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택한 수업 몰입도 높아 무엇을 배울지 항상 기대”

입력 2022-02-03 04:04
고교학점제(이하 학점제)는 올해 중학교에 진학하는 학생들이 고등학생이 되는 2025년 3월 전면 도입될 예정이다.

학점제에서는 학생들이 자신의 적성과 진로에 따라 수업을 골라 듣고 학점을 누적해 졸업하게 된다. 정부와 교육청, 학교가 미리 정해놓은 학습 경로를 따르는 게 아니라 학생 스스로 미래를 설계하면 이를 교육 당국과 학교가 뒷받침해주는 개념이다. 교육부는 “학교가 학생에게 맞추는 시스템”이라고 설명한다.

고교 교육의 틀을 바꾸는 대형 프로젝트 시행을 앞두고 정부는 학점제 요소를 교육과정에 가미한 연구·선도학교를 단계적으로 확대하는 중이다. 학교 현장의 충격을 줄이고 전면 도입에 앞서 보완할 부분을 찾겠다는 취지다. 학점제 연구·선도학교는 올해 일반계 고교의 84%에서 운영되며 전면 도입 한 해 전인 2024년에는 모든 고교로 확대할 예정이다. 학점제 연구학교 학생들은 어떤 경험을 하고 있을까. 학점제 연구학교에서 공부하고 올해 대학에 진학하는 학생들을 지난달 29일 인터뷰했다.


한국교원대 부설고 김가은

-장래희망이 방송국 PD인데.

“이제 스무살, 아직 하고 싶은 게 많다. 꼭 방송국 PD로 정한 건 아니고 영상콘텐츠 만드는 일을 하고 싶다. ‘응답하라’ 혹은 ‘슬기로운’ 시리즈 같은 세상 살아가는 얘기를 좋아하고 사회적 약자를 도울 수 있는 프로그램을 만들고 싶다. 원래 꿈은 약자를 돕는 경찰이 되는 것이었는데 고1 때 바꿨다. 경찰대를 가고 싶었지만 학교 교육과정이 경찰대 입시보다 수시에 맞춰져 있었다. 학교생활을 즐기면서 약자를 돕는 삶을 준비할 수 있는 일을 고민했고 ‘영상 쪽으로 가면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되게 많겠구나’라고 생각했다.”

-학점제 연구학교는 도움이 됐는가.

“90점을 주고 싶다. 물론 원하는 대학에 들어간 입장이어서 그럴 수 있고 학생마다 다를 수 있겠지만, 도움이 되는 수업이 많았다. 고려대에 합격하는 데도 다양한 학교 교육과정 덕을 많이 봤다고 생각한다. 특히 소인수 과목으로 개설된 수업들이 좋았다(학점제 연구·선도학교에서는 소수 학생들의 수업 선택권 보장을 위해 다양한 방식의 소인수 수업을 운영 중이다). 1학년 때는 영화의 이해를 듣고 2학년 때는 영화의 이해 수업을 들었던 학생들을 중심으로 영화의 기술이란 수업이 개설됐다. 1·2학년 때 영화 관련 수업에 참여한 학생들은 3학년 때는 영화 감상과 비평이란 수업을 들었다. 영상 콘텐츠를 만들고 싶은 저에게는 기다려지는 수업이었다.”

-자신이 선택한 수업과 일반 수업을 비교한다면.

“우리 학교(한국교원대 부설고)는 비평준화 일반고다. 선발 집단이기 때문에 다들 열심히 한다. 따라서 다른 수업의 질도 나쁘다고 보기 어렵다. 하지만 아무래도 내게 꼭 필요한 수업이라고 생각하고 참여하기 때문에 몰입도가 좀 더 높다고 생각한다. 수업을 앞두고 어떤 내용을 배우게 될지 기대감이 있었다. 무엇보다 함께 수업을 듣는 친구들이 다르다는 점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비슷한 꿈을 가진 친구들이 모여서 수업을 하기 때문에 서로 가르쳐주고 배우고 그런 과정에서 뭔가 즐거운 상승효과가 나타나는 것 같았다. 정시를 준비하는 친구들도 (자신이 선택한 과목이라) 어쨌든 수업이 재미있기 때문에 어떻게든 조금이라도 한마디씩 참여하려는 분위기가 있었다.”

-아쉬운 점은.

“현실적으로 내가 선택한 수업을 학기당 하나씩 들을 수밖에 없었다. 두 개까지 열려 있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아무래도 수능 준비하고 내신 성적도 신경 써야 한다는 현실을 고려할 수밖에 없었다. 즐겁게 배우는 것과 어떻게든 성적을 잘 내야 되는 것 사이에서 주어진 시간을 딱 구분해서 분배를 해야 했기 때문에 많은 과목을 선택할 수 없었다. 문학과 매체라는 수업이 있었는데 매체를 다루는 직업을 희망하다 보니 눈에 띄는 수업이었다. 하지만 영화 감상과 비평 중 선택해야 하는 상황이었고 결국 한쪽을 포기했다. 이런 수업을 풍부하게 들을 수 있었다면 학교가 한층 즐거웠을 것이다. 하나 더 꼽자면 고1 초반에 ‘우리 학교에 어떤 수업이 개설돼 있고 어떤 수업이 가능한지’에 대해 충분한 사전 정보를 제공했으면 한다. 지금은 학교에서 교육과정 박람회와 수업 홍보영상을 만들어 배포해 정보가 많아졌다. 돌이켜보면 제가 1학년 때 이런 정보들이 있었으면 한층 알찬 학교생활을 했을 듯하다.”

이도경 교육전문기자 yido@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