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 스포츠 대제전 2022 베이징 동계올림픽이 4일 개막했다. 대한민국에선 동계올림픽 7개 종목 중 아이스하키를 제외한 6개 종목 선수 64명이 나라를 대표해 베이징에 건너와 훈련에 임하고 있다. 대회는 폐막일인 20일 피겨 스케이팅 입상자들이 펼치는 갈라쇼를 마지막으로 17일간의 일정을 마감한다.
코로나19 탓에 ‘폐쇄 올림픽’으로 치러지지만 올림픽은 여전히 꿈과 감동의 무대다. 참가한 선수들은 ‘올림피언’이라는 영광스러운 호칭을 평생 안는다. 시상대에 오르는지와 상관없이 이 자리에 함께하는 건 운동선수로서 누리는 최고의 영예다. 다양한 국적과 인종의 선수가 한자리에 모여 실력을 겨루고 저마다의 역경을 극복하는 걸 지켜보는 일은 그 자체로 감동이다.
흔들리는 쇼트트랙 최강국의 명예
한국은 동계올림픽에서 자타공인 쇼트트랙 최강자다. 1992년 알베르빌올림픽에서 김기훈이 한국 최초의 금메달을 따낸 걸 시작으로 평창까지 이 종목에 걸린 총 56개의 금메달 중 24개를 가져왔다. 평창대회에서도 한국 선수단이 따낸 금메달 5개 중 3개가 쇼트트랙에서 나왔다. 당시 쇼트트랙에 걸린 전체 24개 금·은·동메달 중 6개가 한국의 몫이었다. ‘금밭’이라는 표현이 아깝지 않은 성과다.
그러나 평창 이후 대표팀은 부침을 겪었다. 가깝게는 대표 선발전 1위로 올림픽 출전 자격을 얻었던 심석희가 동료 비하 사실이 유출돼 징계를 받고 대표팀 옷을 벗었다. 평창올림픽 1500m 금메달리스트 임효준(중국명 리샤오쥔)은 성추행 및 성희롱 논란으로 징계 끝에 지난해 중국으로 귀화했다. 대표팀은 지난해 10월부터 열린 월드컵 중 마지막 4차 대회에서 반전한 걸 제외하면 전체적으로 부진했다.
신경 쓰이는 상대도 있다. 평창올림픽 쇼트트랙 대표팀을 이끌었던 김선태 감독은 이번 올림픽에서 중국 대표팀을 지휘하는 적장으로 돌아왔다. 이미 1차 월드컵을 베이징에서 치러본 중국 대표팀이 홈 이점을 안고 야심을 드러내는 데다 김 감독이 워낙 대표팀 면면을 잘 아는 인물이라 경계가 필요하다. 그는 지난 2일 중국 서우두(首都) 경기장에서 진행된 한국 대표팀 훈련도 지켜봤다.
도전 ‘첫 金’ 혼성 계주·‘3연패’ 女 계주
쇼트트랙에는 혼성 계주가 처음 도입된다. 한국시간으로 5일 오후 8시에 2000m를 각 대표팀에서 남녀 각각 2명이 돈다. 여자 선수 조합과 남자 조합이 순서대로 각각 2바퀴 돈 뒤 다시 한 차례 반복한다. 거리가 짧기에 다른 계주에 비해 순식간에 승부가 난다. 여기서 우승하면 한국 선수단의 대회 첫 금메달이자 올림픽 혼성 계주 역사상 첫 금을 따내는 역사를 쓴다.
3000m 여자 계주는 이번 대회 우승 시 올림픽 3연패다. 9일 오후 8시에 준결승을, 13일 같은 시간에 결승을 치른다. 쇼트트랙 대표팀의 기대가 가장 큰 부문이다. 여자 500m가 7일 오후 8시30분, 1000m는 11일 오후 8시 치러진다. 1500m는 16일 오후 8시 30분이다.
국제올림픽위원회(IOC)는 대회 홈페이지에서 가장 주목할 한국 여자 계주팀 선수로 최민정을 꼽았다. 최민정은 500m 올림픽기록 보유자다. 그와 개인 레이스에서 경쟁할 인물로는 역대 최고 선수로 꼽히는 이탈리아의 아리아나 폰타나와 네덜란드 신예 수잔 슐팅이 꼽힌다. 평창올림픽에서 쇼트트랙 대표팀 막내였던 이유빈은 AP통신이 1500m 금메달 후보로 꼽을 정도로 성장했다.
남자 쪽에서는 황대헌이 최고의 기대주다. 남자 1000m 부문 세계기록 보유자인 그는 3개월 전 베이징에서 먼저 열린 1, 3차 월드컵에서 모두 극적인 인코스 역전을 보여주며 1000m 우승을 거머쥐었다. 12년 전 밴쿠버올림픽에 출전했던 맏형 곽윤기는 당시 붉게 염색했던 머리를 이번 대회에서 다시 ‘핫핑크’로 물들였다. 선수생활 마지막 올림픽에서 불꽃을 태우겠다는 각오다.
