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그룹은 지난해 SK㈜의 자회사인 SK리츠에 1조원 규모의 그룹 본사 사옥(서린빌딩), 7654억원의 SK에너지 116개 주유소 토지·건물을 넘겨 현금화했다. 네이버, 현대자동차그룹, GS그룹 등도 보유하고 있는 부동산 일부를 ‘현금’으로 돌리는 작업을 추진하고 있다.
최근 1, 2년 사이 주요 그룹이 부동산을 현금화하는 사례가 잇따르고 있다. 막대한 현금을 소유하고 있는 대기업들은 왜 ‘부동산 현금화’에 앞다퉈 뛰어들고 있을까. 표면적 이유는 ‘새로운 수익’이다. 단순하게 빌딩이나 부동산을 팔아서 현금을 손에 쥐는 걸 넘어 활용가치가 높은 부동산을 임대 등으로 돌려서 추가 수익을 낼 수 있다.
수익 창출의 핵심 고리는 ‘리츠(REITs) 사업’이다. 리츠는 투자자들로부터 자금을 모아 부동산이나 부동산 관련 증권 등에 투자해 운영하고, 그 수익을 나누는 부동산 간접투자 뮤추얼펀드다. 리츠는 1960년 이후 39개국에 도입됐다. 증시에 상장된 리츠만 따져도 시가총액이 1조7000억 달러에 이르는 것으로 추산된다.
국내 리츠 시장도 빠르게 성장 중이다. 2일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2020년 말 기준으로 국내 리츠 수는 282개에 이르렀다. 전년(248개)보다 13.7% 증가했고, 자산 규모는 63조1000억원으로 전년(51조8000억원) 대비 21.8% 늘었다. 2019년 롯데리츠, 지난해 SK리츠가 상장하는 등 국내 주요 그룹은 리츠 사업에 진출하고 있다.
부동산 현금화의 또 다른 이유는 ‘투자’와 ‘비대면’이다. 미래사업에 투자할 재원을 확보해야 한다는 목적, ‘비대면 소비’의 확산 등으로 산업구조가 바뀌자 중요도가 떨어지는 부동산을 처분하려는 것이다. 산업계는 과거처럼 ‘목 좋은 곳’에 자리를 잡고 주유소, 백화점, 은행 등을 운영해 수익을 내기보다는 처분·임대 등으로 방향을 돌리는 게 낫다고 판단한다.
유통업계가 대표적이다. 오프라인 판매가 줄면서 유통업계는 오프라인 매장의 군살을 빼고 있다. 롯데그룹은 전국 백화점·마트·아울렛 15곳을 리츠에 넘겨 자금을 조달했다. 10조원대 부동산 자산을 보유한 신세계그룹도 이지스자산운용 등과 협의에 나선 것으로 알려졌다.
모바일·비대면 금융거래가 증가하면서 은행들도 ‘점포 다이어트’에 속도를 붙인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5대 은행(KB국민·신한·우리·하나·NH농협은행)에서 폐점한 영업점은 2016년 186곳, 2017년 223곳, 2018년 43곳, 2019년 54곳, 2020년 122곳에 달한다.
또한, 기존 부동산을 리츠에 맡기되 미래 사업에 쓰는 방식이 등장하고 있다. 전기차가 늘면서 중요도가 떨어진 주유소를 수소 충전소나 전기차 수리정비소 등으로 쓰는 정유회사들이 그렇다. SK리츠는 수도권에 있는 SK에너지 주유소의 약 48%를 포함해 가치 높은 주유소를 전기·수소 충전소, 전기차 수리정비소, 배터리 관련 서비스 제공 등의 공간으로 재활용할 계획이다.
그러나 기업이 본업 대신 부동산투자회사 설립에 주력하는 걸 우려하는 목소리도 있다. 리츠는 발생 수익 대부분을 투자자에게 배당한다. 배당의 안정성을 중요하게 여기는 경향이 크다. 이 때문에 자산 유동화는 가속하겠지만 기업의 성장을 위한 투자는 미진할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된다.
기업도 고민이 적잖다. 한 그룹 관계자는 “부동산 가격이 하락한다거나, 기업이 현금을 유동화해 새로운 사업에 투자를 했는데 손해를 보는 등 우려도 있을 것”이라면서 “개인이 기존 자산을 현금화해서 부동산에 투자할 때 리스크를 지는 것과 마찬가지인 셈”이라고 말했다.
반면 대기업의 리츠시장 진입이 부동산 시장 발전의 계기가 된다는 긍정적 평가도 나온다. 이상영 명지대 부동산학과 교수는 “우리보다 먼저 리츠를 도입한 미국 일본의 경우 미쓰비시, 스미토모 등 대기업 주도로 리츠 사업을 처음 시작했다”면서 “이와 달리 우리는 초창기에 대기업이 거의 없고 중소 자산관리회사(AMC)들이 주도하다, 최근 1~2년 사이 리츠회사 상장과 대기업 진입이 늘어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 교수는 “최근 대기업 대부분이 여러 건물을 담는 다물리츠, 상업용 건물 위주 등으로 탄탄한 포트폴리오를 구축하고 시장에 진입하기 때문에 변동성은 낮고 안정적인 편”이라면서 “이제야 제대로 된 리츠시장이 생겨나고 있는 것”이라고 진단했다.
김지애 기자 amor@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