요가 파고들면서 지방 부동산 시장이 들썩였다. 국토부 조사 결과 2020년 7월만 해도 조사 대상 거래 중 법인·외지인 거래는 29.6%에 그쳤지만, 지난해 8월에는 51.4%까지 늘었다. 법인·외지인이 평균 매수가격은 1억233만원이었다. 매수자금 가운데 자기 자금 비율은 29.8%에 그친 반면 59.9%가 임대보증금 승계로 대부분 갭 투자 형태로 여러 채를 사들이는 방식이었다. 국토부 관계자는 “법인·외지인이 저가 아파트를 갭 투자로 집중 매수해 집값을 높이고 단기간에 실수요자에게 매도해 시세차익을 얻은 것으로 추정된다”고 말했다.

지역별로는 수도권과 인접한 충남 천안·아산에서 법인·외지인 거래가 조사 대상 기간 약 8000건으로 가장 많았다. 다음으로는 부산과 경남 창원(약 7000건), 인천·경기 부천(약 6000건), 충북 청주(약 5000건) 등 순이었다.

세종=이종선 기자 remember@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