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절 우울’ 심한 어르신 돌봄사역 급하다

입력 2022-02-04 03:01
게티이미지뱅크

“잘 있으니 걱정하지 말라고. 시국이 이러니 고향 올 생각일랑 말고 아이들이랑 끼니 잘 챙겨 먹으라고 얘기하고는 5일 내내 먹먹한 가슴만 붙잡고 있었지요.” 전북 무주의 정성자(가명·84)씨에게 이번 설 연휴는 암흑 같았다. 노년을 살아가며 유일한 낙이었던 명절 가족 모임이 끊긴 지 3년째. 그는 3일 국민일보와의 통화에서 “3남매 출가시키고 명절마다 딸 아들 사위 며느리 손자 손녀까지 17명이 모여 푸짐하게 한상 챙겨 먹이는 게 행복이었는데 이제 죽기 전에 몇 번이나 자식들을 볼 수 있을지 걱정”이라며 한숨을 내쉬었다.

코로나 팬데믹 장기화로 가족과 함께하지 못하는 명절을 보내는 이들의 우울감이 높아지고 있다. 전문가들은 “지난해 추석 델타 변이에 이어 올해 설에는 오미크론 변이 확산세 때문에 고향 방문을 포기하는 사람들이 늘면서 농어촌 지역 노인들의 명절 후 우울감이 커졌을 것”이라고 진단했다.

신은정 한국생명존중희망재단 교육연구본부장은 “국가 재난 상황에 따라 거동이 불편한 장애인 지원, 보건소가 진행하는 어르신 방문 건강 검진 등 대면 돌봄서비스가 중단되면 심리적 위축이 커진다”고 설명했다. 이어 “사회활동이 현저하게 줄어든 지역 어르신의 경우 가족이 중요한 심리적 지지층이었을 텐데 수년째 고향 방문 자제 분위기가 이어지면서 우울감을 해소할 창구가 막힌 것”이라고 말했다.

보건복지부가 지난달 11일 발표한 ‘코로나19 국민 정신건강 실태조사’는 이를 뒷받침한다. 조사에서는 응답자 10명 중 6명 이상(62.3%)이 심리적 지지 제공자로 ‘가족’을 꼽았다. ‘친구 및 직장동료’가 20.6%로 뒤를 이었지만 정신건강 전문가(3.2%) 이웃(1.5%)에 비해 ‘없다’(11.3%)는 응답이 훨씬 높게 나오면서 우려가 제기됐다.


조사 결과를 연령별로 살펴보면 고령층에 대한 심리적 지지가 시급했다. ‘가족이 나의 심리적 지지 제공자’라는 응답이 19~29세에서는 45.8%에 그쳤지만, 연령대가 높아질수록 가족에 대한 심리적 의존도가 높아지고 60세 이상의 경우 68.7%에 달했다.

무주에서 31년째 사역 중인 A목사는 “연휴 동안 떡국 떡을 준비해 동네 어르신 댁 현관 문고리에 걸어두고 전화로 안부를 여쭸는데 울먹이며 감사해하는 목소리를 듣고 ‘외지에 나간 자식 역할 해드리는 게 내게 주어진 사명이구나’ 싶었다”고 전했다. 조성돈 기독교자살예방센터 라이프호프 대표는 “코로나 시국이 장기화하면서 기관들의 대면 돌봄서비스가 크게 위축됐지만 농어촌 지역 목회자들의 소명 의식은 여전하다”며 “지자체에서 ‘마을활동가 위촉’ 등 목회자들이 돌봄사역 지원에 나선다면 효과적인 생명 돌봄 안전망을 구축할 수 있을 것”이라고 제안했다.

최기영 기자 ky710@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