베이징에 울릴 “영미!” 팀킴의 도전
평창올림픽 최고 스타였던 ‘팀킴’은 4년 사이 부침이 있었다. 평창올림픽 약 9개월 뒤인 2018년 11월 팀킴 선수들은 김경두 전 대한컬링경기연맹 부회장과 김민정·장반석 감독 부부가 사적인 목적을 위해 팀에 개입했다고 폭로했다. 정부 감사 결과 폭로는 대부분 사실로 드러났지만 이 기간 감사 탓에 훈련에 전념하지 못하며 국가대표 자리를 내줬다. 주장 김은정도 출산으로 자리를 잠시 비웠다.
경북체육회 소속이던 팀킴은 이후 재계약이 이뤄지지 않으며 무적(無籍) 상태로 전락했다. 성적을 근거로 요구한 연봉 인상 요구가 받아들여지지 않아서였다. 지난해 3월에야 강릉시청이 이들과 계약했다. 이후 3년 만에 국가대표로 출전한 2021 세계선수권대회에서 7위로 올림픽 직행티켓을 놓쳤지만 지난해 12월 올림픽 자격대회(OQE)에서 라트비아에 승리해 베이징행을 확정했다.
팀킴은 10일 캐나다전을 시작으로 여정에 돌입한다. 컬링은 17일까지 매일 라운로빈 세션 경기를 거쳐 준결승 진출 4개 팀을 가리고, 18일 준결승과 19일 동메달결정전을 지나 20일 결승이 열린다. ‘은반 위의 체스’로 불릴 정도로 치열한 두뇌싸움이 볼거리다. 스킵인 제니퍼 존스가 버틴 2014년 소치올림픽 우승팀 캐나다, 안나 하셀보리가 있는 평창올림픽 우승팀 스웨덴 등이 대표적 강호다.
‘김연아 키즈’의 올림픽
피겨여왕 김연아가 없는 피겨 스케이팅에선 그를 보며 자란 어린 선수들이 은반 위에 오른다. 여자 싱글 부문의 유영과 김예림이다. 두 선수 모두 김연아를 보며 피겨 선수의 꿈을 키웠다고 이야기해 왔다. 김연아도 2일 IOC 올림픽채널과 인터뷰에서 “TV로 보더라도 남의 일처럼 느껴지지 않는다. 응원하는 마음과 ‘내가 저 선수’라는 느낌으로 시청하게 될 것 같다”고 말했다.
여자 피겨는 15일과 17일 오후 7시 각각 쇼트프로그램과 프리스케이팅 경기를 연다. 국제대회에서 괄목할 성적을 낸 유영은 한국 선수로서 처음 성공시킨 트리플악셀이 주특기다. 김예림은 늘씬한 키를 활용한 연기가 일품이다. 국제대회에선 성적이 좋지 않았지만 꿈꾸던 올림픽 무대에서 만회를 노린다.
한국 남자 피겨의 개척자격인 ‘피겨왕자’ 차준환, 함께 출전하는 이시형의 선전도 기대할 만하다. 한국 남자 피겨 역사상 올림픽에 2명이 출전하는 건 처음이다. 차준환은 지난달 23일 국제빙상경기연맹(ISU) 4대륙 선수권대회에서 한국 남자 선수 최초로 우승해 기세가 좋다. 김연아를 지도했던 브라이언 오서 코치도 그와 함께한다. 두 선수는 8일 쇼트프로그램, 10일 프리스케이팅에 출전한다.
‘배추보이’ 이상호·‘빙속 괴물’ 김민석
한국 스노보드 에이스는 ‘배추보이’ 이상호다. 평창올림픽에서 평행대회전 부문 은메달을 따내며 한국 설상 종목 최초 올림픽 메달을 따내 스타가 됐다. 아시아에서도 이 부문 첫 올림픽 메달이었다. 그는 최근 월드컵 대회에서 금메달 1개, 은메달 2개, 동메달 1개를 거머쥐며 평행회전 세계 1위에 올랐다. 올림픽 뒤 어깨 수술을 거쳐 4㎝ 긴 보드로 갈아탄 그는 이번 대회 유력한 우승후보다. 8일 오전 예선을 거쳐 오후 3시 30분 결승 무대를 밟는다.
스피드 스케이팅에선 김민석이 메달을 노린다. 1500m에선 메달 가능성이 높고 1000m도 가능성이 있다. 8일 오후 7시30분 1500m를, 18일 5시30분 1000m 경기를 한다. 네 번째 올림픽에 나서는 노장 이승훈은 13일 팀 추월 준준결승을 시작으로 15일 결승, 19일 매스스타트에서 올림피언으로서 마지막 무대를 장식할 전망이다.
대한민국 선수단은 3일까지 대부분의 선수가 선수촌 입성을 마친 상태다. 6일 여자 컬링 대표팀, 11일 여자 피겨, 13일 봅슬레이 선수단이 베이징 공항을 통해 입국을 완료한다.
베이징=조효석 기자 promen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