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위기 앞에는 늘 호황이 있었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직전인 2007년에 한국 증시는 사상 처음 2000선을 돌파했다. 그해 코스피지수는 51번이나 역대 최고치를 경신했다. 우리만 좋은 게 아니었다. 2007년에만 베트남 중국 등 신흥 아시아 국가의 부동산 가격은 2~3배 급등했다. 돈 버는 일이라면 따를 사람이 없어 ‘중국의 유대인’이라 불렸던 원저우 상인 투기 세력이 출현한 것도 이때였다.
1997년 외환위기 전에도 우리 경제는 탄탄대로였다. 1980년대 중반 이후 저금리, 저유가, 원화 약세 등 3저 효과로 수출과 경상수지는 매해 최고치를 경신했다. 1995년 반도체 호황은 ‘단군 이래 최대 호황’이라는 수식어가 붙기도 했다.
그리고 다들 아다시피 호황의 끝은 위기였다. 산이 높으면 골도 깊은 법이라고 두 번의 경제위기를 겪으며 우리 국민은 호된 시련을 경험해야 했다. 실업률은 급등했고 부동산 가격은 폭락했다. 중산층이 얇아지면서 소득분배 구조만 상위 10%가 90%의 자산을 보유한 선진국형이 돼버렸다.
위기는 전조가 호황이다 보니 예측하고 대비하기 어렵다. 호황이 언젠간 끝난다는 걸 알면서도 여러 이유를 들며 ‘지금은 때가 아니다’라고 말하는 게 자본주의 속성이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에도 한국 경제 관료들은 ‘설마’ 하는 안일함에 빠져 있었다. 그래도 미국이니까 서브프라임 사태 리스크를 잘 해결할 거라는 관료들의 믿음은 리먼브러더스의 파산과 신흥국 시장에서의 자금 이탈이 일어나면서 산산이 깨졌다.
2010년대 말까지 경제위기 10년 주기설이 거론되곤 했다. 약 10년마다 세계적인 규모의 경제위기가 일어나거나 금융시장이 크게 흔들리는 현상이 나타난다는 이론이다. 실제 1987년 미국 ‘블랙 먼데이’, 1997년 신흥국 외환위기,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등 10년마다 세계경제는 발작을 일으켰다.
2년여 전 코로나 사태가 터진 이후 세계 각국은 10년 주기 이론에 종속되지 않겠다는 결의에 찬 듯이 막대한 재정을 풀면서 위기를 틀어막았다. 한국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끝이 보이지 않는 코로나19 사태에 돈을 푸는 해법은 한계에 다다른 듯싶다. 지난해 말부터 미국을 시작으로 각국 중앙은행들은 강력한 긴축정책을 펴고 있고, 한국은행도 마찬가지다.
돈줄 조이기에 가장 먼저 반응한 것은 증시다. 기술주 중심의 미 나스닥지수는 연초 대비 10% 가까이 빠졌고, 지난해 말 3000을 찍었던 코스피지수는 한 달 새 2600선으로 후퇴했다. 지난해 사상 최대 호황을 누렸던 부동산 시장 역시 하락세로 돌아서고 있다. 과도하게 풀린 유동성의 힘으로 비정상적으로 올랐던 부동산, 증시, 코인 가격의 추락은 지금이 끝이 아닐 수 있다.
강 달러화 현상에 따른 외부적 충격이든, 국내 부동산 시장의 폭락이든 만약 경제위기가 다시 도래한다면 우리 경제는 과거보다 더한 충격을 받을 수밖에 없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직후 이명박정부는 부동산 경기 활성화 등을 위해 대규모 재정을 투입했다. 강만수 당시 기획재정부 장관은 “원 없이 돈을 써봤다”고 회상했다. 지금은 그때보다 경제구조가 취약해졌다. 당시보다 가계부채는 2배 이상 늘어 1000조원이 넘었고, 재정은 거덜 난 상태다. 그런데도 정부는 지난해 4% 성장에 축포를 터뜨리고 있다. 두 대선 후보도 ‘돈으로 표를 살 수 있다’는 신념에 찬 듯 재정 건전성은 염두에 두지 않은 선심성 공약을 남발하고 있다. 위기는 반복된다. 이는 경험을 통해 입증된 불편한 진실이다. 경제위기 10년 주기설이 15년 주기설로 바뀌었을 뿐인지도 모를 일이다.
이성규 경제부장 zhibago@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