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의점 풍경화] 달력은 고칠 수 없어

입력 2022-02-05 04:03

많은 사람이 그렇겠지만, 새해 달력을 만나자마자 편의점 점주가 하는 일도 ‘쉬는 날’ 확인이다. 그러나 일반적인 사람들과 다르다. 또 점주마다 다르다. 주택가 편의점을 운영하는 점주는 ‘빨간 날’이 많은 해를 반기는 편이고, 직장가 편의점 점주는 같은 달력을 보며 낙담한다. 관광지 점주들은 만세를 부르겠지. 직장인은 “연차 2일만 쓰면 9일을 쉴 수 있다!” 환호성을 지르는 황금연휴지만 직장가 편의점 점주는 속으로 비명을 지른다. 으악, 9일이나 ‘공쳐야’ 하다니!

달(月)에 대한 시선 또한 그렇다. 1월, 3월, 5월처럼 31일까지 있는 달이 반갑다(직장인은 반대겠지). 31일이 두 번 이어지는 데다 매출 성수기이기도 한 7월과 8월이 최고 반갑다. 가장 아쉬운 달은 2월. 그러잖아도 28일, 29일밖에 없는데 매출이 최악으로 저조한 계절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설날까지 겹치면 한 달에 보름밖에 장사를 못 하는 결과가 나오기도 한다. 새봄 신학기를 앞두고 집안에 이래저래 돈 들어갈 일도 많은데 좌절감은 곱절로 밀려든다. 2월이란 달은 그냥 없어졌으면 좋겠다는 생각마저 든다. 1월에서 3월로 건너뛰면 안 될까? ‘13월’ 만들면 되잖아.

‘대체 공휴일’에 대한 반응을 보자. 중견기업 이상 직장인들은 대체 공휴일 법제화 소식에 함박웃음을 짓겠지만, 영세기업 직장인들은 ‘대체 공휴일이 대체 뭐지?’ 하는 상대적 박탈감을 느낀다. 직장가 편의점을 운영하는 나 같은 사람에게는 ‘대체 공휴일은 대체 왜 만들었지?’ 싶은 날이 된다. 엊그제 어머니가 ‘우리가 2044년까지 꼭 살아있어야 하는 이유’라는 제목의 휴대전화 문자 메시지를 보내오셨다. 그해가 공휴일이 가장 많아 그렇다나. 아이고, 어머니. 우리가 2044년까지 살아야 할 이유는 백만 가지가 넘는답니다.

그러고 보니 요즘엔 달력을 무료로 주는 곳도 사라져, 급기야 올해는 장사 시작한 이래 처음으로 달력을 돈을 주고 구입했다. 아르바이트 혜진씨가 달력을 넘기며 뭔가 세고 있는 모습을 보고 뭐하냐 물으니 역시 ‘쉬는 날’을 헤아리는 것이었다. “쉬는 날이 많으니까 좋지?”라는 철없는 내 질문에 돌아온 대답은 “일당이 줄잖아요!”라는 날카로운 현실이었다. 올해는 휴일이 118일이나 된다. 추석과 한글날이 대체 공휴일로 적용된 데다 대통령선거, 지방선거까지 있어 그렇다. 누군가는 여유롭게 쉬고, 누군가는 한숨을 쉰다.

사실 이런 푸념 한 지도 벌써 10년 됐다. 이제는 감각이 없어졌다. 지금은 그저 ‘쉬니까 쉬는가 보다’ 하는 수준이 됐다. 내 힘으로 어쩔 수 없는 조건 앞에는 그냥 순응하는 것이 최선이라는 나름의 심리적 처세술을 익히게 됐다. 어머니가 보내주신 메시지의 ‘2025년, 2028년에도 꿀 연휴가 기다리고 있다’는 문장에서 흥겨움이 느껴졌다. 내 소원은 단출하다. 그때에도 무사하게 장사하고 있길 바랄 따름이고, 2044년을 훨씬 넘어 우리 어머니가 건강하게 사시길 바랄 따름이다. 달력은 고칠 수 없고 인생은 어느 순간에도 흘러간다.

봉달호(작가·편의점주)