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트업의 성지’라 할 수 있는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스타트업 창업자와 컴퓨터 엔지니어, 밴처캐피털리스트들이 떠나고 있다고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가 전했다. 빈곤 문제 해결에 실패하면서 양극화가 더 심해진 데다 부동산 가격 상승 등으로 진입 장벽이 높아진 탓 등으로 분석된다.
FT는 코로나19 팬데믹 기간 동안 샌프란시스코에서 기존 ‘부의 불평등’이 악화했다며 빈곤을 ‘진정한 전염병’이라고 지목했다.
샌프란시스코 주재 한나 머피 FT 특파원은 “이 도시의 유명하고 다채로운 타운하우스 구획을 따라 노숙인 야영지가 늘어서 있다”며 양극화 현실을 묘사했다.
머큐리뉴스는 “코로나19 전염병이 베이 에어리어(샌프란시스코 외곽) 지역 여러 가족의 재정을 곤경에 빠뜨리고 경제적 안정을 황폐화시켰다”며 “동시에 다른 사람들을 부유하게 하고 생활 수준을 높일 수 있도록 했다”고 전했다.
샌프란시스코에서는 불평등 심화와 함께 약물 과다복용 및 범죄 사례가 늘어난 것으로 전해졌다. FT는 “2020년에는 약물 과다복용 사례가 코로나19 사망자 수를 2배 이상 초과했다”며 “조직적이고 기회주의적인 범죄, 특히 재산과 자동차 절도가 만연하다”고 설명했다.
지난달 워싱턴이그재미너는 절도범이 물건을 훔치는 과정에서 자동차를 망가뜨리지 않도록 아예 차문과 트렁크 잠금 장치를 풀어두거나 활짝 열어두는 주민 사례를 보도하기도 했다. 샌프란시스코에 취재차 방문한 머피 특파원의 동료 일행은 총기 강도 사건을 겪은 뒤 경비원을 고용했다.
전문가들은 불평등 심화가 샌프란시스코 지역 경제에 ‘재앙적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지적한다. 앞서 머큐리뉴스는 “잠재적으로 이 지역에서 음식을 요리하고 트럭을 운전하고 우리 아이들을 돌보는 데 필요한 노동자들을 몰아낼 수 있다”고 경고한 바 있다.
불평등 심화는 거주 환경을 불안정하게 만들어 저소득층뿐만 아니라 고소득층까지 도시를 떠나도록 하는 배경으로 작용하는 분위기다.
FT는 “절박함과 불법에 대처할 수 없는 일부 특권층 주민에게는 탈출이 답이었을 것”이라며 실리콘밸리 기업들이 샌프란시스코 일대에서 고용한 직원이 최근 몇 년간 급감했다고 덧붙였다.
미국 최대 암호화폐거래소 코인베이스가 지난해 4분기 채용한 직원의 89%가 샌프란시스코 외 지역 출신이었다. 2019년 1분기 이 비율이 30%였던 것과 비교하면 3배로 늘어난 것이다.
이런 변화는 기술 분야 글로벌화와 함께 ‘지원자 풀(후보군)’이 넓어진 탓도 있지만 스타트업 창업자와 기술자, 벤처 자본가들이 도시를 떠난 결과로도 해석된다.
미국 빅데이터기업 공동설립자이자 벤처캐피털리스트인 조 론스데일은 2020년 11월 샌프란시스코를 떠나면서 “2000년이나 2010년에는 샌프란시스코에 건물을 짓는 게 합리적이었지만 더 이상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그는 월스트리트저널(WSJ) 기고문에서 마이애미, 내슈빌, 라스베이거스 등 다른 도시로 떠난 동료 사업가들 사례를 언급하며 “좋은 주정부와 합리적 생활비가 있는 곳에 미국의 미래가 세워질 것”이라고 말했다.
샌프란시스코의 이점이 사라지는 사이 다른 도시들은 적극적으로 인재를 유인하고 있다. FT는 “뉴욕 맨해튼의 실리콘앨리(IT대기업과 스타트업 밀집지역)가 풍선처럼 부풀어 오르는 동안 많은 사람이 (텍사스) 오스틴에 상륙했다”며 “기술 친화적인 마이애미 시장은 인재를 구하려고 애쓰고 있다”고 설명했다.
SNS기업 링크드인은 이용자 분석 결과 “코로나19 바이러스가 플로리다 잭슨빌과 탬파에 새로운 기술 허브를 만들었다”며 “지난 12개월 동안 기술기업 근로자 순유입 기준으로 테네시주 내슈빌, 노스캐롤라이나주 샬럿, 콜로라도주 덴버도 최고의 목적지 중 하나”라고 전했다. 가장 많은 인력이 빠져나간 도시는 샌프란시스코였다.
팬데믹 대응을 위한 고강도 봉쇄 정책으로 원격근무 체계가 갖춰진 점도 ‘탈샌프란시스코’를 자극하고 있다. 공유숙박업체 에어비앤비 브라이언 체스키 대표는 지난 19일(현지시간) 샌프란시스코를 떠나 2주마다 다른 도시에서 머물겠다는 계획을 밝히면서 “원격근무는 많은 사람을 매일 사무실에 있어야 할 필요성에서 해방했다”고 덧붙였다.
FT는 “1990년대와 2000년대 초 전성기에는 기술 종사자들이 샌프란시스코를 소유한 것처럼 보였지만 2012년 이후 급상승한 주택 비용과 활기 없는 밤문화, 매년 발생하는 산불 연기는 안전마저 사치품이 되는 상황에서 간과하기 어렵다”고 꼬집었다.
일각에서는 2020년 취임한 체사 부딘 지방검사가 범죄에 대해 지나치게 관대한 정책을 편 탓이라고 주장하기도 한다. 그는 오는 6월 신임 여부를 가리는 소환투표를 앞두고 있다.
캘리포니아대 샌프란시스코 취약인구센터 책임자 마곳 쿠셀 교수는 “저소득층을 위한 (저렴한) 주택이 사라졌다”며 주택문제 해결을 최우선 과제로 꼽았다. 그는 “우리는 매일 노숙인이 쏟아져 나오는 걸 본다”며 “이는 엄청난 정책 위기”라고 지적했다.
강창욱 기자 kcw@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