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서를 쓴 나오미는 한손엔 약을, 다른 손엔 스마트폰을 쥔 채 침대에 누웠다. 그리고 마지막일지도 모를 웹서핑을 하다가 무심코 한 광고 영상을 보게 됐다. 나오미가 클릭한 건 ‘그라운드와이어(Groundwire)’라는 미국의 한 미디어 선교 단체가 제작한 광고였다. ‘MZ세대’(1980~2000년대 출생 세대)를 타깃으로 한 이 단체는 지난해에만 나오미 같은 20대를 비롯해 10~30대 청년 19만2000명이 ‘예수님을 믿겠다’는 고백을 하게 만들었다. 전년도(11만6000명)보다 60%나 늘어난 수치다. 이 단체는 젊은이들에게 핫한 틱톡과 유튜브, 인스타그램, 페이스북 등에 주로 광고를 게재한다.
30초 분량의 광고 영상 내용은 이런 식이다. 한 젊은 여성이 조깅을 하다가 갈림길을 만난다. 어느 쪽으로 가야 할지 두리번거리며 망설이는 사이, 이런 음성이 흘러나온다. “어떤 길을 택해야 할지 모른다면… 예수님이 당신을 도와줄 겁니다.” 그리고 지저스케어스닷컴(jesuscares.com)이라는 인터넷 사이트에 안내되는데, 여기에 들른 방문객은 즉석 채팅을 하며 갖가지 고민을 털어놓을 수 있다. 가족 친구 취업 결혼 자살 같은 간단한 주제어와 본인 이름만 입력하면 된다. 365일 24시간 대화의 문이 열려 있다. 나오미는 여기서 카운셀러와 대화를 나눈 뒤 유서를 찢어버렸다. 다시 살아가기로 용기를 낸 것이다.
나오미 같은 이들의 채팅 상대가 돼주는 카운셀러는 모두 자원봉사자들이다. 교회 성도나 주일학교 교사, 장로, 선교사, 전직 목회자 등 다양하다. 물론 이들 모두가 상담 전문가는 아니다. 이들 역할 가운데 상당 부분은 젊은 친구들이 가족에게조차 꺼내 놓지 못하는 이야기들을 채팅창에 쏟아놓을 때 맞장구쳐주는 것이다. 그러고 나서 마지막에 문제를 다룰 수 있는 열쇠는 복음 안에 있다고 정중하게 안내한다.
숀 던 그라운드와이어 대표는 최근 이메일 인터뷰에서 이 사역을 위해 두 가지에 집중했다고 밝혔다. 첫째 젊은이들이 가장 가깝게 지내는 대상(스마트폰)에 주목했다. 또 하나는 화나고 상처 난 젊은이들의 마음을 함께 나누는 일이었다. 한쪽에서는 스마트폰 중독을 걱정할 때 이 단체는 24시간 소통의 도구로 스마트폰을 십분 활용하고 있었다.
그라운드와이어 이야기를 접하면서 떠오른 건 불안한 한국의 청년들이다. 한국의 20·30대 사망 원인 가운데 압도적 1위는 자살이다. 지난해 40세 미만의 청년 고독사(무연고 사망)는 102명으로 5년 전보다 62% 급증했다. 자살이든 고독사든 그 원인은 먹고사는 문제보다 스트레스, 우울·불안감 등 삶의 질적 문제에 따른 것으로 무게를 두는 분석이 많다. 달리 말해 화나고 외롭고 막막한 가운데 절망감을 이기지 못한 채 세상과 이별한 건 아닌가 싶다. 1인 가구가 늘고 코로나19 이후 이어지는 일상생활의 위축과도 무관치 않을 것이다.
그렇다고 정부나 지자체의 정책 탓으로만 돌릴 수 없다. 그들이 사람 마음속까지 챙길 수는 없기 때문이다. 정부나 사회복지단체가 메울 수 없는 마음의 빈틈은 누가 채울 수 있을까. 동네마다 구석구석 촘촘하게 들어선 교회가 먼저 떠오르지만 과연 지금의 교회에 마음 문을 열어줄 청년들이 얼마나 될까.
선교학자인 마크 프로스트는 최근 온라인 기독 잡지 ‘처치리더스’에 기고한 글에서 ‘교회는 충분히 친절하다. 하지만 당신들의 친구는 돼주지 않는다’는 말을 인용하면서 교회 공동체의 병폐를 꼬집었다. 교회마다 비전을 선포하고, 콘퍼런스와 세미나로 더 건강한 교회 만들기에 골몰한다. 하지만 교회 밖에서 볼 땐 그저 ‘좋아하는 사람들끼리 모인 집합체’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라는 것이다. 교회에 청년들이 없다고 아우성이다. 코로나 때문에 고사 직전이라고도 한다. 모두 교회 울타리 안에서 오가는 얘기들이다. 고독한 청년 속으로, 세상 속으로 교회가 걸어 나와야 할 때다.
박재찬 종교부 차장 jeep@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