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통과 전위를 오가며 새로운 음악을 추구해요”

입력 2022-02-04 04:07
해금 연주자 천지윤이 지난달 27일 서울가든호텔에서 국민일보와 인터뷰하다 포즈를 취했다. 천지윤은 올해 ‘크레디아 클래식 클럽’의 유일한 전통음악 연주자로서 오는 9일 무대에 선다. 권현구 기자

클래식계의 대표적인 공연기획사 크레디아가 지난해 시작한 ‘크레디아 클래식 클럽’은 클래식 초심자를 대상으로 한 시리즈 음악회다. 매월 둘째 혹은 셋째 수요일 오전 11시 반에 열린다. 오는 9일 롯데콘서트홀에서 열리는 2월 공연의 주인공은 해금 연주자 천지윤(40). 이 클럽에서 유일한 전통음악 연주자인 그는 지난달 발매한 음반 ‘천지윤의 해금: 잊었던 마음 그리고 편지’를 중심으로 공연할 계획이다.

이 음반이 한국 현대음악의 거장 김순남과 윤이상의 가곡을 전통 선율과 재즈의 만남으로 재해석한 데서 알 수 있듯이 천지윤은 전통음악과 현대음악의 융합을 즐긴다. 천지윤을 지난달 27일 서울 마포구 서울가든호텔에서 만나 27년 음악 여정을 들어봤다.

“해금은 매력적인 악기예요. 크기는 작지만 누가 어떻게 연주하느냐에 따라 다채로운 소리를 내거든요. 많은 분에게 해금을 알리고 싶어요.”

한국예술종합학교(한예종) 출신인 그는 다양한 예술적 실험을 하는 선배와 동기들의 모습에 큰 자극을 받았다. 한예종 연극원의 김광림 이상우 교수가 이끌던 극단 우투리에 2003년 합류해 2011년까지 함께 작업했다. 2002년 창단한 극단 우투리는 한국 전통연희를 현대적으로 재구성한 작품들을 선보였는데 그는 악사로 활동하는 동시에 작곡과 노래, 움직임까지 담당했다.

“극단 우투리와 함께 국내는 물론 유럽의 여러 연극제에 참여한 게 즐거웠습니다. 연극인들과 작업하는 동안 저를 둘러싼 껍질이 한꺼풀 벗겨졌습니다. 입시 위주의 연습과 전통 분야의 엄격한 격식만 따랐던 제게 연극인들의 격식 없는 모습이나 현장의 뜨거운 에너지는 충격 그 자체였어요.”

이어 뮤지션 장영규가 이끄는 비빙에 합류했다. 어어부 프로젝트의 베이시스트인 장영규는 대중음악, 국악, 영화, 드라마, 연극, 무용 등을 넘나들며 작곡가, 음악감독, 프로듀서로 활약한다. 최근 ‘범 내려온다’로 조선팝 열풍을 일으킨 밴드 이날치의 프로듀서 겸 리더인 장영규가 전통음악을 동시대적 예술로 발전시키기 위해 처음 창단한 단체가 바로 비빙이다. 2008년 창단된 비빙은 불교음악, 가면극, 궁중음악을 소재로 새로운 사운드를 선보이는 실험적 작업으로 높은 평가를 받았다.

천지윤이 2018년 영산회상 중심의 음반 ‘흐르고 흐르다’를 공연할 때 모습. 천지윤 제공

“장영규 감독님을 만나 비빙에 참여한 게 제 음악인생의 전환점이 됐어요. 엄숙하고 정통적인 국악만이 아니라 실험적인 창작음악에도 눈을 뜨게 됐거든요.”

한예종 학부와 전문사를 거쳐 이화여대에서 박사학위를 받고 강단에 서는 천지윤은 해금 연주자로서 전통과 전위의 양극단을 부지런히 오간다. 각각 경기무악, 현대음악 작곡가 백병동, 시를 토대로 만든 ‘관계항’ 시리즈 음반은 그의 음악적 고민을 잘 보여준다.

“‘관계항’이란 제목은 이우환 선생님의 설치 작품에서 영감을 받아 가져온 거예요. 이 선생님의 ‘관계항’은 돌과 철판이 마주 보는 작품인데, 돌이 자연적이고 동양적인 것이라면 철판은 서구적이고 산업화된 것을 상징하죠. 이 선생님의 작품 의도가 전통을 근간으로 새로운 음악을 추구하는 제 생각과 잘 들어맞더라고요.”

대중과 소통에도 적극적인 그는 인스타그램, 블로그, 유튜브 등 SNS를 통해 자신의 음악세계를 꾸준히 알려 왔다. 2019년 1월부터 4년째 자신의 집 서재에 예술가와 작가 등을 초대해 음악과 책에 대해 이야기하는 ‘서재 콘서트’가 대표 콘텐츠다. 독서애호가인 그는 서재 콘서트를 시작한 지 얼마 안 돼 최인아책방에서 ‘엄마의 책읽기’ 독서 모임을 이끄는 한편 ‘우리음악콘서트’도 기획하고 진행했다.

“국악이 살아남으려면 고정 팬층이 있어야죠. SNS를 통해 무겁지 않게 대중과 소통하고 싶었습니다. 한때 강의와 육아에 전념하느라 세상에서 단절된 듯한 외로움을 경험했는데 이를 떨치고 싶었던 것도 하나의 이유입니다. SNS를 활용해 연주 영상을 올리다가 점차 지인을 초청해 함께 연주하거나 책에 대해 이야기하는 서재 콘서트를 시작했죠. 최인아 대표님의 권유로 독서 모임과 콘서트를 진행한 건 저를 더 성장하게 만들었습니다.”

그가 꼬박 1년간 아침마다 규칙적인 글쓰기를 한 끝에 탈고한 에세이 ‘단정한 자유는 이번 공연 전날 발간된다. 그는 “나 자신을 돌아보며 써 내려간 글들을 담았다. 에세이를 쓰는 동안 그동안의 상처가 치유되는 느낌을 받았다”고 말했다.

장지영 선임기자 jyja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