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만사] 작은 실천

입력 2022-02-04 04:02

김지윤(가명)씨는 조금 특이한 사람이다. 마음만 먹으면 편리하게 살 수 있는 시대에 수고스러운 삶을 자청하고 있다. 이를테면 음식 배달 서비스를 한 번도 이용해보지 않았다. 베테랑 운전자이지만 멀지 않은 거리는 걷거나 자전거를 탄다. 수입 과일은 먹지 않는다. 한 번 산 물건은 못쓰게 될 때까지 쓴다. 집에는 20년 동안 써 온 조리 도구, 15년째 입는 코트, 10년 된 구두와 같은 낡은 물건들이 많다.

지윤씨는 “정말 음식 배달을 한 번도 안 받아 봤느냐”는 질문을 종종 받는다. 코로나19 대유행이 3년째인데 배달 음식 없이 사는 게 흔치 않은 일이긴 할 테다. 음식 배달 서비스로 한 끼를 편안하게 먹는 것도 괜찮은 선택이지만 지윤씨는 플라스틱 쓰레기가 쌓이지 않는 게 더 마음 편한 일이라고 했다.

지윤씨가 아보카도 같은 수입 과일을 먹지 않는 이유는 ‘탄소발자국’ 때문이다. 탄소발자국은 제품을 만들어 유통하고 사용한 뒤 폐기하는 일련의 과정에서 발생하는 온실가스 총량을 말한다. 아보카도는 탄소발자국이 많이 발생하는 대표적 과일이다. 주 생산지는 멕시코 고산지대인데 우리나라 소비자 식탁에 오르기까지 수만㎞의 여정을 지나온다. 환경단체들은 아보카도 2개가 유통되는 과정에서 약 846.36g의 이산화탄소를 배출한다고 계산한다. 이는 재배지가 다양한 바나나 1㎏의 탄소발자국보다 배가량 많은 수준이다.

소고기를 가급적 먹지 않는 것도 탄소발자국 때문이다. 이산화탄소보다 강력한 온실가스인 메탄은 가축 사육 과정에서 대거 발생한다. 되새김질하는 가축인 소, 양 등의 트림과 방귀로 배출되는 메탄은 연간 약 1억1780만t에 이른다. 지구에서 발생하는 연간 메탄 배출량(6억t)의 약 20%에 해당하는 규모다. 지윤씨는 대신 닭고기나 돼지고기로 단백질을 보충한다.

새로운 물건을 잘 사지 않는 것도 그의 오래된 생활 방식이다. 흥미로운 신상품이 넘쳐나는 시대에 물건을 오래 쓰는 비법을 물었다. 그는 “낡은 것을 좋아하면 된다”고 했다. 낡은 물건을 좋아하면 조심히 다뤄서 쓰게 되고, 망가졌을 때는 고쳐 쓸 마음이 든다는 것이다.

지윤씨는 일상의 불편을 기꺼이 감수하는 까닭에 대해 “환경이 더 나빠지는데 나까지 보태고 싶지 않아서”라고 했다. 그는 자신의 노력이 지구의 미래를 바꿀 만큼 거창한 일이 아니라는 것을 안다. 그 노력이 쌓여 큰 변화를 끌어내리라 기대하는 것도 아니다. 그저 지구 환경에 나쁜 일을 하나라도 덜기 위한 선택일 뿐이라고 했다.

그는 가끔 “그렇게 유난스럽게 굴어봐야 달라지는 건 아무것도 없다”는 말을 듣기도 한다. 개인의 친환경 노력은 밑 빠진 독에 물 붓기처럼 여겨지기도 한다. 개개인이 아무리 애써봐야 국가나 기업 단위의 변화가 없으면 ‘티끌 모아 티끌’ 수준의 변화만 일어날 뿐이기 때문이다.

불행 중 다행이랄까. 일상에서 친환경을 실천하는 이들이 점점 많아지면서 변화의 조짐이 조금씩 보이고 있다. 평범한 실천가들이 소비자, 주주, 유권자로서 친환경을 요구하자 기업과 국가도 달라지고 있다. ESG(환경·사회·지배구조) 경영이 중요해진 것은 지윤씨처럼 작은 실천가들 덕에 가능해진 일이기도 하다.

지윤씨는 일단 친환경 노력이 가져다준 뜻밖의 효과를 누리고 있다. 플라스틱 쓰레기 분리배출에 시간과 노력을 덜 들인다. 걷기와 자전거 타기는 꽤 운동이 된다. 붉은 살코기를 덜 먹으면서 몸에 좋은 식단도 챙긴다. 지구적 변화까지는 몰라도 자신의 삶은 건강하게 바꿔나가고 있다. 지윤씨 사례를 보건대, 친환경 실천은 어떻게든 유익하다.

문수정 산업부 차장 thursda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